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한 서른한 살 청년의 원룸에는 이력서 150개가 있었다.
이 비보를 접하는 순간 또래 자녀를 둔 필자는 가슴이 먹먹했다. 마치 필자가 청년시절에 꿈을 접고 먹고 살기 위해 취업전선을 헤매며 발버둥치던 그 시절이 생각나 죽은 청년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을까? 공감이 갔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서른한 살 청년이 지난 4월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이 청년이 발견된 것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의 방 구석에는 대형 여행가방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활동하던 명함도 발견됐다. 회사생활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오피스텔 관리비를 3개월이나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방안에는 각종 쓰레기와 소주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청년이 희망을 모두 포기한 건 아니었다. 방 구석 한켠에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5장씩 들어있는 파일이 30개나 나왔다. 생활고를 겪으며 힘들어 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 직장을 구하려 노력했을 청년의 고군분투 했을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며 나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그저 모든 것을 잊게 해줄 소주병뿐이었다.
지난 3월에는 헬스장을 운영하던 34세 남성 B씨가 서울 마포구의 한 원룸에서 죽은 지 열흘 만에 발견됐다. 유족들에 따르면 막내였던 B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헬스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주변에 돈을 빌려가며 임대료를 충당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B씨의 형은 “코로나에 걸려도 죽고, 안 걸려도 죽으니 결국 똑같은 거 아닌가”하며 한탄했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들도 생활고에 따른 청년 고독사는 계속 증가 추세라고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장소에서는 ‘힘들다’는 내용의 메모장, 다량의 복권, 취업 준비 관련 서적들이 자주 발견된다.
이지혜 비움특수청소 대표도 “고독사 현장을 가면 전체의 20~30%는 청년”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특히 지난 6월에는 청년 고독사 현장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청년 고독사 대부분은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비관
청년들의 고독사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가 집계한 10~30대 무연고 사망 사례는 2017년 63건에서 지난해 100건으로 늘었다.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는 고독사도 많기 때문에 실제 고독사하는 청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고독사의 주원인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생활고와 암울한 미래이다.
20-30대 청년 1인 가구는 2019년 기준 1인 가구의 34.7%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고시촌, 오피스텔, 쪽방 등지에 거주한다. 이들은 각종 생활비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루 8시간, 주 5일을 근무해도 생계유지가 턱없이 어렵다. 상당수의 청년층은 보증금, 학자금과 같은 부채도 있을뿐더러 실업 문제까지 겹쳐지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생명조차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오갈 데가 없다. 손바닥만 한 방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은 청년들을 더욱 냉혹한 현실을 절감하게 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금수저, 흑수저 현상은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은 고사하고 오늘 한끼먹고 살기에도 벅찬 환경을 조성해 가고 있다. 우리사회가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내몰고 있다.
∎청년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선 한국교회가 맨토가 되어야
먼저 교회가 고립된 청년들을 찾아 ‘관계 빈곤’을 탈출하도록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주며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으로 희망을 주어야 한다.
먼저 청년, 대학가 사역을 하는 선교단체들이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을 삶과 신앙차원에서 맨토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 한국교회 연합기관이나 각 시도 기독교연합기관들과 지역 대형교회들이 협력해서 수도권 및 주요 도시에 청년 거주가 가능한 미션홈(청년 기숙사) 시설을 구축해 이들이 무료 또는 저렴한 금액으로 숙식을 해결을 해결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 기독실업인 전문인 이들의 진로 맨토로 연결해 주는 인턴십과 취업 지원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한국교회 차원에서 검토할 만하다.
교회는 도움 받을 자를 찾아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청년의 고뇌는 교회의 아픔이어야 한다.
청년을 위한 교회의 발걸음이 희밍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저들에게 손을 내밀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정부와 국회는 일시적 푼돈처방과 헛된 공약으로 저들에게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이제 교회가 나서서 청년에게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며, 인생의 올바른 비전을 찾도록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할 것이다.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예레미야 3:4] /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