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억류된 한국선교사 돌아올 수 있을까?

북한, 유해송환 생사확인조차도 거부...정부의 노력과 한국교회의 기도 절실

2023-04-15 16:07:37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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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납치 억류된 김동식,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북한선교사역 중에 북한에 의해 강제 납치 억류된 선교사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남북 간 긴장관계가 악화하면서 송환을 위한 활로마저 막혀 한국교회의 기도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선교사는 김동식,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4명과 한국 국적의 탈북민 김원호 함진우 고현철 선교사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선교사들은 북.중 국경지역에서 탈북민 쉼터를 운영하며 탈북자와 조선족을 돌보거나 북한 내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돕던 사역자들이었다. 이들 중 김동식 선교사는 북한의 고문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해송환조차 이뤄지지 않고, 나머지 분들은 매일 10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뿐 정확한 생사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2년전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가 북한 국가보위성 라인을 통한 정보를 인용하며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 선교사들이 극심한 학대를 당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평양 감옥에 수감 중인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들은 매우 위급한 상태라며 이분들에 대한 구출을 더 이상 늦출 경우에 신변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힌 적 있지만 그 후 더 이상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있어 우려를 낳고있다 

꽃제비들의 아버지 김동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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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선교사

김동식 선교사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탈북자를 지원 선교 활동을 하다가 2000116일 북한 공작원과 조선족 공범들에게 납치됐다. 그 길로 북한으로 끌려간 김 선교사는 사상 전향을 거부해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김동식 선교사는 1986년 교통사고로 대퇴부를 크게 다쳐 인공뼈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는 지팡이에 의존해 걸음을 옮기는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이 된 후 김 목사는 장애인 같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는 데 헌신했다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김동식 목사는 중국 선교를 염두에 두고 서울에 온 중국 선수단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것이 계기가 돼 김 목사는 중국의 초청을 받아 중국의 장애인을 돕는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이렇게 중국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교활동을 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 문제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북한 선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 중국 옌지에 떠돌고 있는 탈북 청소년(일명 꽃제비)에 대해 들었을 때 김 선교사 부부는 충격에 빠졌다. 이렇게 김 선교사의 꽃제비 사역은 한중수교가 있기 2년 전인 1990년부터 시작됐다. 처음 7명으로 시작한 사역이 9개 미션홈으로 성장했다. 보호하는 꽃제비들도 수십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꽃제비들에게는 옌지에서 김회장만 만나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탈북자 사역에 주력해 온 김동식 목사 부부를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눈의 가시였을 것. 북한 공작원들은 2000116일 주일예배 후 돌아오는 김 목사를 차량으로 납치했다.

당시 김 선교사는 직장암 수술을 한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상태로 탈북자를 위해 중국으로 달려왔는데 납치를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2007년 아내 주양선 선교사는 S 선교사로부터 김동식 목사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됐다. 2000년 납북된 김 목사는 이듬해인 2001년 영양실조, 고문후유증 탈진상태로 순교했으며 평양근교 상원리 소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졌다.

80킬로그램에 달했던 사람이 사망전 35kg까지 줄 정도로 수용소 내에서 굶겼다고 한다. 북한정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주체사상으로 전향할 것과 탈북자를 도운 과거를 회개하도록 강요했지만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후 대북인권단체들이 김동식 목사의 생사 확인과 유해 송환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권고하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김 목사의 생사 확인과 유해 송환에 나설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된 소식은 아직 없다.

북한선교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김동식 목사 순교 기념사업회결성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개최했다. 다음 달 중 출범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기념사업회 출범을 준비하는 김동식목사유해송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김규호 목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는 못 할지라도 순교자를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선교와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와 성도의 동참을 호소했다.

한편 김동식 목사의 아들 김한 씨와 남동생 김용석 씨는 2009년 워싱턴DC 연방 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법원은 2015년 북한에 33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정욱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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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20142월 기자회견 당시 모습. 연합뉴스

김정욱 선교사는 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침례교단 소속 교회로부터 파송 받아 2007년부터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에서 탈북민과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을 위한 쉼터를 운영했었다.

김 선교사는 부인과 함께 단둥에서 쉼터를 운영하고 작은 국수공장 사업을 병행하면서, 국수, 의료, 약품 및 자금을 탈북민과 북한 주민에게 무료로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김 선교사는 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했고 성경공부를 통해 신앙양육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난민인권협회 김용화 회장은 탈북자들에게는 선교활동을 했지만, 북한 정권이 종교를 반대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순수한 인도주의 차원 성격의 지원을 주로 했다고 말했다.

김정욱 선교사는 2007년부터 부인과 함께 단둥에서 23곳의 쉼터를 운영하면서 소규모 국수 공장을 운영했다. 그는 중국을 찾은 북한 주민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했다. 김 선교사는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국수나 의약품, 생활필수품 등과 여비를 챙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2013108일 밀입국 혐의로 체포된 김정욱 선교사는 20144월 북한정권으로부터 국가정보원과 내통했다며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 등을 적용해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무려 10년 째 억류 중이다.

북한정의연대 대표 정베드로 목사는 김정욱 선교사는 체포 당시의 고문과 학대로 인해 건강이 매우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김 선교사에 대한 생사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선교의 아내(신변보호위해 실명사용 않음)가 당시를 회상하며 인터뷰한 내용이다.

김 선교사는 처음부터 북한 선교를 목표로 중국에 갔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특별했어요. 그래서 중국에 있을 때 선교 자체가 불법임에도 숨지 않고 실명을 드러내고 활동했죠." "솔직히 불안했어요. 남편이 그렇게 겁도 없이 너무 담대하게 선교를 하니깐. 그래서 조금만 천천히 가자, 조금만 조심하자 그렇게 말했죠 

김 선교사가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는 적극적으로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처음엔 2013103일에 (북한에) 들어가려 했는데 다시 돌아와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갈 수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7일에 또 간다고 나가서 안 돌아와서 잘 들어갔겠구나. 짐작했죠. 그랬는데."

그가 북한에 억류됐다는 뉴스를 한국의 지인을 통해서 듣고서야 급히 한국에 돌아왔다.

아내는 그러나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북측에 억류자의 송환을 요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둥에서 김정욱 선교사를 후원했던 주동식 씨는 앞서 BBC 코리아에 "2014년 재판에 대한 보도 이후 김 선교사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평양 인근의 수용소에 들어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김국기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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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된 김국기 선교사가 지난 20153월 북한 당국이 '기자회견'이라며 마련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VOA).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중앙 소속 김국기 선교사는 국내에서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돌봤다. 그러다 2003년 북한선교를 위해 중국 단둥으로 파송돼 탈북민과 꽃제비 등 북한 주민을 위한 탈북자 쉼터를 운영했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식사하고 잠을 잤으며 한국 등으로 떠날 때는 여비와 생필품을 지원받았다.

김 선교사는 동갑내기 부인 김희순 사모와 함께 북한의 농업과 가정을 지원했다. 농기계와 발전기, 제빵 기계 등을 소외 가정에 전달했다. 의약품과 의류를 컨테이너에 실어 북에 보내기도 했다.

201410월에 체포된 김국기 선교사와 같은 해 10월에 체포된 최춘길 선교사도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억류돼 있다. 20156월 간첩죄와 국가전복 음모죄 등 혐의를 적용받아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8년째 억류 중이다.

예장 합동중앙 총회는 김 선교사는 단둥에서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며 탈북자와 꽃제비, 조선족들을 돌본 선교사로서 간첩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북한의 이러한 조치는 국제관례는 물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도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춘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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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26일 북한서 기자회견하는 최춘길 씨(도쿄 교도=연합뉴스)

최춘길 선교사는 201412월 단동지역에서 유인납치·억류됐다. 무기노동교화형 선고된 상태다. 과거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최 선교사는 탈북자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지원사역을 하다가 북한에 납치 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더욱 명백히 드러난 주민납치범죄'란 제하의 글에서 "이번에 체포된 괴뢰정보원 첩자 최춘길은 20116월경 중국 심양에서 일하던 우리 여성을 괴뢰정보원 요원 박성화에게 넘겨줘 남쪽으로 유인해간 것을 비롯해 괴뢰정보원의 지령을 받고 2013년까지 5차에 걸쳐 남자 9, 여자 13, 어린이 6명이나 되는 우리 주민을 남쪽으로 빼돌리는 엄중한 범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최 선교사 역시 생사확인이 안 되는 상태이다 

탈북민 출신 선교사

한국에 정착한 뒤 중국에서 탈북민 지원활동을 펼치던 김원호, 고현철, 함진우 씨도 북한에 억류돼있다. 이들은 모두 탈북민출신으로 탈북자 지원 사역을 벌이다. 모두 납치 억류되었다는 사실이 20167월 평양에서의 기자회견으로 억류 사실이 공개됐다이들 역시 생사확인이 되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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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통일부 장관과 대화하는 목회자들.

지난 3월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목사(한교총 전 대표회장, 새에덴교회), 이철 감독회장(기감), 상임대표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원로), 박종화 목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사무총장 허문영 박사(평화한국) 등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 억류 국민 석방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권영세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도 종교계와의 협력 등을 통해 억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송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 지속될것으로 보여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기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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