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리즈] 2편: '독특한 계율'의 종교 ④ 자이나교(Jainism)

행위의 감옥에 갇힌 수행자들

2026-08-23 23:36:36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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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입에는 온종일 하얀 마스크를 굳게 쓰고 손에는 부드러운 빗자루를 든 채 온 신경을 땅바닥에 집중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숨을 깊이 쉬다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삼켜 죽일까 봐, 길을 걷다가 발밑의 작은 개미 한 마리라도 밟아 생명을 해칠까 봐 평생을 극도의 영적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철저하고도 처절하게 불살생을 실천하는 인도의 고대 종교, 자이나교 신자들의 일상입니다.

자이나교의 역사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 고대 힌두교의 모순적인 카스트 신분 제도와 동물을 대량으로 학살하던 제사 의식에 강력히 반발하며 불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이 종교를 확립하고 집대성한 인물은 24번째 위대한 구도자로 추앙받는 '마하비라(바르다마나)'입니다. 그는 석가모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왕족이었으나, 부귀영화를 미련 없이 버리고 육체를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 끝에 마침내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얻어 '(Jina, 승리자)'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인도의 극심한 가뭄을 피해 남인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계율을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두 개의 커다란 종파로 완전히 갈라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교가 지나친 고행과 쾌락을 모두 피하는 실용적인 '중도'를 선택했다면, 자이나교는 영혼에 묻은 더러운 물질을 털어내기 위해 육체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괴롭히는 '엄숙주의적 고행'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오늘날 인도 인구 중 자이나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0.4%, 수치로는 약 500만에서 600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사회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땅을 일구는 농업은 지렁이나 곤충을 필연적으로 죽이게 되므로 계율상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들은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 살생이 없는 상업, 금융업, 법조계, 그리고 보석 가공업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자이나교 공동체는 인도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최고의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사회적 성공 뒤편에 가려진 이들의 내면은 영적 강박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평신도조차 철저한 채식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땅속의 뿌리식물인 감자, 양파, 마늘 등은 수확할 때 무수한 미생물을 죽이고 식물 자체의 목숨을 끊는 행위라 보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심지어 밤에는 사소한 전등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가냘픈 곤충들이 타 죽을까 봐 일몰 후에는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는 처절한 규칙의 굴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핵심 교리는 '아힘사', 즉 절대적인 비폭력과 불살생으로 요약됩니다. 자이나교 세계관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신체적 행동과 말, 심지어 마음속으로 품는 작은 생각까지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질적 '(Karma)'이 되어 영혼의 순결함을 더럽히고 들러붙는다고 믿습니다. 이 무거운 죄의 업을 오직 인간 스스로의 고행과 철저한 계율 수행으로만 털어낼 수 있으며, 그렇게 영혼이 가벼워져야만 윤회의 굴레를 끊고 최고의 구원 상태인 '모크샤'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주를 다스리는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원칙적으로 부인하는 무신론적 종교이기에, 오직 스스로 고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인간만이 신의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종파를 살펴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나체로 수행하며 물질적 무소유를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정통 보수파인 공의파(하늘을 옷 입은 자들), 사제들이 최소한의 하얀 옷을 입는 것을 허용하고 미생물 살생을 막기 위해 상시 마스크를 쓰며 빗자루로 길을 쓸고 다니는 온건파인 백의파로 나뉘어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이나교를 바라보는 영적 진단은

이들이 전형적인 자력 구원과 인본주의적 행위 구원론의 극단적인 감옥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무의식중에 저지른 작은 미생물 살생 하나조차 자신을 처참한 지옥의 형벌로 이끌 수 있다는 강박적인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오직 인간 자신의 완벽한 노력으로만 죄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무거운 종교적 정죄감 때문에 내면의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눈곱만큼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인지하고 있으나, 그 해결책을 썩어질 인간의 가냘픈 종교 행위에서 찾으려 하는 치명적인 영적 모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가진 정밀한 지성과 영적인 진지함을 먼저 존중해주면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떤 인간의 완벽한 율법 행위와 의로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성경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안식의 초청을 그들의 영혼에 들려주어야 합니다. 미생물의 생명까지 아끼려 애쓰는 그들의 고결한 열망을 '천하보다 귀한 인간 영혼의 본질적 가치'로 승화시켜 주어야 하며, 스스로 업을 씻기 위한 피 말리는 고행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의 업을 단 한 번에 청산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은혜'를 선포해야 합니다. 내 노력을 멈추고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참된 구원의 평안(Shalom)을 맛보게 하여, 이들을 스스로 만든 행위의 감옥에서 해방하는 것이 선교의 핵심 전략입니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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