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이 유대 사회의 오랜 편견을 깨고 우물가에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셨던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강도 만난 자를 진심으로 돌보아주어 인류의 귀감이 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 사마리아인들이, 놀랍게도 오늘날 이스라엘의 그리심산 자락에 모여 구약 유대교의 고대 율법 그대로 양을 잡고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내며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간은 수천 년 전 구약 성경의 한 페이지에 그대로 멈춰 서 있습니다.
사마리아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는 기원전 8세기, 북이스라엘 제국이 잔혹한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사마리아 땅에 남겨진 히브리인들과 사방에서 들어온 이방 민족들이 섞이면서 혈통적·종교적 혼혈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남쪽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통성을 주장하던 남유다 계열의 유대인들로부터 '혈통과 여호와 신앙을 더럽힌 더러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수천 년간 멸시와 증오를 주고받았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항하여 자신들만의 거룩한 성지인 그리심산에 사원과 성전을 건축했으나, 기원전 2세기 유대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히르카누스 군대에 의해 성전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피의 보복을 당했습니다. 이후 비잔틴 제국 시절에는 생존을 걸고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자비한 대학살을 당하면서, 수백만 명에 달하던 사마리아인의 인구는 급격하게 역사 속 마이너리티로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끊임없는 외부의 박해와 극단적인 근친혼으로 인해 전 세계에 단 146명의 사마리아인만 남게 되는 멸종 직전의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종족의 전멸을 막기 위해 이들은 수천 년간 지켜온 순혈주의 율법을 깨고,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 여성이나 외국인 기독교 여성의 개종과 혼인을 허용하는 파격적인 생존 전략을 택했습니다. 덕분에 인구가 다소 회복되어 현재는 약 850에서 900명 수준의 신자들이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의 나블루스(그리심산 자락의 키르얏 루자 마을)와 이스라엘 본토의 홀론 지역 두 곳에 철저히 고립된 집단 부락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가 서기 70년 성전 파괴 이후 동물 제사를 폐지한 것과 달리, 매년 유월절마다 온 마을 사람이 흰 옷을 입고 그리심산에 모여 수십 마리의 양을 잔인하게 도축하고 피를 흘려 고기를 굽는 고대 구약의 제사 형태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교의 신앙 체계는매우 단순하면서도 완고한 5대 교리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유일신 여호와, 둘째는 위대한 예언자 모세, 셋째는 정통 성경으로서의 모세오경(유대교의 성경과 단어와 문맥이 다른 사마리아 오경), 넷째는 진짜 신성한 성지 그리심산, 다섯째는 마지막 날에 찾아올 메시아인 '타헵'의 도래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쓰인 다윗 왕조의 역사나 시편, 그리고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서들을 모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입치에 맞게 조작하고 위조한 가짜 경전이라 부르며 철저히 배격합니다. 조직 구성 역시 인구가 워낙 적기 때문에 어떠한 종파의 분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세의 형 아론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단 한 명의 '대제사장' 체제 아래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종교적 통제를 받습니다.
사마리아교를 바라보는 기독교적 영적 진단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며 단번에 완성하시고 폐기하신 구약의 동물 제사와 의문의 율법에 여전히 영적으로 묶여 있다는 점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진짜 제물이자 실체이신 예수님이 이미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마다 양의 목을 따고 피를 흘려야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림자 속에 갇혀 있는 안타까운 영적 소경 상태인 것입니다.
이들을 향한 복음화 전략은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유대 사회의 금기를 깨고 사마리아 여인을 직접 찾아가 우물가에서 만나주셨던 그 사랑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합니다. 이들이 유일하게 정통으로 믿는 사마리아 오경 중 신명기 18:15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 즉 그들이 수천 년간 눈물로 기다려온 메시아 '타헵'의 실체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성경 구절을 통해 논리적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심산이라는 좁은 지리적 공간에 갇혀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겨우 신의 진노를 면한다는 영적 공포에서 이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1-23)" 하신 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유월절 어린 양으로 단번에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함으로써 수천 년 묵은 종교적 매임에서 벗어나 참된 예배의 자유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