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故 이정석 퓰러신학교 조직신학교수)

칼빈 "천사는 실재하는 존재", 천사를 개념화 혹은 상징화하는 것은 "사탄의 소행"

2021-03-15 07:35:18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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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복음주의와 오순절운동이 부흥하면서, 기독교신앙의 양태도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원리에 위배되는 모든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회의와 부인은 테크놀로지와 기술문화가 주는 인간소외와 무의미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면서 점차 누그러지고, 자신의 영성을 회복하려는 본성적인 종교 문화적 추구는 모든 전통적인 혹은 신비한 현상에 대한 무분별한 수용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천사라는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는 현대인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천사는 오늘날의 문학과 영화, 연극, 그리고 음악에서도 자주 출현하는 주제가 되었으며, 현대교회와 신학에서도 천사론의 부흥을 맞이하고 있다.

 

천사의 존재

성경에서 천사는 창세기부터 빈번히 출현하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인들은 언약궤를 중심한 성막과 후에 건축한 성전에 천사들을 조각하거나 수를 놓거나 그림으로서 천사들은 그들의 종교생활에 불가결한 동반자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신약 시대에도 전수되어 천사가 교회미술과 음악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짐으로서 기독교신앙과 예배의 배경이 되어왔다.

실로 성가대나 예배의 배진등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한 천사들의 배진과 장엄한 찬양을 모방한 것이며, 성막이나 성전은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에 천사의 존재와 포진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사두개인들은 천사의 존재를 불신하였다고 전하며, 천사에 대한 신앙과 흠모가 최고조에 달했던 중세를 지나 문예부흥과 계몽주의에 이르러서는 초자연적인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향이 심각히 대두되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슐라이에르막허는 천사란 자연지식이 부족하던 미개한 시대에 믿었던 "유치한 개념"으로서, 성경이 당시의 보편적인 천사신앙을 단순히 반영하고는 있지만 결코 필수적인 교리적 요소로는 가르치지 않는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비 실재적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현대 신학자인 불트만도 천사의 개념은 창조신앙과 상충되는 "영지주의의 신화적 존재"로서 당연히 비신화화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틸리히도 천사를 "존재의 구조나 힘에 대한 구상적-시적 상징"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바르트가 지적하는 대로, 천사는 결코 복음의 핵심은 아니지만 현상적 인식을 넘어서 신앙에 이르는 경계에 있는 특별한 존재로서, 비록 천사론이 "가장 놀라우면서도 가장 난해한 분야"이지만 천사의 부정이 기독교신앙에서 결정적 차원의 결여를 결과하기 때문에, "천사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구조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천사가 최상층에 있는 초월적 하늘의 거주자로서 기독교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하늘나라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천사의 존재는 하늘나라의 존재에 대한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사두개인이 부활이나 영의 부인, 즉 초월적이며 영적인 세계의 부인이 자연히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게 했다는 점과도 상통한다. 칼빈도 천사는 "실재하는 존재"이며 이를 부정하고 천사를 개념화 혹은 상징화하는 것은 "사탄의 소행"이 라고 경고하였다. "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은 니케아신경에서 "천지와 그 가운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설명되면서, 기독교 세계관은 천사를 제외시킬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순수한 영인 천사와 순수한 물질 인 자연의 두 요소, 즉 영혼과 육체를 공유한 존재로 분석되어, 인간은 구조적으로도 자연과 천사라는 두 편의 동료피조물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보기도 했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이라는 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바빙크가 계시 없는 기독교는 불가능한데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 없는 계시가 불가능하므로 비록 천사가 신앙의 본질이나 중심은 아니지만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요소라고 지적한 것은 음미할 만하다.

 

천사의 본질

성경에 기술된 천사가 근동종교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하는 비평가 들이 있으나, 그 근거가 추상적이며 오히려 그 영향이 역방향이라는 학자들도 있다. 베르 코프는 너무나 쉽게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이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원시적인 다신론 종교들에서 영과 귀신에 대한 신앙은 이스라엘에서의 천사 신앙과는 완전히 다르게 기능하였으며, 그 결과 유사성보다 차이가 훨씬 크다"고 결론 내렸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신 아래 위치하는 저급하고 미약한 신적 존재들에 대한 신앙들이 편재하였으며, 이러한 지니나 정령, 선녀나 귀신과 같은 선입견이 올바른 천사이해를 오도하여 왔다. 아리우스가 예수님을 천사라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방 종교의 천사개념이 비록 미약하지만 "신 적 존재"라면, 성경이 증거하는 천사는 우리 인간과 동일한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에 대한 숭배나 신격화는 기독교신앙에서 용납될 수 없는 우상숭배의 죄가 된다. 천사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양대 인격적 피조물로서, 인간이 보이는 유형적 몸을 가진 영혼으로 땅에 산다면, 천사는 보이지 않는 무형적 영으로 하늘에 산다. 그러나 이 두 인격적 피조물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 한 세계속에서 공존하면서 서로 관계하며 살아간다. 천사의 존재는 인간에게 우리가 전 세계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본주의적 교만을 금지시키며, 보이는 세계만을 인정하려는 물질주의적인 불신앙의 세계관을 교정해준다.

또한 천사는 순수한 "()"으로서, "살과 뼈"로 구성된 몸이 없다(&nbsp24.39). 초대교회에서의 천사에 대한 공론과 혼란은 니케아신경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고백함으로서 정리되었으나, 다시 제2차 니케아회의(787)에서 성상미술을 권장하면서 천사가 에테르나 빛과 같은 무형적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결의함으로서 중세교회를 오도하였다가 라테란회의(1215)에서 다시 보이지 않으며 비물질적인 영적 존재로 정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사는 몸이 없으므로 육체적 감관도 없고, 따라서 육감이 없고 지성과 의지만을 가지고 있다고 아퀴나스는 유추하였으나, 인격에 감정이 없다는 스콜라적인 이론은 하나님에게 고통의 감정이 없다는 주장과 상통하는 매우 비성경적이고 비인격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천사도 기쁨과 분노, 또는 온유와 같은 감정이 있으며, 이는 비록 육감이나 욕정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감정과 유사한 영혼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천사는 몸이 없으므로 노쇠하지 않아서 부패하지 않고 불변하며 불멸하지만, 본성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에 의해서 유지된다. 아퀴나스는 천사에 게 자연적으로 연합된 몸은 없지만 육신을 필요에 따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몸뿐 아니라 날개나 칼을 소유하거나 동물의 모습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때, 실제적인 몸을 입는 다기 보다 필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눈이 열렸을 때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성경의 증거는 보이지 않 을 때는 눈이 열리 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지만, 눈이 열린 것이 결코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천사는 보이 지 않는 것이 정상이며, 보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눈이 열려 천사를 보기 원한다면, 그것은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며, 우리가 부활한 후에 영적인 몸을 입을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특히 악마가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몰몬교와 같은 이단은 바로 악마의 말을 천사 의 계시로 오해하여 발생한 것이다. 중세에 천사의 공간성에 대한 공론을 즐기면서 바늘 위에 천사가 몇이나 앉을 수 있는가를 논의하였으나, 아퀴나스는 비록 천사가 영으로서 공간성이 없으나 공간에 들어오면 공간이 천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일정 공간을 수용하기 때문에 공간을 차지하며 따라서 두 천사가 동일한 공간에 있을 수 없으며, 공간 또는 시간의 이동도 동시적이 아니라 빠르지만 중간공간이나 시간을 통과한다고 생각 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천사의 사역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며, 천사도 제1일의 하늘창조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면, 천사도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탄과 마귀라고 불리우는 악한 천사들은 아마도 이러한 수종자의 위치에 반발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라고 보내심"(&nbsp1.14)이라는 천사에 대한 대표구절이 분명히 보여주는 대로, 천사는 예외 없이 구원사역의 진행과 완성을 위하여 구원받는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나님이 보내 부리는 영들이다.

천사를 필요할 때 파송하고 부리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며, 천사는 하나님의 종이지 인간의 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천사는 현세에서 인간보다 상위에 있어서 인간이 명령하고 부 릴 수 없다. 천사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한다든지, 심지어 천사를 직접 명령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성경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릇된 행동이다. 칼빈이 강조하는대로, 우리의 유일한 도움은 하나님뿐이며 천사가 결코 중보적 혹은 중간적 존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기도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며, 천사의 사용은 그의 주권에 속해있는 문제로서 기도에서 도움의 방법까지 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Calvin,&nbspInstitutes,&nbspI.xiv.12.).

천사를 보이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한다. "천사(天使)"라는 우리말은 하늘에서 보냄을 받았다는 파송적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구약의 "말러악"이나 신약의 "앙겔로스"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의 측면을 강조하지만, 실로 성경에 기록된 천사의 사역들은 매우 다양하다. 전반적으로, 천사의 사역은 구원의 역사와 성도의 섬김으로서, 천사는 율법을 포함한 구원의 복음을 전달하고 증거하며 저항세력을 강력하게 제어하면서 구원사를 진행시키고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나라의 왕으로 호위하고 찬양 하며 성도들과 함께 하늘나라의 임재와 완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구속적 의지를 표현하고 수행한다.

천사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와 사사들, 다윗과 선지자들, 그리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로 연결되는 구속사의 중심적 맥락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출애굽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극적 구원과 율법 및 복음의 전달, 그리고 종말론적 전투와 통일에 종사한다고 계시되었다. 그리스도는 인간과 천사를 포함한 만유의 머리로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항상 천사가 있으며 천사활동의 중심과 통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서 인간과 천사는 영적으로 연합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한다 (1:16, 1:51). 천사들 중에는 "천사장(天使長)"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상당한 조 직 이 있는 것 같으며, 8:2"일곱 천사"가 천사장들일 것이라고 추정하여 왔다.

디오니시우스는 "천상의 계급"이라는 저서에서 천사를 크게 고급, 중급, 저급으로 나누고, 또다시 각각 3계급으로 나누어 모두 9계급(세라핌, 케루빔, 보품, 주품, 역품, 능품, 권품, 그리고 천사장과 일반천사)으로 분류하고 이들 중 마 지막 두 계급, 즉 천사장과 일반천사만이 인간들을 직접 관계한다고 제한하였다. 비록 모두 성경에서 수집한 명칭이기는 하지만, 세라핌(스랍)과 케루빔(그룹)은 종류이지 계급이라고 볼 수 없으며, 특히 골1:16 과 엡1:21등에서 유출한 중간의 다섯 계급은 성경해석에 따라 기능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모호한 용어들이고, 단지 천사장만이 계급적인 명칭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인간사회와 같이 천사들도 본질상 동등하며 단지 재능과 사역의 차이에서 분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디오니시우스의 발상은 실로 계급주의의 산물이 아 닐 수 없다. 실제로 디오니시우스는 "교회의 계급"이 라는 책도 저작하였는데, 펠리칸이 지적한대로 중세의 로마교회는 천사론과 교회론을 연결하여 계급주의를 강화하였다.

칼 빈은 바울이 삼층천에까지 갔다 왔어도 침묵하였는데, 디오니시우스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같다고 비판하면서 신학자는 "참되고, 확실하고, 유익한 것"만 가르쳐야 된다고 말했다. 천사의 명칭은 그 사역의 위엄을 위하여 사용된 것이므로, 영의 신비나 계급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사역과 그 사역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우리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소위 민족이나 개인의 "수호천사"개념도 한 천사가 여러 사람을 섬길 수도 있고 여러 천사 가 한 사람을 섬길 수도 있는 성경적 유연성과 배치될뿐 아니라 하나님보다 직접적으로 수호천사에게 더 의존하게 되는 문제점 때문에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다. 하나님이 반드시 천사를 사용할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들의 순종을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신다. 천사들은 보이지 않게 영으로 창조하여 보이지 않게 사용하시므로, 인류역사에서 사람들에게 보인 적은 매우 드물다.

가브리엘과 미카엘의 두 이름만 알려졌듯이 우리가 아는 천사의 세계는 하늘나라와 함께 아직은 우리에게 대부분이 신비로 남아있다. 그러나 분명히 계시된 바에 따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친구와 돕는 자로서 성령의 지도 아래 오늘도 분주하게 우리 주위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예수께서 재림하여 부활할 때 우리는 그 동안 보이지 않게 우리를 도왔던 모든 천사들을 기쁘게 만나 보게 될 것이며 천사의 아름답고 웅장한 찬송소리를 들으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될 것이다.

 

이정석 교수는 총신대에서 기독교철학(B.A.)을 전공했고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Th.M.)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국제신학원(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고, 총신대와 칼빈대, 성결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미국 퓰러신학교에선 조직신학 부교수 및 목회학 박사원 부원장을 지냈으며 귀국해 국제신대에서 부총장을 역임했다. 이정석 교수는 201151662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 윤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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