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몸살을 앓을 때마다 성도들의 발걸음은 갈라지곤 합니다. 2024년 10월 MBC 피디수첩의 일방적인 다락방 매도 방송과 안티들의 다락방을 향한 악의적 흑색선전과 이단시비는 다락방 교회 공동체에 큰 진통을 안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실망하여 교단과 교회를 이탈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은 ‘복음’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아니면 복음을 전하는 ‘인간’에게 매여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완전한 인간의 허물을 이유로 전도운동의 대열에서 이탈해 비난과 정죄에 몰두하는 행태는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인본주의적 신앙'의 방증입니다. 반면, 사태의 파문 속에서도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원색적 복음만을 붙잡고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야말로 참된 '복음주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뱅(John Calvin)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 제4권에서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두 가지 '교회의 표지'를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는 것’과 ‘성례가 그리스도의 제정대로 순전하게 집행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칼뱅이 '교회 지도자의 도덕적 완벽함'을 교회의 표지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상의 인간과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결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설교자가 비록 허물이 있을지라도, 그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메시지가 성경적이고 바른 복음이라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참된 교회라고 단언했습니다.이러한 칼뱅의 개혁주의 교리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이탈자들이 보이는 행태는 심각한 교리적·영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탈자들은 '메신저'와 '메시지'를 분리하지 못하는 인본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일부 목회자의 윤리적 결함은 뼈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그동안 선포되어 온 성경적 복음과 전도 운동의 당위성까지 무효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말씀은 인간 설교자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의 자생력과 성령의 역사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메신저 때문에 복음의 대열을 이탈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완벽한 인간’이라는 우상을 숭배해 왔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입니다.
둘째, 떠난 자들이 여전히 과거의 공동체를 향해 증명할 수 없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비난의 칼날을 세우며 이단 몰이에 열을 올리는 행태는 복음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칼뱅은 말씀의 본질이 완전히 왜곡되거나 성례가 우상숭배로 변질되어 복음이 파괴된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의 허물이나 사소한 잡음을 이유로 교회를 쉽게 떠나거나 분열시키는 행위를 교만이자 인본주의적 범죄로 엄격히 경계했습니다. 비판과 정죄는 인간의 의를 드러내려는 눈먼 열심일 뿐입니다. 반면 복음주의적 남은 자들은 사람에게 실망할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도 계획은 결코 멈추지 않음을 믿기에, 오늘도 여전히 현장으로 나아가 생명을 살리는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베레아 성도들처럼, 우리는 설교 내용이 성경적인가를 분별해야지 설교자의 도덕적 완벽성을 신앙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을 향한 실망을 넘어, 신앙의 중심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동하는 영적 성숙입니다.
환란과 소문 속에서도 묵묵히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남은 자들이야말로, 칼뱅이 외쳤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돌리는 참된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