최덕성 박사 "WCC총회 장소 다른나라로 바꾸라 "

기독교학술원 제19회 영성포럼

2013-05-07 00:55:59  인쇄하기


지난 3일(금)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이 "WCC 영성과 한국교회"라는 최근 이슈화 되고있는 주제로 찬반 양측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을 모아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제19회 영성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WCC 총회를 찬성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진영 가운데 이를 반대하는 신학자들이 함께 모여 WCC를 주제로 논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다음은 박종화 목사의 발표에 대한 최덕성 박사(기독교사상연구원장)의 논평 전문이다. 최 박사는 WCC 총회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제10차 총회(이하 부산총회)를 둘러싼 한국교회의 갈등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반대와 철회촉구 목소리와 저항은 거칠어지고 있다. 진보계 에큐메니칼 진영조차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와 WCC 관겨자들의 사실호도, 정직성 결여, 불합리한 행보, 무대응 등의 태도는 불신과 반감을 자아내고 있다. WCC 중앙위원회와 한국준비위원회가 특단의 결단을 내리는 것인 현명하다고 생각된다.

1. 불신, 반감

지록위마(指鹿爲馬)란 권세를 이용하여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했다는 진나라의 어느 위인이 옳은 것을 그릇되다고 하고, 그릇된 것을 바르다고 밀어 붙인데서 유래되었다.

한국교회는 WCC의 종교다원주의 표방에 주목한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without setting limits to the saving grace of God)고 선언한다. “바아르선언문”(1991)과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를 포함한 7개의 공식 문헌이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다고 하는 요지의 종교다원주의를 담고 있다. 최덕성,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3), “제6장 종교다원주의-불편한 진실”(183-213)과 “부록 2: WCC's statements on Religious Pluralism” (443-454)을 보라.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는 WCC 안에 소수의 신학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WCC 자체가 그러한 신학을 표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호도이며, 정직성이 결여된 말이다. 그런데도 다수의 회원 교회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이를 사실로 믿는 듯하다. 기독교 단체가 ‘이단’ 사상을 표방할 까닭이 없다고 한다. 예장 통합의 기관지는 WCC 신학과 관련된 보수계의 반발을 ‘흑색선전’이라고 매도한다. 한국기독교방송(CBS)과 예장 백석 기관지는 보수계의 ‘오해’라고 몰아붙인다.

한국준비위원회, WCC 회원교회들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는 복음주의계의 WCC 비판에 오해, 흑색선적 운운 하면서도 학문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공개토론 제의에 응하지 않는다.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은 채 지록위마 태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2013년 정초의 공동선언문 사건은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다원주의를 포함하는 4대 신학 조항은 한국교회 영성의 핵심이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이다. 하나 됨의 최소한의 기초이다. 그러나 진보계 에큐메니칼 진영의 격렬하게 거부 반응으로 이 사건은 한국교회의 영성과 에큐메니칼 영성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충돌, 패러다임의 차이를 드러냈다. 역사적 기독교와 WCC가 상극관계이며, 하나가 아니며, 하나 될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진보계와 보수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하나이며, 상호 보충적 관계라는 발상이 근거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한국준비위원회가 부산총회를 ‘세계기독교 올림픽’이라 선전하고, 진보계와 보수계를 망라한 한국교회 전체가 환영하는 것처럼 말해왔다. 전진대회에서 공동선언문을 ‘깜작 쇼’처럼 발표했다. 양 진영 하나로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나라 안팎에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정직성 결여와 사실호도는 한국교회의 WCC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공동선언문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행보는 상호 신뢰 관계를 깨뜨리고,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의 불행한 선례를 남겼다.

2. 결합의 오류

박종화는 여러 교파 전통에서 비롯된 고백적 다양성(confessional diversity)과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을 WCC ‘에큐메니칼 영성’이라 소개한다. WCC가 분열과 불의와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세상에 대한 ‘살롬의 영성’을 강조해 왔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WCC의 ‘고백적 다양성’과 ‘다양성 안의 일치’ 영성은 WCC를 추종해 온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 상실, 퇴락, 빈사 상태,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 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2), 제14장 “교회의 퇴락: 왜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439-454)에서 상론한다.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신학자들을 가진 나라이다. 한국교회의 신학 수준은 국가의 경제적 부흥에 힘입어 향상되었다. 한국의 신학자들은 WCC의 장점과 단점을 인지하고 있다. WCC는 복음주의를 앞서가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를 초래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에큐메니칼 영성’은 교리와 신학이 서로 다른 교파 전통들을 다양성 안에서 일치하게 하고, 역사적 문화적 다양성을 서로 인정한다. 이 영성은 교회로 하여금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라는 함정에 빠지게 했다.

일치만이 능사가 아니다. ‘결합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는 성질이 다른 것들을 결합함으로써 일을 그릇되게 만드는 잘못이다. 맛있는 한식, 일식, 화식, 프랑스식 음식을 하나로 섞으면 먹기 곤란한 음식이 된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을 합치면 칙칙한 검은색이 된다. 인기 있는 배우들이 총출연하는 드라마라고 하여 재미있는 극이라는 보장이 없다. WCC 에큐메니칼 영성, ‘다양성 안의 일치’ 영성은 결합의 오류라는 덫에 걸렸다.

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영리하게 고안한 ‘전통론’(몬트리올보고서, 1963)은 결합의 오류의 대표적인 예이다. 로마가톨릭교회를 사실상 인정해 주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폐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교회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자유주의 성경관과 바르트주의 성경관과 급진주의 성경관을 결합한 이 성경관은 진리상대주의에 뿌리를 둔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를 낳았다.

WCC의 ‘에큐메니칼 영성’은 유럽, 북미,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 상실과 퇴락의 일등공신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는 구호, ‘진리 안에서 일치’를 배제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여러 갈래로 나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리 울타리와 제재장치가 없는 WCC의 가시적 교회일치운동이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간 것은 더 비극적이다. 교회가 살아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사회정의를 외칠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3. 지형변화

WCC의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Together toward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 2012)는 “지형변화”를 강조한다. 기독교인 분포의 중심축이 유럽, 북미, 대양주에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로 바뀐 지형변화를 강도 높게 언급한다. 선언서는 궁색하게도 지형변화를 ‘이민’ 현상과 관련시킨다. WCC, “Together toward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2012), para.5.
 
그러나 복음의 요람이던 지역들의 주류 교회들이 급속한 퇴락과 죽음 상태에 이른 까닭은 밝히지 않는다.

위 선언서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선교와 전도에 투영시킨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사와 동일시한다. ‘생명’을 강조하지만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zoe)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모든 피조물이 가진 제한적이며 유한한 생명(bios)에 초점을 둔다. WCC 개념의 생명, 생명 충만은 아프리카의 토속종교 사제나 인도의 구루(Guru)나 한국의 박수와 무당도 환영할 수 있다.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의 이러한 종류의 ‘생명’ 정의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와 종교통합으로 나아가는 고속도로이다.

한국준비위원회 임원 몇 사람들은 ‘빛의 순례’ 행사를 하고 있다. WCC 역대 총회 개최지를 순회하고,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다. WCC 부산총회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동시에 높아진 한국교회 위상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을 목적이라고 한다. WCC 역대 총회는 일면 교회의 생명력 상실과 퇴락,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기독교 신앙을 상대화 하는 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용공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 일치주의, 신앙고백 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를 낳았다. WCC의 신학을 수용하면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빛의 순례’는 실상 교회의 죽음을 재촉해 온 ‘어둠의 순례’라 일컬음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4. 이단

한국준비위원회는 ‘빛의 순례 선포식’을 WCC 총회 출범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하지 않고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 도시 가이샤라에서 가졌다. 세계선교의 기틀을 놓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정신에 따라 WCC 부산총회를 개최하여 세계선교에 이바지하겠는 동기였다.

예루살렘공의회는 구원 진리를 다루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행위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고 결정했다. 니케아공의회(325), 니케아-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 에베소공의회(431), 칼케돈공의회(451)는 모두 교리를 다루었다.

진보계 신학자들은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와 현대 WCC 총회를 등식화 한다. WCC 총회를 고대 공의회의 연장으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전자는 비진리에 등을 돌리고 성경적 진리를 지향하는 교리중심의 공의회였고, 후자는 성경적 진리에 등을 돌리고 탈기독교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만약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오늘날의 WCC 총회와 그 신학을 검토하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이단, 적그리스도 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종교다원주의를 포함한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저주’(anathema)를 선언할 것이다.

5. 복음적 회귀 가능성

복음주의권의 교회지도자들은 WCC가 부산총회를 계기로 복음적 회귀를 할 것이라는 기대해 왔다. 박종화는 WCC가 “겸손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십자가 아래 함께 모여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총회”(국민일보, 2013.4.26.)를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WCC가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 중”이라는 박종화의 말을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한국교회가 부산총회의 신학 문서들을 복음적으로 바꿀 길이 없다. 에큐메니칼 진영 신학자들은 WCC의 신학이 바뀌기를 원하지 않는다. 과연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예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라고 선언할 것인가? 복음 설명은 하지 않고 종교다원주의는 표방하는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를 당장 폐기할 것인가? ‘다양성 안에서 일치’라는 에큐메니칼 영성과 마르크스주의 기조를 가진 ‘하나님의 선교’를 버릴 것인가? 기존의 WCC 신학 문서들을 쓰레기라 선언할 것인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제재하는 장치를 마련할 것인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특별계시의 절대성을 인정할 것인가?

맺음말: 권고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한국교회는 극도의 피로감 때문에 지쳐 있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형국이다.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복음전도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WCC로 말미암아 교회분열의 고통을 겪은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한국교회의 95퍼센트에 해당하는 절대다수의 기독인들은 WCC 신학에 대립되는 복음적 신앙, 공동선언서의 4대 신학 조항을 고백한다.

WCC 중앙위원회와 한국준비위원회가 한국교회를 존중하고 에큐메니칼 정신을 발휘하며 제자도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제10차 총회 장소를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바꾸는 용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난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갈등을 중단시킬 수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자중지란을 중지시킬 수 있다. WCC 가맹 교회들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 한국준비위원회로 하여금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WCC가 ‘꼴사나운 제10차 총회를 치렀다’는 불명예를 피할 수 있다.

최덕성 박사(기독교사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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