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중세 프리메이슨의 인재양성
중세 프리메이슨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매우 길고 엄격한 과정을 통과하며 이루어졌다. 수습기간은 7년간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수습 프리메이슨은 기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영적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선배 프리메이슨들과 최대한 많이 접촉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지부에서 또 다른 지부로 옮겨 다니며 프랑스 전역을 여행해야 했다. 마지막 미션으로 그는 직급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걸작을 제출해야만 실제 프리메이슨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수습에 성공한다는 것은 프리메이슨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과 인간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프리메이슨의 영적규범과 외적의례를 이해했음을 의미했다. 좋은 수련생은 ‘물질’을 완벽하게 다듬고,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연장’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연장의 고상함을 마음속 깊이 인식해야만 연장들을 정확히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축도구에 관한 깊은 명상의 힘은 그것의 실제적인 사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중세 시대의 젊은 석공메이슨들은 전문성과 영성 계발에 필요한 인턴십을 위해 여러 지부를 거치며 정체성과 사명을 각인시키는 미션을 수행했다.
Ⅱ. 프리메이슨의 인재양성 시스템
‘디몰레이 인터내셔널’ 선정의 이유
현재 활동 중인 프리메이슨의 대표적 인재양성 기관들로는, 여자 청소년을 위한 ‘레인보우’(Rainbow), ‘욥의 딸들’(Job's Daughters)과 남자 청소년을 위한 ‘디몰레이 인터내셔널’(Demolay International)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디몰레이는 프리메이슨 회원과 가족 및 친척관계인 12-21세 남자 청소년들이 가입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청소년 인재양성 조직으로서 새로운 멤버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는 추세다. ‘템플기사단’(Knights Templar)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디몰레’의 이름에서 착안한 이 조직은 1919년 3월 24일 캔사스 시티에서 결성되었다. 흑암문화와 재앙시대를 막고 세계복음화에 도전할 탑 렘넌트라면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현장이다.
디몰레이 인터내셔널(Demolay International)의 공식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왜 디몰레이 인터내셔널에 가입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새로운 도약과 리더십 및 형제애의 촉진, 그리고 팀워크의 중요성과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그래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를 지향하고, 이러한 이상향을 실제로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역량 있는 미래의 리더들을 양성코자 한다.
디몰레이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공적이고 행복하며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단체는 원칙과 현장 경험에 입각하여 사회생활에 필요한 시민의식과 책임감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고, 21세기 미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리더십 계발을 체계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은 흥미로운 프로그램들과 함께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전 세계 18개국 3000여개 이상의 지부들에 소속된 디몰레이 친구들과의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디몰레이 출신 회원들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프리메이슨 일반 지부에 가입하기 때문에 디몰레이는 ‘프리메이슨 수습생 양성소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단체 출신의 유명인 프리메이슨들로는 월트 디즈니, 존 웨인, 존 스타인벡, 빌 클린턴 등이 있으며, 공통적으로 이들은 디몰레이에서 보낸 청소년 시기를 통해 삶이 변화하는 유익을 얻었음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디몰레이는 프리메이슨의 인재양성 시스템을 통찰하기 위한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디몰레이의 시작과 역사
디몰레이의 설립자 프랭크 랜드(Frank S. Land)는 당시 28세의 젊은 프리메이슨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지역 공동체의 리더였다. 그가 디몰레이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1차 세계대전 때문이다. 당시로선 민주주의 수호가 최우선 과제였기에 독일에 대항하는 전쟁에 미국의 모든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었다. 전사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사회단체’들도 많이 조직되었는데, 랜드 역시 이 일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던 젊은 프리메이슨이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그의 고민은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청소년 남자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누군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아이들이 느낄 외로움에 공감하며, 삶에 영감을 불어넣고 인생의 방향을 지도해줄 안내자가 없다는 사실에 그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고민 끝에 청소년들을 위한 교제의 장을 열어 그들이 책임감과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결심한다. 성공한 사업가와 전문인들, 프리메이슨 회원들, 청소년에 관심 있는 사람들, 친구가 되어줄 사람들, 멘토 역할 할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고용기회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 모임에 참여시켰다. 프랭크 랜드의 ‘사회적 기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랜드는 전쟁고아 루이스를 만난다. 대화를 통해 그와 같은 청소년들이 친밀한 교제, 리더십, 영감, 선의의 경쟁 기회를 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루이스에게 친구들을 이 모임에 초대할 것을 권유했고, 최초로 9명의 멤버들이 모이면서 디몰레이의 역사는 시작된다. 두 번째 모임에는 31명이 참석했으며, 그들은 랜드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20년 가을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졌는데, 야구팀, 디몰레이 행진단, 100명으로 구성된 밴드까지 만들어졌다.
1921년 말 랜드는 디몰레이 조직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조직의 명성도 올라갔다. 결국 미국 프리메이슨 그룹들의 공식승인을 얻음으로써 이 사업은 공적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헌신한 랜드는 프리메이슨 세계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고, 슈라이너(프리메이슨 성인 사교모임) 조직의 강력한 지도자로도 활약했다. 프리메이슨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그의 삶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교훈과 감명을 주는 롤 모델이 되었다.
디몰레이 출신 월트 디즈니의 분석
디몰레이의 초창기 멤버였던 ‘월트 디즈니’가 디몰레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디몰레이에 새로 가입하는 100명 중 5명은 이 조직의 대평의원(Grand Councilor) 역할, 즉 책임감이 큰 리더십을 경험한다. 이들 중 최소한 1명 이상은 훗날 이 경험이 대학 학위보다도 더 가치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100명 중 다수가 디몰레이가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그들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역 모임의 예식 국장으로 섬긴 다수의 사람들이 성직자나 목사가 되었다.
100명 중 30명은 가입 첫 해에 탈퇴함으로써 이를 실패로 여길 테지만, 그들 대부분은 훗날 디몰레이의 프로그램과 교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또 100명 중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오히려 디몰레이 출신의 법조인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비록 정확한 비율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00명 중 많은 이들이 군인으로 활동한다. 100명 모두는 디몰레이로부터 뭔가를 얻게 될 것이며, 대부분은 형제애로 뭉쳐진 공동체 속에서의 유익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 프리메이슨 조직에 다시 가입할 것이다. 이렇게 가입한 회원들 중 다수는 소속된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100명 중 일부는 온전하지 않은 가정 배경 출신들로서 다른 회원들에게 긍정적인 롤 모델로 설 것이다. 100명 중 1명은 최고의 명예인 ‘기사 명예’를 수여받을 것이다. 100명 중 16명 정도는 훗날 성인이 되어 디몰레이 조직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자신들이 받은 수혜를 되돌려주는 ‘후견인’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1000명의 청소년들 중 1명꼴로 디몰레이에 가입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비즈니스, 종교, 정치 등의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리더들의 상당수가 청소년기 때 디몰레이로 활동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주지사는 12명 중 1명이, 상원의원은 10명 중 1명이 디몰레이 출신이다.
디몰레이 출신 유명 인사들
미국의 4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빌 클린턴’은 1961년 알칸사스의 핫스프링스 지역에 있는 디몰레이 지부에 가입하여 ‘대평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1964년에는 ‘기사 명예’를 수여받았고, 1979년에는 ‘명예의 부대’에 선정되었다. 그가 디몰레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1988년 5월 1일이다. 청소년기 때 경험한 디몰레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69년 동안 디몰레이 조직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 나은 시민과 리더가 되도록 하는 데 공헌해왔다. 나의 디몰레이에서의 경험은 연설자로서, 팀 구성원으로서, 지도자로서 필요한 역량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꿈이 무엇인지 깨닫고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항상 디몰레이 출신 친구들이 안내해주는 것을 감사하고 있다.”
디즈니랜드를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을 사로잡은 ‘월트 디즈니’는 자수성가형의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도 역시 디몰레이였다. 그는 1920년 캔사스 시티에 있는 디몰레이 지부에 초창기부터 가입하고, 1931년 ‘명예의 부대’에 선정되었다. 1986년 11월 13일 디몰레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는 그 중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인사였다. 디몰레이에 대한 경험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디몰레이가 내 삶 속에서 끼친 중요한 영향력 때문에 디몰레이를 향한 커다란 의무와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디몰레이에서 가르쳐준 교훈들은 실제 의사결정 상황이나 딜레마 상황, 또는 위기 상황 등에서 엄청난 힘이 되었다. 디몰레이는 우리의 가족과 국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전적으로 노력한다. 나는 디몰레이의 한 일원인 사실이 아주 영광스럽게 느껴진다.”
한편, 그가 설립한 ‘월트 디즈니사’는 현재 유대인이 경영하는 영화제작사로서, 창작되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는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으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문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Ⅲ. 디몰레이 후견인 조직들
명예의 부대
디몰레이 조직이 설립된 1919년 이래 미국의 100만 명 이상의 남자 청소년들이 멤버가 되었다. 이처럼 디몰레이 조직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바로 후견인 조직이다. 일명 ‘명예의 부대’는 디몰레이 출신 가운데 이 조직에 ‘충성을 맹세한 선별된 자’들로서 시민사회, 전문분야, 혹은 종교분야 등의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는 프리메이슨 회원들 중심으로 구성된 후견인 시스템이다.
여기 구성원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디몰레이의 비전을 새롭게 수행해나갈 젊은 세대를 전적으로 지원한다. 이들은 로컬 지부들의 연합을 도모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디몰레이를 지원한다. 마치 세계복음화의 미래 주역인 렘넌트의 발판을 깔고자 세계산업선교회, 중직자대학원 등이 구심점이 되어 로컬교회의 산업인, 전문인, 중직자들의 연합을 도모하는 일종의 비밀결사대와 비슷한 맥락이다.
기사의 궁정
‘기사의 궁정’은 로컬 또는 지부 수준의 집행부의 승인 하에 조직될 수 있다. 조직원의 자격은 반드시 디몰레이 활동 시절 ‘기사 명예’를 수여 받은 자이어야 하며, 활동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기사 명예’란 디몰레이 활동 당시 100명 중 1명이 받는 일종의 디몰레이 각 지부 내에서 최고 서밋으로 선발된 자를 의미한다. 기사의 궁정 조직은 디몰레이 인터내셔널 최고위원회에서 선정한 자들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해준다.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모든 이들은 디몰레이 조직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을 의무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부 차원에서 디몰레이 조직의 역사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디몰레이 조직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킨다. 청소년들이 디몰레이 지부에 방문하는 것을 촉진하여 새로운 회원을 유치함으로써 새로운 지부 창설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프리메이슨 의식을 행할 때나 스포츠 행사를 할 때 판정 또는 심판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은 영산업인회, OMC 장학금 수혜자, 기도스쿨 멤버, 서밋그룹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종의 렘넌트 운동의 확산과 지속을 위한 실무조직 같은 개념이다.
기사도 수도원
‘기사도 수도원’은 17-21세 사이의 ‘활동적인 디몰레이’로 선정된 자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주로 ‘사회활동’과 ‘교육활동’에 초점을 맞춰 구성되는데, 특별히 ‘경력 계획’을 중요시 여긴다. 주요 기능은 디몰레이 지부의 확장을 지원하고, 고학년 디몰레이 멤버들의 흥미를 고취시키며, 무엇보다도 모든 디몰레이 멤버들을 위한 적절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한, 장례식을 수행하고, 스포츠 행사 때 코치나 심판, 혹은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 조직은 렘넌트를 위한 전문별 인턴십 프로그램처럼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전국과 세계에서 산업선교, 기도스쿨, 렘넌트데이 등을 통해 다양한 인턴십을 마련하고 있다.
대지주들의 라운드테이블
1995년에 조직된 ‘대지주들의 라운드테이블’은 10-12세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디몰레이에 대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이 차이 또는 의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는다. 이 조직의 활동은 현재 여러 관할구역에서 급속도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활동은 일반인들에게 프리메이슨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대중적인 이미지를 먼저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부모 클럽
디몰레이는 초창기부터 회원 부모들을 후견인으로 활용했다. 수십 년간 이 조직은 자문위원회의 지도하에 지부에 큰 힘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부모클럽은 자문위원회와 지부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각 멤버들의 흥미를 북돋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떤 클럽들은 모금한 돈으로 비밀회의, 리더십 훈련 컨퍼런스, 기타 유사 활동 등을 지원한다.
또한 지부 모임이나 사회활동 후 필요한 다과를 준비하기도 하고, 예복을 세탁해주기도 한다. 디몰레이 멤버들의 지부 모임 참여를 권장하며, 모임이 있는 날 하루 전에 ‘전화걸기 위원회’는 모든 멤버들에게 모임을 상기시켜 준다. 종종 디몰레이 행사시 필요한 교통편을 제공하고, 예복, 운동기구, 휘장, 컴퓨터 등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또한 지부 밖에서 이루어지는 바비큐 파티, 스포츠 행사 등을 주선하고, 가정을 떠나 멀리 타지에 있거나 군복무 중인 디몰레이 멤버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최고지도부
디몰레이가 설립된 이래 급속한 성장을 보이면서 전체 운영위원회 같은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디몰레이가 미국 국경을 넘어 전파되면서 최고지도부의 이름은 ‘Grand Council’에서 ‘ISC’(The International Supreme Council)로 변경되었다. 최고지도부는 지부, 자문위원회, 회원, 헌장, 경제, 의식, 분규 등과 관련된 모든 일을 관장한다. 또한, 최고지도부는 미래에 디몰레이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일종의 의회로서 ‘활동적인 디몰레이’로 선정된 바 있는 리더들이 국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종의 서밋대회와 같은 맥락이다.
최초의 모임이 개최된 1967년 이래 지금까지 디몰레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의사결정에 기여해왔다. 이 모임에는 집행부에 의해 각 관할구역에서 선정된 2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한다. 모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활동적인 디몰레이들의 ‘실천을 위한 포럼’과 최고지도부의 ‘운영에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얻기 위함이다.
둘째는, 최고지도부 멤버들에게 활동적인 디몰레이 그룹이 가진 ‘참신한 아이디어’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한편, 디몰레이 인터내셔널의 집행부, 관할구역, 지부들과 멤버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디몰레이 서비스 및 리더십 센터가 캔사스 시티에 설립되었다. 리더십 센터는 RUTC와 같은 공동체훈련장으로 이해할 수 있고, 최고지도부는 우리 단체의 상임위원회, 중직자기획위원회, 총무단, 서밋대회 등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Ⅳ. 디몰레이 활동사례 소개
디몰레이 인터내셔널 리더십컨퍼런스
21세기 리더양성을 목적으로 지역별로 정기적인 리더십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한 예로 2010년 12월 10일에 열린 컨퍼런스는 새로운 멤버 영입과 기존 멤버 유지에 대한 것, 멤버 간에 소통이 필요한 이유, 효과적인 분기별 계획 수립, 형제애와 대외 관계에 대한 것, 프리메이슨 신비의식과 적용 등에 관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뒤따르는데, 겨울이었던 관계로 스케이팅, 레이저 태그, 카트 타기, 미니 골프 등이 친목도모를 위한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 정기적인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리더들에게 필요한 발표 능력 및 경청 능력 등을 기를 수 있다.
의무의 날 제도를 통한 다양한 인턴십 체험
디몰레이 인터내셔널이 새롭게 지정한 ‘의무의 날’ 규정 가운데 6월 중 하루를 ‘정부의 날’(My Government Day)로 지키라는 공고가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해당 지부가 일리노이 주에 속해 있을 시, 그 지부의 멤버들이 일리노이 주정부에 대해 인턴십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마련한다. 가령, 강사를 초빙하여 주정부의 운영에 대한 특강을 듣거나, 시청 혹은 주정부 공무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시청을 방문하여 시의회에 참관해 보거나, 주 의사당을 방문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의 정치와 행정 상황에 대해 이해하게 됨으로써 한발 빠른 현장 인턴십을 제공받게 된다.
또 다른 의무의 날인 ‘교육의 날’(Educational Day)에 대해 소개하면, 각 지부는 나름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교육의 가치와 공립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가령, 저명한 교육가를 초빙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교육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강의를 듣고 토의를 한다거나, 스승의 밤을 기획해 선생님들과 학교 운영자들을 초대하여 디몰레이에 대한 홍보를 한다거나, 멤버들을 데리고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방문을 한다거나, 학교에서 모범상을 탄 학생들을 초대하는 저녁 만찬을 준비한다거나, 지역 학교에 새 컴퓨터나 교육자료 마련을 위한 모금행사를 개최할 수도 있다.
파트너십 체결을 통한 자선활동
디몰레이 인터내셔널과 미국암협회는 ‘생명을 위한 릴레이’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디몰레이는 생명을 살리고자 애쓰는 미국암협회를 지원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지부별로 모금행사를 한다. 효과적인 모금행사를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가이드라인이 제공된다. 물론 독창적인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 웹사이트에서 안내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하자면, 팬케이크 또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팔거나, 자선 볼링대회 혹은 농구경기를 개최한다거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를 통한 모금을 한다거나, 비디오게임대회, 미니육상대회, 암과 관련된 교육특강을 열어 모금한 수익금을 미국암협회에 전달할 수 있다. 이를 통한 인턴십의 효과는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마인드를 자연스럽게 함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다양한 이벤트
이 밖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디몰레이에서 체험할 수 있다. ‘디몰레이 그래픽아트 콘테스트’를 통해 프리메이슨 전통과 정체성을 각인시키고, ‘디몰레이 주간’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봉사활동을 전개하면서 디몰레이에 대한 홍보에 집중한다. 또한, 각 지부별 볼링 대표팀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디몰레이 국제볼링대회를 진행하여 팀워크와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활발한 자선활동 및 봉사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경험하고 지역 사회에서 인재양성 프로그램과 프리메이슨 자체에 대한 대중적 영향력을 확대해간다.
Ⅴ. 시급히 요청되는 렘넌트 인재양성 시스템
지금까지 살펴본 디몰레이 조직은 프리메이슨 전문인, 산업인, 중직자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미션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차세대 리더들을 배출하기 위한 일종의 인재양성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립자 프랭크 랜드는 당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전쟁고아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수준의 작은 ‘사회적 기업’으로 시작했던 것인데, 훗날 전 세계 18개국 3000여개의 지부가 창설되었고, 약 400만 명이 가입해 온 세계 최대 규모의 청소년 인재양성 조직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약 100년의 역사가 흐르면서 이를 위한 후견인 조직들도 더욱 구체화, 전문화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프리메이슨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비전을 실현시킬 인재들이 자라나고 있다. 현재 디몰레이는 프리메이슨의 가치를 전파할 차세대 리더들을 양성하는 ‘교육선교적 기업’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몰레이 사례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도전은 무엇인가? 디몰레이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방황할 수 있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진심으로 고민했던 28세의 젊은 프리메이슨 사업가의 작은 발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필요로 했던 후대양육 시스템이 결과적으로는 프리메이슨의 차세대 인재양성 시스템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윈-윈(Win-Win) 전략이 된 셈이다. 시대 살릴 렘넌트 인재를 양성할 때, 그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이다. 복음의 무한한 능력 안에서 시대적 요청에까지 도전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오늘날 현장은 복음적 윈-윈 마인드를 지닌 렘넌트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복신앙, 율법신앙, 신비신앙, 통합종교가 사탄의 도움으로 일어나는 복음이 소멸되어가는 시대를 막기 위해 렘넌트를 부르셨다. 90% 미자립교회, 문을 닫는 유럽교회, 부도나는 미국교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렘넌트를 3기업의 주역으로 부르셨다. 뉴에이지 운동과 프리메이슨에 의해 문화와 전도현장은 발전된 미디어로 다 빼앗긴 시대에 문화선교, 기능선교를 위해 탑 렘넌트를 부르셨다. 오직 복음과 성령충만의 능력으로써 미래 재앙 시대를 막을 렘넌트 인재양성 시스템이 시급하게 요청되는 때이다.
이제 렘넌트 인재양성을 위해 유일한 복음의 생명력과 시대 살릴 이유가 소통되는 렘넌트, 전문인, 산업인, 중직자들이 이루는 유기적인 원네스와 네트워킹에 집중해야 할 시간표이다. 블레셋을 배경으로 했던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처럼 영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탑 렘넌트, 3기업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보다 더 체계화 된 인재양성 시스템이 구축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시대의 흐름을 보며 복음과 말씀의 흐름 속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함께 귀 기울이며 인도받게 될 한 팀의 응답을 기대한다.
▴손성지 목사는, 신학박사 (백석 기독교전문대학원 역사신학 Ph.d) / 현재 RTS, RU 교수(교회사) , 충만교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