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빚더미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목숨을 걸고 참가하는 내용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는 10월 13일 현재 "전 세계 1억 1,100만 넷플릭스 구독 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선택해 시청했다고 발표했고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는 등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소식은 한국 교회로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문제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3인의 기독교인의 모습을 통해 한국교회의 치부들을 고스란히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첫 번째 등장인물은 줄다리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자 감사기도를 드린다. 주위 사람들은 이를 비아냥거린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자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연거푸 중얼거리며 기도하는데 이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마치 이기적이고 기복적이고 주술적 종교인 것으로 충분히 왜곡되고 매도된다.
정작 이런 부류의 사람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식에 어긋난 삶의 방식과 돈이 전부인양 일확천금을 노리며 타인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교인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두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목사인 아버지를 죽이고 출소한 딸이다. 그녀는 눈앞에서 목사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또 엄마를 살해한 것을 목격하고 그 후 자신도 엄마의 복수랄까?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아픈 기억을 고백한다. 목사 가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최대한 드라마에 이용한 것이다.
결국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새까맣게 덧칠되는데 충분한 내용이었다.
목사라는 이유로 사회적 이슈 중심에 설 때마다 한국교회는 긴장하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성추문, 재정비리, 불건전한 신비주의 행위로 뉴스를 장식하는 것은 사회적 충격이 더 크다. 오징어 게임속 내용은 과히 목사라는 신분을 성직자가 아닌 그저 그런 한 인간으로 깎아 내리고 성직자의 거룩성 성결성 도덕성을 잔혹하게 밟아 버렸다.
마지막 등장은 “예수 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노방 전도하는 사람이다. 서울시내 길거리에서 종종 보는 실제 풍경이다.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 주인공의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비오는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발견한다. 그때 다른 행인들은 이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그런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열정적으로 외치던 한 전도자가 다가와 주인공의 안대를 벗겨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길바닥에서 눈을 뜨자, 그에게 내뱉는 말은 "괜찮아요?"가 아니라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한다.
여기엔 세상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난다.
아무리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지만 그 외침이 쓰러진 사람에게는 공허한 외침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너나 잘 믿으세요”라고 공감할 것이다. 진정한 전도자의 참 모습이 무엇일까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나타나는 3인의 기독교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무가치하고 이기적인 무당과 같은 종교에 불과하다는 라는 이미지를 물씬 풍겼지만 반면에 한국교회의 뼈아픈 자성과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오징어게임은 돈을 우상으로 여기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돈 앞에 부모형제, 친구, 동료도 없고. 부부도 없는 세상, 무조건 상대를 이기고 돈을 빼앗기 위해 배신, 불법, 사기, 속임수, 폭력, 살인이 용인되는 오징어 게임 같은 현실 속에서 기독교인은 오징어 게임을 멈추게 하는 무한책임을 느껴야 할것이다.
오징어 게임으로 내몰리는 세상에 대한 무한책임은 교회에 있다.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해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삶의 벼랑으로 내몰려 오징어 게임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함께 웃을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십자가를 예수님처럼 짊어 메야 한다.
오징어 게임에 내몰려 오징어 게임에서 죽어가는 것을 멈추게 할 책임이 한국교회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