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칼럼] 기도를 모으는 사람

복음칼럼리스트 정현국 목사(수원임마누엘교회)

2025-12-06 00:13:30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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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르신들은 물자가 부족했던 시대를 살았었기에 가능하면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쌓아두고 산다. 그래서 가끔 자녀들이 집이라도 올라치면 그들 눈에 불필요하게 보이는 물건들을 버리라고 잔소리한다. 한 해 동안 쓰지 않는 커다란 양동이와 아이들 목욕통 같은 큰 대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 해 동안 냠냠거리면서 맛있게 먹는 김치가 바로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중요도구라는 것은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들은 어쩌다가 필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활의 필요 요구를 버리지 못하므로 미니멀로 사는 젊은이들의 생각과는 다른 맥시멀의 공간을 산다.

사람들의 욕구는 가지고 소유하려는 것에 있으므로 옷에는 주머니가 있고 여러 가방을 종류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집에는 옷장과 책장과 싱크대가 있어 필요를 저장한다. 결국 선택적으로 자기필요를 위해 저장하지만 둘러보면 아이들 말처럼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도 많다. 의미 있게 보았던 책을 아껴서 하나 둘, 모으고 쌓다 보면 버리기 아까운 책들이 집을 좁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만다. 그 책을 다시 들춰서 참고하거나 의미를 되살리는 순간성보다는 자리를 차지하는 보관성이 더 문제인데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 버리는 실천을 하라고 한다. 물건으로 자리 차지하는 공간을 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파트 분리수거 하는 날에 수백만원짜리 비싸 보이는 피아노가 몇천원짜리 스티커에 붙여져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공간정리를 위해 버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운 것은 아까워서 아이들 동화책 버리듯이 버릴 수는 없었다. 내 인생과 신앙과 철학을 부여해준 지식더미를 쓰레기 처리하기는 싫던 중 그만 사랑스런 후배가 책을 찾으므로 일단 1천권 정도를 그에게 주었더니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실물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이 아니라 생각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모으는 가치의 변화를 추구해본다. 사실 이메일과 카톡과 순간적으로 손이 가서 찍는 핸드폰의 사진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 있다. 공간을 차지하기보다는 생각을 지배하는 메스미디어의 확장성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에 무수하게 시간이 낭비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경제의 원리를 터득하여 최소의 공간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있는 자료를 주었는데 그것은 신앙고백의 원리였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나 니케아신경등 무수하고 많은 믿음의 가치를 간단 명료하게 정리된 신앙의 요약으로, 그것이 신앙의 틀이 되어 정리된 개혁신앙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러 샘에서 나오는 물이 강이 되듯이 다양한 신앙고백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분량의 의미를 따라 교회를 구성하고 교단을 형성한다. 성경의 이해를 따라 믿음의 표현방법과 행태는 서로 다르므로 천국에 이르기 전까지 땅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미 목욕한 자(13:10)로 존재하여 사도들의 신앙전승을 고백하는 이들 중의 불의(不義) 함은 몸이 아니라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진정한 신앙 표현의 완성은 기도라고 할 수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찾는 기도를 모으는 것이야 말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충만함이다.

/ 복음칼럼니스트 정현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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