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결단의 기준, 정의(正意)인가? 언약인가?

사회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신앙은 믿음이 아니다.

2024-07-10 01:57:04  인쇄하기


R (3).jpg

만약 교회가 사회 정의(윤리, 도덕)에 부합하는 문제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온갖 비난의 화살을 교회에 퍼붓는 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관점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고 또 바른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관이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창조의 원리와 인류 역사를 이해하고 인간 만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하에 있음을 믿고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야만 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다.

신사참배와 사회적 정의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가치기준이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가치기준과 같을 수는 없다. 이것이 종종 국가와 기독교간, 사회와 기독교간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 이로 인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사참배이다. 일본제국의 지배하에 조선장로교, 감리교 등이 총회에서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정당화 했다. 총회의 결의는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사회적 정의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 자들은 모두 반국가적, 반사회적, 심지어 반 기독교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할 경우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숱한 고초를 감내해야 만 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투옥된 이는 대략 2000여명에 달하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50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국가, 사회적 정의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정통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유산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을 우러러 찬양한다.

 

∎악한 왕 르호보암을 선택한 유다지파

대부분의 대중이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고 배반을 했지만 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 소수무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가는 스토리가 구약성서 열왕기상 11-12장에 전개되어 있다.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이때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간청하기를 솔로몬 때부터 성전을 건축하느라 너무나 힘든 노역을 해왔는데 이제 성전도 완성되었으니 강제노역에서 풀어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3일 뒤에 오면 답변을 주겠노라 하고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에 원로들은 왕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하며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라고 자문했다. 또 르호보함은 자신과 함께 자라온 젊은 신하들에게 같은 자문을 구한다. 그들은 오히려 아버지 때보다 더 강하게 백성을 다스려야 왕권이 바로 설 것이라고 자문해준다.

 

결국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달콤한 말을 듣고 이렇게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삼 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 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왕상12:12-14)

 

이로 인해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이들을 이끄는 여로보암과 백성들은 자기들의 간청을 거절한 왕을 향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하며 10개 지파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르호보암을 배반하여 떠남으로 이스라엘은 분열을 맞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의 분열이 여호와의 의중임을 밝히고 있다.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왕상12:15)

 

결국 여로보암은 배반한 백성 10지파를 이끌고 북이스라엘 왕이 되고, 반면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두 지파로 구성된 남 유다왕으로 초라하게 전락한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우상 신전을 만들어 우상숭배 하다가 결국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반면, 남 유다지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다.

 

백성들이 강제노역에서 해방시켜달라는 것은 정당한 주장이었다, 이들의 요구들 들어주지 않은 르호보암의 폭압정치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10개 지파가 이스라엘을 배반할 때 그들이 한 말이 매우 중요하다.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왕상12:15)

 배반한 백성들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상관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하면서 자신들은 이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라고 스스로 선포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반면, 악한 왕을 따른 유다지파는 떠난 다른 지파 백성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악한 왕의 부역자라는 비난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또 배반해서 오라는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지파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악한 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선택을 한 것이다.

비록 악한 왕의 폭압정치도, 지금의 분열상황도 모두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있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유다지파는 확신하며 자기자리를 지킨 것이다.

 

나가며

오늘날 교회 내에 그릇된 문제로 말미암아 세상이 온갖 비난의 화살을 교회에 퍼붓는 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단 할것인가?  만약 그것조차 하나님이 허락 하신 일이라고 믿고, 기꺼이 모욕을 감수하고 비난을 받으며 교회를 지킬 각오가 되어 있는가?

언약의 백성이라면 세상의 비난과 조롱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발행인 윤광식

이전글 | 다락방교리에 이단성 있다는 총회 탈퇴자들의 주장에 대한 비판과 권고
다음글 | 선택과 결단의 기준 여론인가? 언약인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