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부분 현대교회는 복음주의에 입각한 복음운동을 펼치고 있다. 복음운동은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토대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과 교회의 머리되심을 믿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운동을 실천해온 위대한 전도자들은 복음증거와 더불어 영적, 육신적으로 경건과 거룩한 삶을 실천해 왔다.
복음운동은 개인의 삶을 하나님 뜻대로 살고 성경적인 전도를 실천하는 개혁운동이며 신앙 회복운동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다스리는 가정, 교회와 사회 공동체를 세우자는 것이 목표이고 대 전제이다.
복음운동은 우리의 신앙과 삶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실천운동이다. 복음운동 실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복음운동은 성경중심 신앙 회복운동이다.
복음운동은 복음을 빌미로 교회부흥과 개인의 번영을 부르짖는 번영신학이 아니다. 복음을 말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의 일부분을 방법론으로 제시하며 기교적이고 기술적 또는 세상 경영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며 복음을 설파해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운동은 성경을 바로 읽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따라 살자는 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언약대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시고 전도하셨으며 성경의 약속대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사셨으며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처럼 성경중심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설교나 메시지가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따라 신앙을 개혁하자는 운동인 것이다.
둘째, 복음운동은 예배회복 운동이다.
복음적인 예배는 중생한 자들만의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 없는 신앙이란 종교생활일 뿐이다. 존 카튼(John Cotton, 1585-1652))의 표현처럼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사모함이다.” 그리스도인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복음운동의 예배란 지역교회에서의 공적 예배와 가족 단위의 가정 예배와 골방에서의 개인 예배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 모든 영역에서 그 어디서나 예배생활을 실천하는 운동인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 평신도 가정에서 가정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예배생활화가 안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복음을 증거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예배생활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바른 복음 운동이 아니다. 복음운동은 영적싸움이며 영적싸움의 시작과 끝은 예배이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운동은 소명 회복운동이다.
목사만이 사명자요 사역자가 아니라,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맡기신 청지기로서의 선교적 사명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 전도자, 복음 선교사의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복음운동은 후대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후대운동이다.
복음운동은 복음보다 세상문화에 젖어들기 쉬운 후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가르치는 것을 자신들의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교육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우선해 실천하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운동이다. 이들을 통해 세계복음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미래의 복음운동 주역 되도록 이끄는 운동이다.
무엇보다 후대들에게 올바른 성경적인 세계관,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성경적 인생관, 성경적 결혼관, 성격적 가정관, 성경적 정치, 역사관 등 성경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성경대로 이끄는 미래의 리더를 키우는 운동이어야 한다.
다섯째, 복음운동은 바른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다.
현대교회의 외형성장주의는 교회우상화, 교회 내에 맘모니즘, 교회의 타락화 등 반 교회적 요소로 성경적 교회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복음운동은 성경의 권위아래 교회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교권이나 사람의 권위가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는 교회를 세우자는 운동이다. 교회의 모든 치리는 지극히 성경적 이어야 하고 모든 구성원이 서로 교제하고 충성과 헌신으로 복음전도에 봉사해야함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교회 내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고 배척하여 교회의 거룩성과 성결성을 회복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위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웃과 단절된 폐쇄된 교회는 결코 참된 교회라 할 수 없다. 복음운동은 영혼사랑과 세속적 사회 구원을 위한 복음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복음운동은 성경적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를 세우는 운동이다.
복음운동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운동이 아니다. 복음운동은 세상적 나라가 사탄의 나라가 되어 국민을 재앙과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사회와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하는데 궁극적 목적을 둔다.
국가가 범죄에 대해서 엄격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역할 하도록 지원하고 반면에 반 성경적,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정책과 입법에 대해서는 이를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실천적 운동이어야 한다. 복음운동은 복음운동 단체나 그들만의 폐쇄적 운동이 아니라 대 사회적, 대 국가적 확장성을 지님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하도록 실천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일곱째는 복음운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건과 거룩한 삶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복음운동은 세속적 세상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원인 중에 가장큰 원인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경건과 거룩한 삶을 버렸다는데 있다.
말로는 복음을 외치면서도 자신의 삶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전혀 경건함이나 거룩성을 찾아보기 힘든 목회자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세속의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거룩한 양심을 소유한자들이었다. 이들은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사도적 순결과 거룩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세속으로부터 격리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복음운동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정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복음운동은 세상으로 부터 도피가 아니라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운동이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방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불린것 처럼,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복음운동은 성경의 내용대로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 그리하여 순수한 신앙이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까지 실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복음전도자라면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거룩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이다.
복음운동에 참여하는 전도자라면 리랜드 라이큰(Leland Ryken)이 말한대로 “이 세상의 성자들(Worldly Saints)”이란 말을 들어야 한다.
∎맺는말
복음운동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경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을 따라 경건과 거룩한 삶을 영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진정한 복음 전도자이다.
신앙 따로 삶따로 사는 복음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참된 복음 전도자의 삶을 통해 성경의 권위가 온전히 드러나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전도자의 복음에 귀 기울여 지는 그날이 속히 오길 바라마지 않는다. /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