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택과 결단 ④ 전도운동에 생을 건 전도자들

교권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다락방전도운동을 선택한 목회자들

2025-07-10 23:44:07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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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들이 다락방 확산 저지에 나서자 전도운동에 참여한 1천여 목회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한국선교신문. 95.9.17)

한국교회 개신교 100년의 역사상 목회자와 성도들이 가장 많은 순교와 핍박을 당한 때가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한 때이고 그 이후는 6.25 전쟁 당시 공산당의 배교 강요에 맞서 순교와 핍박을 당한 때일 것이다. 이는 모두 기독교 내부가 아닌 일제의 공권력과 북한 공산당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 이후 한국 기독교 내부에서 교권에 의해 수백여 명의 목사들이 일거에 제명, 면직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초대교회처럼 성경적인 복음 전도운동을 하겠다는 목회자들을 참혹하게 내친 것이다목사가 소속 교단에서 면직되고 제명당해 축출당하는 것은 목회 생명을 끊는 것과 같다. 하루아침에 교회에서 쫒겨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동료 목회자가 등을 돌리고 교단에서 쫒겨난 목회자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속에 정신적 심적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다.  이는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마치 중세교회 당시 왈도파가 현장에서 설교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성직자와 그의 가족들이 마녀사냥식 종교재판에 의해 무참히 참형을 당해 순교를 당한 것 같은 사건이었다 

당시 다락방 전동운동에 참가한 700여명의 목사들을 이단이란 굴레를 씌워 제명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당시 다락방 전도운동에 동참해 훈련을 받은 목회자는 1만여 명으로 거의 모든 교단에서 류광수 목사가 펼치는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가했다. 다락방 전도운동은 원색복음으로 인해 파급력이 컸다. 국내 알려진 거의 모든 대형교회들은 류광수 목사를 앞 다투어 강사로 초빙하는가 하면, 전국과 해외까지 전도학교가 세워지면서 한국교회에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 되었다.

다락방 전도운동의 확산에 따라 부작용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락방 전도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목회자들과 성도들로 인해 교회 분쟁이 발생하거나 개교회 다락방 전도운동으로 인한 교인의 이동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고스란히 류광수 목사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런 문제들을 산해원교회, 베뢰아 아카데미 관련설 등 전혀 사실이 아니 였음에도 다락방 확산 저지를 위해 이단시비로 연결하려는 교권 정치인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었다.

당시 전도운동에 가장 많은 목사들이 참여한 교단은 합동, 통합, 고신출신들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정통교단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자들로서 다락방 전도운동이 지극히 성경적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단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다락방 전도운동과 손절했다.

그러나 700여명의 목사들은 교권의 회유, 압박을 거부하고 다락방전도운동에 생을 걸기로 하고 기꺼이 소속 교단으로부터 제명 또는 면직 처분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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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각 교단 차원의 다락방에 대한 핍박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예장고려로부터 시작된 핍박은 고신, 합동, 통합, 개혁, 기성, 기침, 기감, 순복음 등 거의 모든 교단으로 번졌다. 이 핍박은 2013114일 한국기독교 총연합회가 다락방 전도운동은 이단성이 없다고 해제선언을 했음에도 여전히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목회자들이 다락방 전도운동 관련자라는 이유로 죄 아닌 죄명아래 제명, 면직을 당해왔고 심지어 개척한 교회마저 몰수당하고 한 겨울에 거리로 쫓겨난 목회자도 있었다. 이 핍박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이어졌다. 

한국교회 역사상 오직 바른 성경적인 전도운동을 하겠다고 참여한 목회자들을 교단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제명, 면직 처리한 사건은 중세교회의 마녀사냥식 재판에 비견할 만큼 한국 교회사에서 너무도 큰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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