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목회와 신학(2021.1.10.)에 게제된(특집 성경적 성교육을 통한 올바른 성 정체성 확립과 성 가치관 회복) 카도쉬 아카데미 최경화 대표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1.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성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무릇,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첫 구절을 모두 알고, 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천지창조의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사람)을 만드셨다.(창 1:27)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결혼’을 만드셨다.(창 2:24)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세우고, 경건한 자손을 낳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통치해 가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즉, 창세기의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고히 보여주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결혼, 경건한 자손의 축복, 그러한 가정으로 세워진 ‘교회’가 주님의 사랑과 정의로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성’에 대한 계획인 것이다.
2. 지금의 성교육 실태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타고난 ‘성’을 거부하며, 자기 마음대로 ‘성’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현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올바른 성 가치관의 기준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고, 주관적이며 취향적인 기준을 ‘인권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운 성교육이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한 정체성의 부재, 왜곡된 사랑의 정의, 책임 없이 권리만 남은 성관계, 그로 인한 생명 경시 사상이 이 땅에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다음 세대들에게 행해지는 성교육의 생태계는 놀랍도록 공교하며 그물망처럼 얽혀있고, 어릴 때부터 세뇌하는 교육이다. 공교육 시스템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에게 젠더 교육과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내용들을 교원 연수 과정에 포함시켰고, 그에 따라 학생들에게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과서를 통해 젠더 교육과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지며, 학생인권조례(학교 내 차별금지법), 성 문화센터(여가부 소속)등의 교육이 다음 세대들을 욱여 싸며 ‘성 인식 바꾸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학부모들에게도 이러한 교육들이 ‘성인지 감수성, 성평등한 문화확산’이라는 이름 하에 활동가를 양성하고 전달되고 있으며, 각종 미디어와 방송에서는 이미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젠더 문화로 가득 차 있다.
이로 인해, 교회학교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러한 젠더&페미니즘 사상은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쳐진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나 ‘성경’ 자체를 젠더 리터러시로 재해석하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교회학교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게 될 때 아이들이 질문하는 범위는 세상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1. 지금의 성교육
#성적자기결정권 #피임 #낙태 #성인지 감수성 #젠더 정체성 #동성애
‘성적 자기 결정권’은 지금의 성교육을 단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자율적인 성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권리로, 헌법 제 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그 근거로 한다. 중학교 보건 교과서부터 성적자기결정의 기준에서 나의 성적 욕구, 성 지식 등을 상대방에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라는 내용이 있고 성관계 전 생각해보기라는 읽을거리에서는 정확한 피임법을 알고 있고, 정확한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성 교제를 한다면 가능한 신체 접촉 범위에 성관계를 체크하도록 유도하며 원치 않는 임신 예방 대책으로 피임의 중요성을 인식하라고 교육한다. 남성만 피임을 할 경우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피임약 복용이라는 2중 방어벽으로 더블 더치 피임법을 가르치며 성행동의 모든 열쇠를 피임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 투입되는 외부기관 강사들 중에는 중학교 1학년부터 남성 성기 모형과 콘돔을 가지고 와서 남학생들에게 콘돔착용 실습을 종용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언론에서는 가장 좋은 성교육은 피임 교육이라면서 열다섯 살 무렵에 성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이후 적어도 40년 넘는 시간을 좋든 싫든 피임과 연관되어 살아간다고 하면서 (시사in 2017.02.18.) 우리나라의 성교육 표준안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국내 한 기업에서는 늘어나는 10대 미혼모들을 보면서 이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콘돔과 피임약 사용의 보편화라며 청소년들도 콘돔을 구입하는 것에 부끄럽지 않은 사회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브랜드를 론칭했다.(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4.05.29.) 뿐만 아니라 청소년 피임권 보장을 위한다며 청소년의 안전한 사랑을 위하여 청소년만 사용할 수 있는 100원 콘돔 자판기 설치를 하는 곳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이 기업은 퀴어페레이드에서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청소년 시기에는 2차 성징이 시작되며, 몸의 성장과 성숙이 빠르고 급속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몽정과 월경이 시작되며 임신을 할 수 있는 호르몬과 분비물들의 생성으로 성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러한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성적 자기 결정권’은 ‘자기 책임하에’라는 것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아직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든 부분에서 성장 중에 있는 청소년 시기에는 무엇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또한, 욕구에 따라 스스로 결정 했을 때, 어떠한 비극적인 결과가 따라 오는지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욕구’에 따른 ‘권리’를 행하는 성교육은 먼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을 방임하는 가장 좋은 성교육은 ‘피임’과 ‘낙태’일 것이다.
‘피임’ 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 전제가 ‘성관계를 할 수 있다.’ 또는 ‘성관계를 해도 된다.’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성 욕구를 자제하기 힘든 시기에 노골적으로 성의 권리와 피임을 주장하며 청소년들을 성관계의 길로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 자기 행복 추구권과 낙태죄는 단순히 개인들의 의견 차이로 여겨질 만큼 ‘생명 경시 사상’은 극대화되었고, 결국 낙태죄 처벌이 헌법불합치 수순을 밟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생명‘의 존귀함이 한낱 세포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애완견보다도 못한 무게감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이제는 공교육 현장에서 낙태를 언급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필자가 3년 전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진행하며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자 복도에서 몰래 지켜보던 교사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성교육 내용을 지적했던 적이 있다. 이런 현상은 유독 한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성(性)이란 한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心)과 몸(生)을 다루는 한 개인의 인격의 문제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관계의 배려를 먼저 가르쳐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의 성교육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앞세워 ‘성’(sex): 생물학적 의미의 성, ‘젠더’(gender): 사회·문화·심리적인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성, ‘섹슈얼리티‘(sexuality): 성 행동뿐만 아니라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사고. 감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성이라는 범주로 나누어 교육하며 인격과 관계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로 성 가치관을 변질시켜 성 차제를 왜곡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올바른 ’성 가치관‘이라는 것을 한 번도 교육받지 못한 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N번방 사건도 이러한 잘못된 성교육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10-20대 학생들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성‘을 성문화를 즐기는 것으로만 향유하려는 목적을 띤다. 사회적으로 성 행동이나 성윤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성 가치관이 명확히 세워지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극단적인 성범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 성 범죄율이 높아지고, 성관계의 나이가 점점 낮아지기에 진정한 성경적 성교육이 시급하다.
하지만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가 택한 또 다른 교육은 바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다. 이것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남녀 혐오 교육으로 남자와 여자의 기본적인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남녀 평등만을 외치는 전근대적인 교육에 머물러 있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남녀 간에 똑같은 조건이 만족 되지 않으면 무조건 차별받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문화인인 것처럼 대우해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관적인 느낌에 의해 차별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성평등 교육은 오히려 남녀 사이를 불협하게 만들고, 특히, 온라인상에서 온갖 남녀 혐오 싸움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실례로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이제껏 남녀 평등에 관해서 그다지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이 끊임없이 민감하게 차별을 느껴야 하는 이 교육을 왜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며, 갈등을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굉장한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은 성평등 1위, 세계에서 10위의 자리에 있다. 또한, 가정에서 아버지 역할들도 자상하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지 예산(2021년, 약35조에 해당)의 일환으로 끊임없는 성인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들은 진정한 성평등의 시대로 가는 방향의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의 10대 청소년들은 67.4% 정도가 ’결혼은 의무가 아니다‘라고 느끼며 오히려 결혼과 출산에서 자유하여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과 자유라고 여긴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한 존재로 지으셨지만, 분명 다르게 창조하시므로 상호보완하며 섬기도록 계획하셨다.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이며, 그 가정을 이루는 방법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이다.(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헌법 제36조 1항) 지금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움을 하도록 쌍심지를 켜며 민감성이 극도록 발휘되어 있는 이 교육으로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성 가치관을 형성하여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도록 돕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페미니스트 린다 고든 역사 교수는 “가족의 제도를 파괴해야 한다. 의미가 무엇이든, 가족의 해체는 이제 페미니즘의 필수 혁명적 과정인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즉, 남녀혐오를 일으키는 성인지 교육은 진정한 성평등이 아닌, 학생들에게 결혼과 출산의 부정적인 시선을 주입 시킴으로, 훗날 ’가정‘의 질서까지 파괴하려는 교육인지 실로 의문이 든다. 누구를 위한 평등인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가? 성평등을 향한 싸움처럼 보여지는 이 성인지 교육은 결국 가정과 교회를 해체시키려는 양상(하나님을 대적하는)을 보이기 때문에 심히 우려가 된다.
이러한 교육들의 가장 핵심적인 베이스 이론은 ’젠더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젠더‘란 신체적인 성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에 따라 자신의 성을 결정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소위 ’젠더 정체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 예로 모 방송에서는 한 청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으로 소개하는 영상이 방영되었다. 정서적으로는 동성에게 끌리고, 성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으며, 양성(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요즘 세대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시기는 ’사춘기‘라고도 하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시기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신체적인 몸은 외형적으로 이미 성장했지만, 이성과 판단을 주관하는 뇌의 전두엽 부분은 24세가 되어야 완성이 되는 불균형한 성장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러한 청소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은 ’정체성의 확립‘이다. 이 시기에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자아 정체감의 혼란은 직업 선택이나 성 역할 등에 혼란을 가져오고, 인생관과 가치관의 확립에 심한 갈등을 야기 하게 된다. 이렇듯 청소년 시기에는 정체성의 확립이 실로 중대한 과제로 여겨진다. 또한, 잠깐의 혼란이 있더라도 20세가 되어서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다시 원래의 성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청소년 시기에 ’젠더 교육‘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들이 젠더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것을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처럼 묵인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참 교육의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시기를 먼저 지나온 어른 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이 시기를 잘 통과할 수 있을지 도와주고 올바르게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젠더 교육의 영향에 힘입어 동성애와 트랜스 젠더를 향한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관심들은 어떻게 채워 나가는지 아는가?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웹툰과 유튜브의 미디어들은 또 다른 왜곡된 방법들로 합세해서 청소년들을 맹공격하고 있다. 성교육 현장에서도 선생님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동성 간의 스킨십의 범위가 우정을 넘어서 위험단계의 수준으로 가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젠더 정체성을 ’인권‘의 문제로 다루어 청소년들에게 ’차별하지 말라‘,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달라‘ 라는 목소리를 내게끔 만드는 세뇌 교육은 반대 의견을 제시하거나 치유적 차원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 반성경적 성교육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공교육 현장에서 동성간의 스킨십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도할 때 동성애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성교육은 올바른 성 정체성, 성 윤리, 성 역할에 대한 교육은 없다. 오히려 성적 자기 결정권을 바탕으로 자신이 결정하고, 서로의 동의만 있으면 누구와도 (동성이든, 이성이든) 성관계를 할 수 있으며, 책임의 도구로 피임을 실천하고,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고 성적자유를 누리기 위해 낙태도 가능하기 때문에 생명의 존귀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기주의적 성교육으로 변질되고 왜곡되고 있다. 즉, 하나님보다 나의 욕구, 권리, 감정을 높이는 자기 우상을 추구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게 만드는 성교육의 현실에서 우리 자녀들이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3. 성경적 성교육의 방향 - 하나님이 계획하신 성 가치관의 회복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악하고 음란한 풍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다음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교육은 무엇일까?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에서 다음 세대들을 올바른 성 가치관으로 교육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거룩하게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
‘성’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도구이지만, 왜곡된 방향으로 잘못 사용하게 될 때 사망의 도구로 바뀌어 오히려 파국의 길로 바뀌게 된다. 소요리 문답(제1문)에서는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즉,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성’ 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동화되어서 세상의 성 문화를 따라서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적 성교육의 방향은 하나님이 본래 디자인하신 올바른 성 가치관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을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지도하고 돕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대로 ‘성’을 가르치며 그에 합당하게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타고난 성을 감사하며 개별적인 은사를 개발하고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태초부터 만드신 ‘결혼’을 소망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섬기며 가꾸어 나가고, 경건한 자손을 낳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이 시대의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방법일 것이다.
성경적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사항은 “성은 생명이다.”라는 표제 아래, ‘성, 사랑, 가정, 생명’의 4단계이다. 즉, 하나님이 주신 ‘성’을 가정 안에서 다룬다는 것이다. 성경적 성교육의 요절 말씀은 창세기 1장 27-28절 말씀이다. 개인이 선택하는 정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로 가는 것이다.(시 139편) ‘사랑’은 설레는 감정이 아니라, 오래 참음이며(고전 13장)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관계를 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는 하지 않는다’ 라고 가르친다.(창 2:24, 아8:4) 또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배우자를 기대하며 절제와 인내를 배우고, 가정을 소망하며 각자에게 주신 섬김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친다.(엡 5:22-33)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성경적 성교육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으로 시작되었고, 그 사랑의 열매로 자녀가 태어났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가정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깨지고, 상처 입었으며, 섬기지 못하고, 오히려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크리스찬 가정들 역시 세상의 가정들과 별반 다른 모습으로 보여 지지 않으니 문제가 크다. 자녀들에게 어떠한 나쁜 교육이 세뇌되어도, 미디어의 무참한 공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뭉쳐진 ‘가정’에서 양육되는 아이들은 분별하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덕분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부부간의 결혼도 그토록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결혼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언약적 연합(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언약적 관계를 드러내 주는 복음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엡 5:32) 전인격을 다 바쳐 희생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남자(남편)이 따라서 섬기고,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가 예수님께 섬기고 순종하듯 여자(아내)가 그 본을 따르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엡 5:21)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어찌 권리만 주장하며 다툴 수 있을까?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부부간의 섬김 사랑은 있는 그대로 성경적 성교육의 살아있는 모델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성경적 성교육을 배운다 한들, 가정 안에서 반대되는 모습들을 보고 자란다면 교육과 현실의 괴리감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가정의 부모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다시 은혜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성, 사랑, 가정, 생명의 롤모델이 되어 진정한 성경적 성교육의 본을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큰 믿음의 유산이 있을까? “가정의 회복”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끊임없는 말씀 교육이 자녀들에게 전해져야 할 것이다.(신6:5)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되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이 세워져야 한다. 지금은 ‘자기 결정권’, ‘자기 행복추구권’이 최고로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며 자기의 결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시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순종’이다. ‘주님 결정권’으로 사는 세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순종’의 세대들이 일어나길 간구한다. 그 뿌리는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뿌리가 더욱 굳건해져서 열매를 맺으며 선한 영향력을 끼쳐 이 시대의 잘못된 성 가치관을 변화시켜 나가는 세대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고전 6:17,19)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나부터 변화하고, 부부가 변화하고, 그로 인해 자녀들이 변화하고, 사회가 변화되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잘못된 성 가치관을 따르는 친구들과 사람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세우시는 다음 세대들을 통해 인본주의에 물든 세상의 가치관은 뿌리 내리지 못할 것이다. 신앙의 기초를 두고 성장했지만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킨 유럽과 미국의 선례를 따르지 않고 작고 연약하지만 믿음의 세대가 지키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통해 다시금 영적인 회복을 일으키시고, 부흥을 일으키시길 소망해 본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순종하는 거룩한 자들을 통해 항상 역사하셨고, 우리의 약함을 통해 강함을 드러내셨다. 거룩한 다음 세대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더욱 가정과 교회를 바로 세우기에 힘쓰는 것이 진짜 성경적 성교육의 힘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