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전도운동 올바른 이해-연재] 전도운동의 성경적 근거와 교회사적 배경

다락방전도운동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운동으로 부터 루터, 칼빈, 웨슬레, 무디 운동의 맥을 잇는 복음운동 .

2024-06-14 04:27:55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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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전도운동의 성경적 근거(1:1-14)

다락방 전도운동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중심으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시작하신 순수 복음운동이었고, 기도 모임이었다(1:13-14).

이 운동을 가장 잘 이해했던 바울이 소아시아, 로마와 유럽 전역에 누룩처럼 복음을 번지게 하였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제자들을 양육했고(14:20-28), 지역 요원들을 확립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초대교회 다락방의 본래 모습이었다.

 

다락방 전도의 교회사적 배경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운동-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28:19-20)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이 분부(1:8)하신대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2:1-11)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함에 충분한 힘의 원천인 성령충만함을 입었고 계속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공급받으며,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길 쉬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삶을 특징짓는 주요한 요소였다. 그리하여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보다 더 잘 감당해 왔다. 전체적인 모임과 집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소그룹의 작은 모임들이 계속 되었는데, 그곳에서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누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락방이었다.

핍박 시대의 복음 운동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말씀 운동이었던 다락방 전도 운동은 가는 곳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고, 큰 역사가 일어났다. 반면에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서 핍박 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네로 황제부터 콘스탄틴 시대에 이르기 까지 250년간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전 로마에서 증거 되었고 드디어 주후 313

콘스탄틴 대제때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수밖에 없도록 되었다. 이것이 바로 말씀운동의 능력이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었으며 이루어지는 세계복음화의 과정이었다.

루터 운동- 루터는 복음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이라고 하는 원리를 교회와 신학의 개혁 원리로 제시하였다. 루터는 복음이야 말로 성경을 해석하는 표준임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득의(以信得義) 신앙을 전파하는 말씀 운동을 전개하였다.

 

칼빈 운동 - 칼빈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라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특히 그의 기독교 강요의 기독론에서도 언급한바 그리스도의 삼직(, 선지자, 제사장)을 말하였으며, 그의 주된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 되신 참 하나님이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하였던 그는 이러한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말씀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운동을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성례뿐만 아니라 설교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웨슬레 운동-18세기에 영국을 복음화시키고 부흥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두 인물은 존 웨슬레와 죠지 횟필드이다. 이들은 제도화 되고 형식으로 굳어져 있는 영국 국교회의 모습과는 달리 교회 건물이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 나가 평신도 운동을 전개하였다. 순수한 복음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영국의 대 부흥을 일으켜 18세기말과 19세기의 선교사 대부분이 영국을 통해 파송되게 하였다.

 

무디 운동 -1855421일 주교 교사 캄볼에 의해 양화점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무디는 특히 주일학교에 많은 관심을 보여 현장에서 주일학교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성경말씀을 전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무디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였는데 일생동안 1백만명 이상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군 초기 선교사의 과반수이상이 무디성경학교 출신임을 감안할 때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현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온전히 살았던 사람이다. 이런 무디의 운동이 지금 이 시대에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말씀 운동이며 다락방 운동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다락방 전도운동

전도와 선교 중심 -198782일 부산 영도구 동삼동, 12평의 좁은 장소에서 30여명이 모여 류광수 목사를 담임목사로 시작한 동삼제일교회 (현 임마누엘 교회)로 부터 다락방 전도 운동과 선교 역사는 시작 되었다. 개척교회에 부임한 류 목사는 전도훈련을 개최 한다고 선포했다. 장장 2주 동안의 일정이었다. '전도'에 대한 열정 훈련을 받고 흩어져서 자

기가 처해있는 장소에서 전도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이 전도훈련에 참석했던 교인들의 가슴속에 잘 박힌 못처럼 박힌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6군데의 다락방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류 목사는 개인적으로 공단, 초중고. 대학 등 30여 군데 다락방을 뛰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은 고신대학교 마르투스 수련회에 류 목사가 주 강사로 나선 이후였다. 고신대학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신학을 이야기했지만, 항상 복음이 근저를 이룬 메시지였다. 또한 현장에 대한 충격도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았다.

교회의 가장 큰 변화는 청년부였다. 류 목사는 특히 대학생 청년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학교로, 공단으로 나가야 할 사명을 일깨웠던 것이다. 태종대를 시작으로 부산역과 용두산 공원으로 찬양 전도를 나갔다. 비록 작아 보였지만 이미 문서 선교, 찬양 선교, 어린이 선교, ..대학 선교가 조금씩 틀을 갖추며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35평의 지하교회가 발 디딜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부산수영로교회, 대구 동광교회, 서울 햇불회관, 100주년 기념관 집회 등에서 류 목사는 수백명의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창세기3장 현장과 요원에 대한 메시지가 터져 나오자 많은 목회자들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1994115일 지금의 산 위에 있는 동네로 옮겨 입당예배를 드렸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훈련의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본격적인 전문 사역의 문이 열리면서 전국의 핵심 멤버들이 몰려들었다. 30여개의 선교국이 조직돼 정신치유, 어린이, 치유, 중고, 대학, 청년, 무속, 찬양, 태권도 등 전문사역의 모델을 만들어 갔다.

 

국내외로 뻗어나간 다락방 전도운동

1991년부터 1995년 사이에는 다락방전도훈련원이 설립되면서 국내외의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현장 전도와 다락방식 성경공부 합숙훈련에 참여했다. 초대교회의 살아나는 역사와 은혜, 몰려드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전국과 해외에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의 선교 사역에 구체적인 움직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199410월 다락방전도훈련원은 제1호 선교사로 정지태 목사를 싱가포르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싱가포르 파송은 곧 중국 회교권과 동남아권의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 구축을 위한 귀중한 파송이었다. 이밖에 교단들을 초월해 각 선교지의 선교사들이 앞 다투어 훈련을 받고 갔다. 그런 가운데 1996년을 전후로 다락방 전도운동은 이단 시비에 휩싸이게 되고, 다락방을 하기 위해서는 각 선교지의 선교사들이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다. 소속된 교단, 선교단체, 교회의 배경들을 정리하면서 다락방 전도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해외 선교사들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에는 제1회 선교사 모집이 있었다. 당시 김동권 목사가 선교국장을 맡았는데 그때 5명이 선교사 후보로 등록하였다. 이들은 현재 제3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바울 목사, 일본의 이종우 목사, 남아공의 김종호 목사, 대구의 박광섭 목사, 선교대회의 행정실무를 맡은 유화순 선교사등 5명이다.

해외집회 팀사역을 통해 많은 나라에서 다락방 전도 운동에 참여하는 교회와 일꾼들이 세워졌다. 만남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났다. 1998년 필라델피아 집회를 기점으로 전도캠프 시스템으로 변화되었다.

다락방 선교 역사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다락방 선교 역사 가운데 단기 선교는 팀사역 전도 시절과 전도캠프 시절로 나눌 수 있다.

단기 팀사역 시절, 단기 선교의 열매는 장기 선교로 연결되었다. 단기 선교의 열매들에 의해 선교지 문이 열리고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으며, 지역 선교 거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

이어 매년 12차례 이상 해외 집회가 열리면서, 그때마다 해외 현지 전도 캠프가 열리며 해외 현지마다 전도시스템이 세워지고 일꾼들이 일어나는 등 해외에서도 역시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락방 전도 운동의 바톤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다락방 전도운동 하는 교회들이 해외 각 나라마다 세워지며 현지 다락방 전도운동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1994년 제1호 선교사 파송 이후 30년 동안 선교 역사를 쓰고 있는 세계복음화전도협회는 237나라, 5천종족을 살리는 복음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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