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현장르포(1)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2013-04-30 23:22:54

북한 탈출해 중국등지에서 어려움당하는 수만명의 북한 여성즐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는 평양에 복음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평양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증가했으며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일본이 강압적으로 교회를 박해하며 예배드리기 전 신사참배를 할 것을 강요했다. 교회는 일본 순사(경찰)들의 감시 속에 예배 전에 먼저 신사참배부터 해야 했으며, 이것을 거부하는 목회자는 끌려가 고문과 함께 투옥을 시켰다.

1938년 9월 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며 흑암이 덮치기 시작했고, 정확히 10년 뒤인 1958년 9월 9일 북한의 교회들은 문을 닫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순교하거나 배교하게 됐다.

1939년 조선 예수교 장로회 평양노회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며 참배를 거절하는 주기철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목사직에서 파면했다.

결국 주기철 목사는 ‘일사각오’라는 설교를 마지막으로 산정현교회를 내려오니, 일본순사들이 끌고 가 감옥에 투옥시키고 말았다. 평양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던 주 목사는 1949년 결국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사들과 전도사들, 장로,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서 순교했다.

5백년의 세월 동안 조선은 선한 왕들도 종종 있었지만 왕의 측근에는 아부와 아첨하는 간신들이 충신들을 온갖 모함과 누명으로 쫓아내고 투옥시키며 권력 다툼하는 어두운 역사로 점철됐다.

지금부터 약 150년 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모습은 양반·상민 제도에 부정, 부패가 가득하고 온갖 간신들이 권력을 장악한,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나라였다. ‘동양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에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나라다.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위해 싸웠던 4백여 년 전, 이미 조선에는 일본군의 침략으로 약탈과 탈취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연장선 속에서 일본에 의한 한일합방과 36년간의 고통이 이어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미국에 의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조선은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맞았으나, 남한과 북한으로 강대국에 의한 분단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해방된 지 5년만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3년간 치르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으며, 유엔군으로 이 땅에 들어온 수많은 외국 젊은 군인들 역시 낯선 이국땅에서 함께 희생되어야 했다. 결국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대국에 의하여 또 다시 남북한은 휴전이라는 단계로 들어가게 됐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올해로 67년, 즉 남북이 갈라진 지는 67년이 되었고 전쟁발발로는 62년, 휴전한 때로부터는 59년차가 된다.

같은 민족이면서 갈라져 싸우는 나라는 지구상에 유일한 우리 민족이다(물론 작년에 수단이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50년 전만해도 세계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못살던 남쪽의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IT산업으로,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에 오르며 민주화와 산업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우리나라를 축복하시고, 선교하는 나라로서 축복받은 결과이다.

남쪽에는 지구상 최고로 교회수가 많은 나라, 대형교회가 많은 나라가 됐지만 북한은 어떠한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 독재체제 하에서 경제는 파탄이 났고 94년 김일성 사망 후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3백만 명 이상이 아사하여 죽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 조선노동당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4년 탈북한 장진성 씨는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라는 시로 북한의 실태를 고발하였다. 굶주린 나머지 죽어 가면서 숨이 헐떡거리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백 원에 딸을 팔아 그 돈으로 빵 하나를 사서 딸의 입에 빵조각을 밀어 넣고 딸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는 내용의 시이다.

식량난으로 주민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지 못하게 되자 북한 주민들은 영양실조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다니던 수많은 주민들은 인접국가 C국으로 나왔다. 양식을 구하여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가족이 기다리므로), 일부는 한국으로 귀신(歸身)해오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는 북한 이탈주민이 2만 4천 명에 이르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서방국으로 망명해 간 탈북자들도 다수에 이른다.

북한에서 인접국으로 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복음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하여 북한의 지하교회는 20만에서 4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탈북자가 C국으로 나갔다가 붙잡혀오면 조사 후 오지로 보내서 노동을 하게 하다 석방하기도 하지만, 한국으로 가다가 붙잡혀 왔거나 예수 믿다가 붙잡혀 온 사람들은 공개 총살시키거나 수용소에 보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지구상에서 예수를 믿으면 죽이는 나라는 중동의 어느 나라와 북한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에서는 예수 믿다가 발각되거나 성경(쪽 복음)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면 수용소 행 아니면 공개총살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과 북한이 왜 이렇게 황폐하게 됐는가? 일본의 천황을 신격화하는 신사참배를 총회에서 가결해버리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참 신앙인들을 이단으로 몰아 순교시킨 그 죄 값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신앙인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는 이렇게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드리곤 한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B.C. 586년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귀환해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였듯이 70여년 쯤 될 때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양식을 구하여 가족을 살리겠다고 국경을 넘는 수많은 북한 여성들이 C국의 인신매매단에 걸려서 농촌의 장가 못간 남자들에게 강제로 팔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5년 여간 살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때문에 운명처럼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이 몇 만 명이 된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우리와 만나져 복음을 받고 통일된 조국에서 복음운동을 위해 쓰일 사명자들이 잘 자라고 있다.

▲사진은 북한 지하교인들과 탈북자들의 애환을 다룬 영화 ‘선처’의 한 장면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의 어느 날이었다. C국으로 어서 들어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급히 들어갔다. 한 소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사연인 즉, 부모는 굶주림으로 모두 별세하였고 굶주림 속에 꽃제비로 북한에서 지내고 있는 13세와 12세가 된 두 자매 중 언니였다. 너무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맹장이었다. 마취제도 없이 배를 열고 맹장을 수술했는데 돈도 없이 하는 수술이기에 의사가 수술할 때 창자를 건드려서 찢어진 상태로 꿰매 버렸다.
수술 이틀 후 두 자매가 굶주림을 피하려고 강을 건넜다. 동생은 강물에 떠내려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고 언니만 겨우 강을 건너 우리 팀에 발견 되어 미션홈에 와 있었다. 소녀는 수술 받은 곳이 너무 아파서 배를 움켜쥐고 방안에서 떼굴 떼굴 굴러다녔다. 수술하고 꿰맨 곳의 실밥이 터지면서 창자가 밖으로 빠져 나올 지경이었다. 믿는 조선족 의사를 찾아가서 그 소녀를 다시 수술하고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의사는 죽을 아이로 진단하며 북한 아이를 수술해주다가 죽으면 그 뒷일이 너무 위험하다며 난감해했다. 죽을 아이라면 우리와 만나게 하였겠냐며 만약 죽으면 그 시체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가 처리할 테니 병원 문을 닫아놓고 밤중에 은밀하게 수술해 달라고 사정하자 의사가 허락을 했다. 병원 문을 잠그고 그 아이의 배를 열어보니 회충이 2백여 마리가 엉켜 있었다고 한다. 수술 후 그 소녀는 살아났고 회복됐는데 나는 그 소녀가 수술 후 회복단계에 있을 때 병원에 도착하여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면서 도움을 전했다.

국경지대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마 5:4).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롯은 소돔고모라성의 멸망 가운데서도 살아 나왔다(창 19:29). 어느 탈북자가 한국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한탄하던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어쩌면 한국교회가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북한의 죽어가는 동포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를 안 할 수가 있냐고…….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진 자들이다. 우리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지금도 국경지대에서 복음 받고 사명자로 준비되고 있는 남은 자, 숨은 자, 도피된 자, 흩어진 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집중기도해야 할 시간표인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가오고 있으며 아주 가까이 왔다고 확신한다.

탈북자 사역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2만 4천명을 상대로 하는 사역과, 제 3국에서 남은 자, 숨은 자로 있는 자들을 돕고 훈련시키는 사역, 그리고 잠시 주변국으로 나왔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사역이 있다. 또한 직접 북한에 들어가서 봉사 활동하는 사역도 있다. 북한에 들어가서 고아원을 돕거나 환자를 돕고 환경운동을 하는 경우는 직접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탈북자들을 상대로 선교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그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들은 절박하고 갈급하게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예수가 곧 그리스도 되심을 전하고 제자로 남은자로 양육해야 한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때 이사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사 6:8)”   그 ‘나’가 복음 가진 저와 바로 당신이기를 기도드린다. 

 / 세계복음화전도협회 북한선교국 제공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