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탈퇴한 자들이 지난 8월1일 장문의 글로 다락방을 교리적 이단으로 매도했다. 대부분의 내용이 다락방 메시지 본질을 왜곡하거나 매우 편협한 신학적 사고로 객관성이 결여된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다. 이들의 이런 행태는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주장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탈퇴를 유혹하려는데 그 저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 가운데는 매우 비성경적이며 정통신학과 배치되는 심각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이들에게 동조하거나 추종하려는 분들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몸소 다락방에서 체험한 사실을 논거로 삼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한국교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했지만 소위 이단감별사 언론 등 극히 일부만 다루고 있고, 오히려 교계언론들은 외면하고 있다는 점은 그들의 주장에서 비성경적 측면이 노출되고 오히려 그 비성경적 주장이 이단성으로 의심되는 점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한 또 다른 의도는 탈퇴 명분을 '교리적 이유라는 것'을 앞세워 다락방을 이단으로 제물 삼아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에 가입하려는 숨은 의도가 없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들이 주장한 상당부분은 기존 교권들이 정치적으로 다락방을 이단 만들기 위해 만든 신학보고서, 또는 이단감별사들이 악의적으로 비난 해온 그동안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들은 다락방에 대해 9개 교단 이단 규정 운운하며 해당교단과 입장을 같이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장 최근에 다락방을 신학 검증한 개혁교단의 ‘다락방에 대한 신학연구보고서(신학위원장 나용화 박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합동을 비롯한 여러 교단의 신학자로 구성해 검증해 다락방을 이단성이 없다고 판단해 이단 해지한 ’다락방 신학검증보고서’ 등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법을 적용할 때는 구법이 아닌 신법 우선의 원칙이 존재한다. 교단들이 20년전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하더라도 가장 최근에 다락방을 이단해지 한 교단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수용해야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탈퇴자들 역시 교권의 눈치나 보며 아양을 떠는 자들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합동 부산노회가 교인이 이동한다며 감정적으로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 베뢰아 아카데미 수료설, 이태화 목사 산해원교회 고무찬양 등 이단관련 음모 조작을 통해 류광수 목사를 면직시키고, 이 면직내용을 근거로 합동 및 주요교단들이 정치적으로 이단몰이 한 것은 한국교회사에 부끄러운 역사이다. 이에 대해 C.C.C 총재 김준곤 목사는 “다락방은 정치적문제로 정죄, 전도운동을 이단시한 합동교단에서 교회사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김준곤 목사는 다락방 전도운동을 직접 살펴보며 C.C.C와 함께 동역할 구상까지 하셨을 뿐 아니라 다락방을 합동교단에서 다시 받아드리도록 노력을 했던 분이다. 필자가 만나본 한국교회 지도자들 대다수는 다락방에 대한 이단정죄는 지나치다는 반응이었다.
필자가 탈퇴자들 글을 살펴본 감상은 이들의 글 자체가 신학적 소양 부족과 편견으로 일부 주장은 비성경적일 뿐아니라 오히려 이단성이 농후한 주장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사탄 강조를 이단으로 매도한 것 자체가 신학적 무지이고 비성경적이다.
언제부터 한국교회에서 마귀, 사탄을 강조하면 신비주의나 이단들의 주장인 것처럼 호도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 일 것이다. 그 배경에는 소위 이단감별사들의 농단이 크다고 본다. 성경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한 말씀 그대로 사탄 마귀와 싸울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정통교회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해 나용화 박사는 “탈퇴자들이 다락방의 신학을 사탄 신학으로 규정한 까닭에, 이에 관하여 우선 언급하자면, 성경은 사탄에 대하여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창3:15, 계20:2, 10, 14)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사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더라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사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성경적이다. “ 라고 지적했다.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닌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다. 사탄과의 싸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락방은 24시 기도할 것을 강조한다. 성령충만한 삶만이 영적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은 정통신학임을 주장하면서도 사탄과의 싸움을 강조한다고 해서 사탄신학으로 매도한다면 그들이 오하려 사탄 옹호 집단으로 지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둘째, 영적싸움을 사탄에게 죄를 전가한 것이라고 매도
이들은 “또 류 목사는 하나님 떠남을 세상, 육신, 저주로 점차 바꾸며 내 책임을 경감시키고 서서히 사탄을 원인자로 부각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다락방에서는 범죄한 인간이 그 모든 것을 사탄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은 죄가 없고 모든 것이 사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억지주장이다. 다락방에서 자신의 죄를 사탄에게 전가하도록 가르친 사실이 없다.
인간이 범죄 하면 그 책임은 죄를 지은 자신에게 있다. 성도라면 자신의죄에 대해 항상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것은 유치부 아이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죄의 조성자 사탄, 마귀의 존재를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사탄은 우리가 범죄 하도록 우는 사자와 같이 노리며 유혹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성경은 사탄을 악의 근원이며, 그의 목적은 인간을 유혹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설사 개인의 범죄 원인을 사탄에게 전가했다 해도 아주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 누가 알겠는가? 그 범죄 함이 사탄이 시켜서 한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을 부인하는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이에 대해 나용화 박사는 ‘예수님의 경우, 죄 회개와 사탄을 꺾는 일이 다 같이 중요하고,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부수적인 것이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악령들을 꺾는 일을 했고(눅10:17),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악령들에게 괴로움 당하는 자들을 힘써 고쳐주었다(행5:16). 이같은 까닭에, 탈퇴자들이 죄 회개와 마귀 꺾는 일 중에 우선순위를 임의로 정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가 않으며, 따라서 다락방이 마귀에게 사로잡힘을 강조한 것을 이유로 하여 교리적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터무니없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뿐 아니라 사탄에게도 책임을 물어 저주한 바 있다(창3:14, 15). “ 고 반박했다.
따라서 성경적으로 죄의 조성자요 악의 근원인 사탄의 정체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를 꺾는 영적싸움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성경적이다. 오히려 사탄의 역할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사탄의 부역자들이요 이단인 것이다.
셋째, 다락방에는 칭의를 통한 성화가 없다는 비성경적 주장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락방은 죄의 책임을 사탄에게만 전적으로 돌리는 데 반하여, 정통신학은 인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하여, 다락방에는 칭의를 통한 성화의 삶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다락방에는 칭의로 말미암은 성화의 삶이 없고, 그래서 다락방 목사들에게는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여 흘리는 회개의 통곡의 눈물이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이들의 주장은 구원론에 오류가 있어 보인다.
성화와 칭의에 대해 칼빈은 성화 없는 칭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나용화 박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3권 11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동시에 칭의와 성화의 유익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면 의롭다 함을 받음은 물론 동시에 성화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칭의로 말미암아 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즉, 칭의는 성화의 원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이 칭의와 성화의 원인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성화를 먼저 다루고 나서(3권 6-10장) 칭의를 나중에 다루었다(3권 11-18장). 그러기에, 칼빈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다락방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칭의와 성화가 있게 마련이다.“ 라고 했다.
한 개인의 일탈이나 부패한 삶, 즉 성화의 삶이 없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참되지 않아 예수님을 그들의 중심에 모시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일부 개인의 일탈을 두고 다락방에 칭의를 통한 성화가 없다고 한 주장은 매우 확증편향적이며 주장자체가 오류이다.
다락방 「복음편지」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문제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사함을 받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복음편지」 p.48, 79) 라고 한 것은 성화의 삶을 가르친 것이다.
일부 목사들의 탐심에 의한 개인적 일탈을 교리적 이단으로 매도한다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단, 선교단체가 전부 이단이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주장이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부정은 신성모독이다.
이들은 “류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설명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독해력 부족이거나 근본적으로 신론과, 기독론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로 역할을 한정 할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잊은 듯하다.
제자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 20:28)이라 표명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딛 2:13)라고 고백한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도 그분의 신성을 선언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라고 되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문제 중 해결 못할 것이 있는가?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찬양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전지전능하심에 비해 표현이 오히려 부족함이 있지 않은가?
탈퇴자 중에는 SNS에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는 성경에도 없는 주장이라며 성경에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예수 믿고도 여전히 성도에게는 여러 문제는 생긴다면서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라는 것은 감언이설이라는 이단감별사들과 같은 주장도 했다.
이들의 세계관은 대단히 세속적이며 육적이다. 이들의 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보일 리 없다. 예를 들어 패니 크로스비는 구원받고도 앞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선물이 되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 라고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성격적이고 성도의 바른 태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한 구세주로만 제한시키는 언어도단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제한하는 신성모독이다./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