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규 목사(예장 합동, 기독신보 발행인)
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보이듯이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예의 주시한 '다락방 전도운동' 논란이 종결되었다. 한기총의 세 차례(홍재철, 이영훈 대표회장 시)에 걸친 긴 검증을 통해 '이단성 없음'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교단에서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교인 이동한다고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엮어서 이단의 올무를 씌운 변질된 이 사태를 신중히 재검토하여 한국교회의 신앙적 정체성 확립과 교회의 연합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한 연대와 힘의 결집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다락방 전도운동 논란'의 핵심에 류광수 목사가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한 그는 전도의 열정을 품고 헌신하였다. 다락방 전도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7년 9월 30일 부산 영도에 소재한 동삼제일교회(현 부산 임마누엘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이다.
류 목사는 부임 즉시 전교인을 상대로 전도훈련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교회의 성장만이 아니라 전도운동이 확산되었다. 그 후 류 목사의 전도사역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웃 교회에서 자기 교회 교인들이 동삼제일교회로 옮겨간다고 항의를 하고 또 소속된 부산노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1991년 4월 부산노회 정기노회에서 마산 산해원교회를 방문하였기에 이단 관련 죄, 그 교회가 많이 모이고 열심이라고 칭찬하였으니 이단 고무 찬양죄로 제소되어 류광수 목사에 대해 '당회장권 1년 박탈, 1년 근신, 1년간 대회 일체금지, 기 조직된 사조직 해체' 등을 투표로 결정하였다.
동삼제일교회 교인들과 류 목사는 1991년 10월 24일 노회 탈퇴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부산노회는 1991년 11월 26일 제133회 제1차 임시노회를 열어 류 목사에 대해 상회 불신 불복종, 이단사상 전파 등 여러 가지 죄목으로 목사면직 처분을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면직처분이 정당하였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탈퇴하면 노회원이 아닌데 목사면직을 할 수 있을까? 또 산해원교회 방문이 죄목인데 그 교회 이태화 목사는 이단 시비에서 해제되어 전국규모 교단집회의 강사로 수고하였다. 만약 산해원교회에 가서 배웠다고 치더라도 가르친 사람은 이단에서 해제되고 배운 사람(?)은 이단이 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가 일어났다.
합동총회의 이단 정죄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하는 목회자가 늘어나 예장합동 총회에 소속한 목사 3,000명 이상이 전도훈련을 받았다. 1995년 9월 제80회 합동총회에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신학부 안에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
1996년 1월 30일 이상강 목사와 박학곤 목사는 류광수 목사에 도덕적인 면, 정치적인 면, 이단적인 면에 있어서 조사위원회의 질의서를 보냈다.
류광수 목사는 2월 15일 답변서를 보내왔고, 3월 11일 총신대학교 총장에게 류광수 목사가 보낸 답변서와 다락방 책자와 테이프들을 보내면서 이단성 여부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였다.
총신대학교 총장은 그것을 총신대 교수 3인에게 조사 의뢰하였다. 그리고 7월 13일 교수들이 연구보고서를 보내왔다. 그 보고서에는 류광수 목사의 귀신론이 김기동 씨의 귀신론과 흡사하다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흡사'이다. 같은 것이 아니라 '흡사'하다는 것으로 엮어서 몰아갔다.
7월 19일 신학부장 이재영 목사가 교수 3인의 연구보고서를 받아 실행위원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기독신보>(현재 기독신문) 1면과 9면 전면에 신학부장 이재영 목사는 류광수 목사 이단 규정을 발표하였다.
신학부는 1996년 7월 19일 신학부 실행위원회 결정대로 다락방운동연구 작업 종결, 신학부에서 총신대 교수 연구보고서를 받기로 가결했다. 반면, 이단성 규명 위원장 이상강 목사는 신학부 결정이 법적 효력이 없는 무효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총회는 총회 산하 교역자 다락방 집회 참석 불허하기로 했다. 교단지 기독신문은 '류광수 구원론 및 교회론 중대 결함 있다. 류광수 씨와 김기동 씨 귀신론 흡사하다. 류광수 다락방 전도운동은 성경적 전도운동이 아니다.'라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전국교회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류광수 목사를 이단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1996년 9월 제81회 예장 합동총회가 청주중앙교회에서 소집되어, 총회장 김준규 목사의 사회로 신학부장 이재영 목사가 '부산노회 제133회 1차 임시노회(1991년 11월 26일) 이단 면직 사유 ③ 이단 집단인 김기동파의 귀신론 사상을 배워 주장함'이란 죄명으로 류광수 목사를 이단으로 결정하였고, 류광수 다락방에 연관된 자들은 각 노회에서 징계하기로 가결하였다.
이렇게 하여 다락방 전도운동이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노회로 하여금 징계하게 하였다. 이런 분위기가 다른 교단에도 확산되어, 이단, 사이비성 등으로 규정되었다.
전도총회의 조직, 홀로서기
교단에서 징계를 받은 목회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단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른바 '다락방 교회들'이 모여 노회를 조직하고 이어서 1997년 9월 10일 대한예수교장로회(전도) 총회를 조직하였다.
초대 총회장에 피선된 박지온 목사는 '전도에 방해가 되면 언제든지 총회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하여 전도 제일주의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독자적 교단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며 모든 것을 전도에 올인하는 자세를 지켜나갔다.
전도총회는 산하 17개 노회와 교회수 500개, 목사 755명, 선교사는 24개국에 200명이 파송되어 있는 실정이다. 전도총회는 총회신학교(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904)를 설립하여 매년 100명 이상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합동총회에 복귀 청원
2005년 2월 25일자 예장합동 총회기관지 「기독신문」 8면에 예장 전도총회 총회장 정은주 목사, 증경총회장 박지온, 김동권, 박이석 목사와 류광수 목사의 이름으로 예장 전도총회 복귀 청원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잘못된 점은 언제든지 고치겠습니다. 저희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에 속하여 헌신하기로 소원하며 귀 총회의 1만 교회운동에 작은 힘이나마 정성을 다해 섬기기를 원합니다. 특히 총회장님과 총회 임원들과 전국 교회 앞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기를 원합니다. 결코 과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전국 교회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후 6월 2일자 「기독신문」 1면에 전도총회 복귀 청원한 관계자 전원과 복귀 청원 영입위원장 임태득 총회장 이하 6인 전원과 총무 이재영 목사가 서울 팔래스호텔 로즈홀에서 회합을 가졌다. 그리고 정은주 목사와 류광수 목사, 김동권 목사 등 5명이 총회 관계자들과 첫 대면하여 회합을 가졌다는 것이 특집 보도되었다.
2005년 3월 전도총회가 예장합동총회에 복귀 청원을 함에 따라 예장합동총회와 전도총회는 영입위원 7인을 선출하여 양측 대표들이 합석하여 논의했으나, 2005년 9월 예장 합동총회에서 전도총회 복귀가 무산되었다. 그러나 양측 대표들이 합석하여 전도총회 복귀를 논의한 것은 예장전도총회의 신학과 신앙이 자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직․간접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또 다락방 이단 규정에 앞장섰던 이재영 목사가 다락방 복귀를 위해 전국을 누빈 것이 참으로 묘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합동총회의 이러한 발자취 속에서 이단 문제에 대한 명쾌한 태도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것은 살아있는 교회의 참 모습을 지키기 위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