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 제기된 신학적 비판에 대한 변증

렘넌트신학연구원 교수단 성명서 통해 발표

2024-11-06 23:37:54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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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넌트신학연구원 교수단은 116일 성명서를 통해 렘넌트신학연구원에 다년 간 교수로 활동했던 모 신학자가 최근 모방송사의 다락방에 대한 일방적 편향 보도 이후, 다락방에 대하여 신학적 비판을 제기 한데 대하여 변증을 발표했다.

[ 다음은 변증 전문 : 본 변증은 교수단 성명서에서 발췌 편집된 것임 ]

 

제기된 비판에 대한 변증적 답변

 

1. 칭의 교리와 관련하여,

 

최근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다락방 관련, 방송 내용상의 편집의 공정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다락방 운동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 다년간 주요 교수로 활동했던 신학자가 칭의론과 성화의 문제를 언급하는 중에, "의롭다 함을 받은 까닭에, 성도는 죄를 범할 수 없고, 따라서 성도는 어떤 행동을 해도 죄가 안 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는 주장을 예로 들어 류광수 목사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의 출처가 매우 불분명하며, 그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근거로 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호도(糊塗)하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성도는.. 어떤 행동을 해도 죄가 안 된다고 했다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한 수준의 언설(言說)은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천박한 영지주의적인 사상일 뿐이다.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는 그러한 천박한 사상을 결코 가르치지 않으며, 다락방 전도운동이 마치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심각한 사실 왜곡인 것이다. 전도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 교리적 비판을 명확한 자료적 근거와 출처의 뒷받침도 없이, 제기하는 것은 그 비판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류 목사 뿐 아니라 렘넌트신학연구원은 개혁주의 칭의론과 성화론을 교리적 기초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11-6, 8:30, 3:24; 3:23, 28, 5:1, 5:8-10; 3:8; 대요리문답 70-71, 3:22, 24, 25, 4:5 소요리문답 33, 1:7; 고후5:21] 또한 렘넌트신학연구원 교수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며, 칭의가 죄책의 면제이며, 법정적 선언으로서 지위의 변화를 나타낼 뿐, 죄의 오염(부패)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죄를 씻고 이겨내는 성화의 생활이 일생 동안 계속되어야 함을 믿는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7, 고전6:11, 1:30; 8:30, 4:6-8].

 

우리는 칭의를 통한 죄책의 면제와, 믿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전가의 교리를 믿으며, 성화를 통해 죄를 이기는 생활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한다[대요리문답 77, 고전6:11, 1:30; 8:30, 4:6-8]. 따라서 우리는 칭의론 교리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이 땅의 교회들과 함께 개혁주의 신학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음을 밝힌다.

 

다락방 전도운동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19:30)라는 복음의 완전성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죄에서 해방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죄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전도과정에서 그리스도께서 다 끝낸 사실을 강조하면서, 성화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전도자의 삶을 통해서 날마다 말씀, 기도, 전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전도자의 삶을 중심으로, “성화의 삶의 체계를 강조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도자의 삶은 철저한 성화의 삶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성삼위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진정 그분의 뜻과 계획에 따라 말씀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겸손한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칭의만 알고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죄의 오염과 그로 인한 자범죄를 모른 까닭이다" 라는 비판은 지극히 자의적인 견강부회적 왜곡임을 분명히 밝힌다. 더 나아가 "류 목사의 칭의론은 겉으로 보아서는 성경적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비성경적 이단"이라는 비난 역시 다락방 전도운동의 문서자료들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피상적 이해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이요, 신학적 왜곡임을 분명히 밝힌다. 자료에 대한 불충분한 분석과 그릇된 해석에 의지하여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을 비난하는 것은 크나큰 신학적 오류요, 학문적 실수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그래서 반율법주의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도덕적 타락이 가능케 된다"라는 비판 역시, 근거가 없는 주장들의 귀결에 불과하며, 주장하려면 그러한 주장의 출처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모든 것에 대한 도의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인지 진심으로 묻는다.

 

2.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다락방 류광수 목사는 오직 복음이면 다 되기 때문에 율법은 필요없다고 가르친다"라는 주장과 율법무용론이나 반율법주의를 가르친다라는 주장은 주관적 곡해일 뿐, 객관적 근거도 신학적 정당성도 없는 비판임을 분명히 밝힌다.

 

복음은 율법과 대립하지 않는다. 성도의 삶의 규범으로서 율법은 복음과 함께하며 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도 분명하다. 복음을 통해 중생한 신자들에게 도덕법(율법)은 유용하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7, 6:14; 7:4,6; 4:4,5]. 특히 신자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십계명은 복음 안에서 계속 가르쳐져야 할 것이다. 다락방 전도운동에서는 도덕법(율법)인 십계명을 결코 누락시키거나 빼놓지 않고 정상적으로 가르쳐 왔음은 문서상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 바[류광수, 출애굽기설교 44, “하나님의 계명”(20:1-17)], 다락방 전도운동을 반율법주의, 무율법주의의 프레임을 덧씌워 비난하는 것은, 명백히 반() 사실적이며 어떠한 근거도 없는 일방적 비판임을 분명히 한다.

 

과연 "십계명"에 대한 가르침을 포함하는 전도운동 단체에 대해 무율법주의라는 비판이 정상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다락방 전도운동에서는 앞서 확인한 바대로 "성도의 삶의 규범"으로서의 율법(도덕법)을 복음과 함께 가르쳐 왔음을 분명히 한다.

 

다락방 전도운동은 순수한 전도운동이다.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사역은 성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멸망할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보다 더 근원적으로 성화된 삶이 있는지 묻고 싶다. 신학을 연구하고 논문을 써서 교회를 섬기는 일이 거룩하다면, 죽어가는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살리고 회복하고 치유하는 사역 또한 거룩한 성화의 삶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고 주장한다"는 경박한 비판 역시, 다락방 전도운동을 무율법주의로 폄훼하기 위해 인위적인 가정(假定)으로, 흔히 말하는 뇌피셜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복음을 받고 감격하며, 고통받고 있는 현장에 나가서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것이 성화의 삶이 아니라면, 더 거룩한 성화의 삶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단 한 번이라도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해보고, 해방과 구원과 치유의 역사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면, 다락방 전도운동이 무율법주의가 되고, 반율법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리한 비난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목회자의 일탈을 보고, 다락방 전도운동과 거기에 나타난 신학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비판일 수 없다. 신학에 대한 비판은 합리적인 근거와 자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윤리적 일탈을 절대적 잣대로 삼아 신학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하루아침에 뒤엎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더욱이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표준 문서의 교리를 다락방 전도운동에서 누가 반박하고, 누가 부인하는가? 다락방 전도운동은 결코 개혁주의 표준 문서를 부정하거나 변경시키지 않고 당연히 가르치며, 교리의 중요한 기초로 삼고 있다.

 

윤리적 일탈로 물의를 일으킨 목회자들은 제명 및 면직 처리하였으며, 법적 잘못에 대해서는 이미 사법적 처리가 되었다. 남은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단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철저한 회개와 갱신에 매진할 것임을 밝힌다. 다만 윤리적 흠결의 문제로 다락방 전도 운동이 갖는 전도운동의 본질과 특성을 부정하고, 무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라는 신학적 프레임을 씌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매우 개탄스러우며, 속히 정상을 되찾기를 촉구한다.

 

다락방 전도운동은 지난 30여 년간 현장에서 순수한 전도운동을 펼쳐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공과(功過)가 있음도 부정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은 계속 고쳐나갈 것임도 분명히 한다. 복음운동에 매진해온 다락방 전도운동이 보여준 증거와 열매들은 간과하고, 일부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하여,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에 대하여 비난하는 일을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20여 년 동안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 조직신학과 교리교육을 담당해온 교수들이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을 남의 일처럼 비난하는 것은 자기모순적 행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며, 신학에 문제가 있다면 오랜 시간 동안 신학을 가르쳐 온 그들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양식 있는 학자요, 목회자들로서의 품격을되찾기를 촉구한다.

 

 

3. 배타적인 영적 교만이 타락을 불러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수사적 언어와 사실의 언어

 

배타적인 영적 교만이 타락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오해에 기반 된 주장임을 밝힌다. 특히 예로 들었던 "2000년 만에 회복된 전도 운동"이라는 표현은, 확신에서 비롯된 일종의 수사적 표현일 뿐, 엄격한 사실을 표현하는 사실 언어가 아님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문구가 갖는 수사적 의미를 과장하여,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배타적 영적 교만이 타락을 부추겼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해석임을 분명히 한다.

 

류광수 목사의 어법에는 현장의 영적 시급성과 복음 전파의 본질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사적 표현들이 종종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표현의 취지는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다만 그러한 표현이 오해를 야기하고 배타적 교만으로 흐른다면 마땅히 경계하고, 진정한 의미와 의도를 바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함을 분명히 인식한다. 배타적 표현과 교만한 요소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쳐나갈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한다.

다락방 전도운동에 함께 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 표현의 수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사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2000년 만에 회복된이라는 표현이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갖고 사용해온 점도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 역사에 전도운동이 없었다는 주장도 아니고, 다락방 전도운동만 배타적으로 옳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이 용어는 내부의 언어로서 일종의 확신적 표현이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따라서 영적 배타성과 교만이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은 논리적 비약이다. 일부 목회자들의 일탈과 객관적으로 확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엮어서 "배타적 영적 교만이 타락을 불러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락방 전도운동과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건전한 교회들과 목사들에 대한 모욕이며,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즉시 비난을 중단하고, “타락이라는 표현을 거두어들이기를 촉구한다.

 

 

4. 류광수 목사의 1인 체제에 대하여: 전도훈련의 특성과 신학적 측면에서의 답변

 

다락방에서 류광수 목사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이라는 비유는 완전히 그릇된 주장임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비판은 다락방 전도운동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다락방 전도운동은 30여 년 전 현장 전도에 집중하던 류광수 목사를 통해 시작되었고, 수많은 현장의 증거와, 복음을 통해 일어난 증거를 앞서 본 것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구조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그 점을 익히 알고, 류광수 목사를 통해 가르쳐지는 전도훈련에 대해 공감과 감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동참해 왔다.

 

하나님께서 류 목사에게 주신 은혜와 현장에서 나타난 전도 역사와 증거들을 공유하면서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다락방 전도운동이 성경적인 전도운동임을 확인하고, 이 전도운동에 참여해왔음이 사실이다.

 

특히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한 교회와 목회자들은, 류광수 목사를 통해 확인된 성경적 전도운동(28:16-20, 16:15-20, 1:8, 16:25-27)에 대한 확신 속에서 지난 30여 년 이상 체계적인 전도훈련을 지속해왔다. 훈련의 특성상 다락방 전도운동은 그 전문성과 전도자의 중심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먼저 보았고, 먼저 가본 길을 가본 증인이, 이후에 따라오는 제자들을 바르게 안내하고 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류광수 목사를 구심점으로 전도운동이 전개되어 온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전도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강제되는 일은 결코 없었으며(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강제한다고 강제가 되는 시대인가?), 전국의 모든 교회가 자발적으로 순수하게 전도운동에 참여해 왔기에, 각 교회들은 독립적인 당회와 노회로 조직되어 교단과 노회 정치를 따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류광수 목사가 메시지와 전도훈련을 주관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단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복음운동과 전도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복음 전도자를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에 빗대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나 그 본질과 맥락이 완전히 벗어난 비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도훈련의 구조와 특성상 훈련 메시지와 훈련 과정에서 1인 중심이든 3인 중심이든 그것은 현실적 필요에 따른 것일 뿐, 본질적으로 1인 중심 체제라고 해서, 마치 협의가 전제된 권력을 독점하는 독재라고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특별히 개교회가 필요로 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경우, "수요자" 입장에서 공급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본인과 교회가 이러한 훈련 방식이 맞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락방 전도운동은 들어오고 나감이 자유로우며, 훈련 참여도 완전히 자율적이라는 것은 훈련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사실이다. 개교회의 독립성은 100% 보장되며, 훈련은 개교회가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누가 강제하며 누가 강요하는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전도운동을 “1인 체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전후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실상과 맞지 않는 비난일 뿐인 것이다. 더욱이 30여 년 이상 흘러오면서 형성된 다양한 세부 훈련들은 그 제자들이 실무진으로, 메신저로 분담하여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락방 전도운동은 한국과 전 세계 현장 곳곳에서 수많은 헌신된 목회자들과 평신도 전도자들까지 함께 참여하여 전개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류광수 목사 1인 체제라는 비판은 전도운동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 것이다.

 

둘째, 신학 강의와 관련해서 "주요 신학 강의도 류 목사가 한다. 그래서 다락방의 렘넌트신학연구원은 류 목사의 특강이 핵심이다. 다른 교수들은 존재 의미가 별로 없고, 그래서 전임 교수가 사실상 없다"라고 비판은, 비판자 개인의 인식일 뿐, 사실과 매우 괴리된 주장임을 분명히 한다.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 류 목사는 매학기 네 차례에 걸쳐 한 시간 특강 외에는 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신학교에서 교리와 조직신학 전체를 맡아서, 10년 이상의 오랜 기간 동안 행해진 본인들의 강의와 신학이 학생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는 것인가? 류 목사 1인 체제와 영향에 대해서 지적하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통해 교리와 조직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당사자들의 영향은 없다는 것인가? 그들의 비판대로 렘넌트신학연구원과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이 문제가 있다면 본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뿐 아니라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는 어떤 교수에게도 특정 노선을 따를 것을 강제하지 않는다. 성경과 개혁주의 노선에 서서 자유롭게 강의가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렘넌트신학연구원이 “1인 체제라는 비판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요, 아무런 설득력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이고 사적인 비판인 것이다.

많은 강의 시간을 할애받았던 교수들로서,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이 무율법주의였다면 바로 잡았어야 할 책임이 본인들에게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오랜 기간 행해진 강의를 통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을 방치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향을 미쳤다면 다락방 전도운동에 나타난 신학이 무율법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렘넌트신학연구원에서 가르치는 다른 여러 교수들을 통해 목회적으로나 전도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많은 신학생들의 증언을 철저히 조사하고 수집한 데이터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졸업하고 일선 목회사역 중인 졸업생 목회자들에 대해 얼마나 엄밀하게 증거를 확인하고 판단을 내린 것인지 묻고 싶다. 다른 교수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쉽게 평가절하 해버리는 것이 과연 식견 있는 신학자요, 목회자로서의 온당한 태도인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렘넌트신학연구원 교수단은 학문적 연구의 자율성을 갖고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1인 체제, “다른 교수들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비판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 판단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도 분명히 밝힌다.

 

 

5. 개혁총회에서 이루어졌던 류광수 목사의 신학 검증에 대해,

 

류광수 목사의 신학 검증할 당시 잘 몰랐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태도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단성이 없다고 검증을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후회할 일이 아니라 크게 회개할 일이다.

 

개혁총회에서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를 평가 시에, 검증단은 개혁주의 표준 문서들에 근거해서 다락방 전도운동과 신학을 조목조목 검증하고 이단성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었다[참조: 개혁총회의 신학적 입장과 다락방 전도운동, “전도총회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에 대한 평가” pp. 58-85, 2011.4.16]

 

그러한 분석과 검증이, 일부 목사들의 일탈로 야기된 문제들 때문에 이제는 잘못됐다는 주장은, 그 검증이 가진 신학적 무게와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너무도 경솔한 처사이며, 논리적이지도 않고, 학문적 진실성도 담보하기 어려운 모순적 행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상황과 이해를 따라 말과 입장을 바꾼다면 어떻게 학문적 정당성과 품격을 지킬 수 있는 것인가? 평생 신학자의 길을 걸어온 중요한 신학자로서의 품격을 지켜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2024. 11. 6

 

렘넌트신학연구원 교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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