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현장르포 5] 어느 탈북 집사의 고백

복음전하다 천국가고 싶다.

2013-12-25 21:41:47  인쇄하기


C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에 16년 전 팔려온 집사가 있다. 신영자(가명, 53세) 집사, 그녀는 북한 청진 쪽에 있는 한 고아원에서 자라 부모가 누구인지, 어떻게 자신이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였다. 고아원에서 주체사상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는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다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을 해 두 딸을 낳으며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힘겹게 살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삶의 무게와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은 채 더욱 짓눌렸다. 병든 남편의 뒷바라지를 10여 년 하였지만 결국 결핵으로 사별하고, 설상가상으로 영양실조에 걸렸던 두 딸마저 결핵으로 1년 사이에 모두 떠나버렸다. 
딸들만은 어떻게 해서든 키우려고 하였는데 고난의 행군은 끝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미 남편의 병수발로 진 빚 때문에 이웃에게 더 이상 도움을 청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형편인 탓에 누구 한 사람 동정의 손길을 내밀 수조차 없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는데……. 남편도 죽고, 두 딸도 죽고 북한에는 더 이상 그녀의 가족이 없었다. 

그녀는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C국에 가면 잘 살수 있다는 말에, 좋은 곳에 취직시켜 주고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강을 건넜다. 그리고 준비된 차를 타고 13시간쯤 달려 어느 현(우리나라 읍)의 변두리 허름한 집에 도착하였다. 그 집에서는 돈을 주고 그녀를 산 것이었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결핵 환자였다. 죽은 남편도, 두 자녀도 모두 결핵으로 숨을 거둔 것도 모자라 C국에 팔려 와서까지 만난 한족 남편이 결핵 환자라니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런 남편의 병시중을 들며 10여 년째 살고 있던 어느 날, 새벽 두 시경에 공안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북송되었다.10여 년 만에 되돌아온 북한! 조사를 받으면서 사실 그대로 증언하였다. 먹고 살지를 못해 팔려왔을 뿐이고, 한국으로 가려고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3주 가량 조사를 받으면서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었다. 그런데 막상 갈 곳이 없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집에서 어쩔 수 없이 며칠간 신세를 지었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이미 C국에서 조선족 교회를 다니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집사 신분이었다.
 
복음을 들을 때마다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북조선을 생각했다. ‘북한에 있는 조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좋을텐데’, ‘북한이 좀 더 좋아져서 오고 갈 수 있게 되고 신앙의 자유도 오면 좋을텐데’ 기도했던 신 집사였다.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C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던 그녀는 친구가 집을 비운 사이 벽에 걸린 거울 뒤에 볼펜으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기록하였다. 직접 전도하다 신고를 해버리면 죽을 수 있었기에 언젠가는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꼭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남겼다. 그런데 이것이 발각되어 버렸다. 

그 친구 집을 나와 다른 친구 집에 가 있는 사이, 거울 뒤 글을 본 친구가 안전부에 신고를 했다. 이에 100여 명의 안전부 요원들이 대대적인 수색 작업과 함께 그녀를 체포해 끌고 갔다. 일주일 정도 얻어맞고 고문을 당하는 등 조사를 받았다. 누구누구에게 전도를 했느냐고 때리며 수용소에 보내 죽게 만들겠다고 계속 협박을 해 그녀는 울부짖으며 한 맺힌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가족도 있고 자녀도 있고 잘살고 있지만, 나와 남편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남편도 죽고 자녀도 둘 다 병들어 죽었다. 나 혼자 남아 굶어죽게 되었는데 팔려가서 살게 된 사람조차도 결핵 환자임을 알고는 미칠 것 같아 죽고 싶었다. 예수 믿고 미치지 않고 살게 되었다. 단 한 사람, 오랜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글을 썼는데 그것이 무엇 그리 잘못 되었는가!”
  절규를 듣던 안전부 요원은 알았다면서 조용히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수용소로 끌러가지 않고 석방되었다. 그토록 때리고 고통을 주며 고문하던 간부가 네 심정이 이해된다면서 조용히 나가 마음속으로 믿으라고 했던 것이었다. 

석방된 후, 곧 기도하면서 C국으로 다시 넘어가 붙잡혀 가기 전의 그 마을 그 남편에게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도 3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고 난 뒤였다. 
지금은 그 병든 사람을 13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것을 지켜본 다른 한족이 같이 살자고 해 가정을 꾸린 가운데 생활하며 훈련을 받고 있다.

집사님은 가족을 미리 다 떠나보내고 C국에 와서 복음을 만났다. 오직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면서 남은 인생을 복음으로 무장하다 문이 열리고 길이 열리면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신영자 집사님께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린다.
/북한선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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