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칼럼] “그러므로 생각하라”

잃어버린 성도의 품격과 전도자의 소명

2026-05-04 08:52:49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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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각하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던졌던 이 짧고 강력한 명령은, 오늘날 영적 치매에 걸린 듯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심장을 찌르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분과 정체성의 망각은 필연적으로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 같은 인생여정을 가져옵니다.

첫째, 우리는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기억의 회복'을 촉구합니다. 요한계시록 25절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본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 소유의 고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신분의 이동을 잊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과거의 어둠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둘째, 세상과 간음하는 신부의 가증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4절은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신부로 부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가치관과 타협하며 영적 간음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뿐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세상의 물질과 성공만을 우상으로 숭배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를 피할 수 없습니다.

셋째, 피 값으로 사신 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라는 신분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620절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합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사신 '피로 값 주고 산' 고귀한 신분입니다. 이 신분을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방종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욕보이는 무거운 죄악입니다. 이제 우리는 망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베드로전서 29절 말씀처럼,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 찬란한 정체성의 회복은 반드시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도의 품격은 골방의 기도에 머물지 않고, 죽어가는 영혼을 향한 발걸음에서 완성됩니다. 사도행전 18절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신분을 회복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당당히 선포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신분을 회복한 자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광은 바로 또 다른 영혼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잃어버린 성도의 품격과 전도자의 사명을 회복하십시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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