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경제관: 르호봇경제(6) 하나님의 통치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2022-10-26 11:20:57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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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은 결코 골동품이 아닙니다. 시대를 뛰어넘고 살리는 하나님의 솔루션(Solution)입니다. 벽장의 한 구석에 치워 놓은 하나님의 법을 다시 끄집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산업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2:14) 그 날을 바라봅니다.” -본문중에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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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그가 전달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God’s Sovereign Rule)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사는 시공간을 통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미 백 테스팅(Back Testing)1)되었기 때문에 이견을 달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즈음 마주하는 사건과 이슈들 러시와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팬데믹, 국제적인 인플레이션, 미중의 패권경쟁, 한반도 긴장 등 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현재의 특정 사건을 하나님의 통치와 연결하는 시도는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역사학자인 조병오 박사의 저서 성경과 5대제국를 읽다 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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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를 5대제국의 범주에 넣습니다. 한 때 절대 권력을 가졌던 제국의 흥망성쇠의 역사, 왕들의 정치, 정복전쟁,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세계경영을 기술합니다. 그 중에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바로 고레스 칙령입니다. BC 600,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면서 사람들이 1차 포로로 끌려갑니다. 70년 후에 이번에는 바벨론이 고레스에 의해 망합니다. 고레스는 왕권을 잡자마자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바벨론에 끌려간 하나님 백성들의 삶은 회한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고 울면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기쁨을 위해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는 비참한 중에 있었습니다.(137:1~4) 이 악한 지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에스라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1:1~3)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시고 역사에 개입합니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드디어 출바벨론이란 하나님의 경륜적인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는 것은 좀 밋밋합니다. 뭐랄까요 하나님의 다이나믹한 통치가 안보입니다. 이런 질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이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혹시 그가 원래부터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었을까요? 페르시아 제국의 왕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요 

제국의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군사력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왕실재정입니다. 고레스는 왕실재정을 위해 여러 속국으로부터 세금을 거둬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관심사항입니다. 이스라엘은 황폐하였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페르시아 땅에 있으니 세금을 낼 여력이 없습니다. 이스라엘로부터 세금을 걷으려면 사람들을 돌려보내 나라를 재건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요셉도 왕실재정을 든든하게 만들어서 바로의 총애를 얻은 사람입니다. 애굽에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찾아옵니다. 기근은 더 심해지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이때 요셉이 곡식을 팔아서 엄청난 돈을 거두었습니다. 그 돈은 곧바로 바로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47:13~14)  

하여튼 고레스가 내린 칙령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로서 그럴듯한 결정입니다. 역사의 신비는 고레스의 정치적인 선택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맞물려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레스의 통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산으로 불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주권적 통치를 선포합니다. 영국의 신학자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마틴 루터보다 150년 정도 앞서 종교개혁의 기초를 놓은 선구자입니다. 그 당시는 교황의 명령에 따라 성경 번역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소수의 사제들만이 라틴어 성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This Bible is for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이 문장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에서 인용되었습니다. 성경은 통치에 관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식2)은 애굽 이후 신흥강자로 등장하는 앗수르 제국의 본격적인 발흥기보다 앞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로부터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듣고 준행하겠다고 응답(24:3) 합니다. 그 내용 중에 심지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9:18)  

애굽에서 400년 이상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수용불가의 명령입니다. 그 시대의 왕들의 통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명령입니다. 고대에 있어 국가의 역할, 왕의 권력 등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요? 근대국가의 통념은 국가는 국민의 경제적 복지를 책임져야 하고 애국은 국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견해는 종교개혁 이후 서구사회에서 태생된 것입니다. 그러나 18세기 이전까지 국가에 대한 통념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면 국가의 부는 통치자에 속한 것이고 통치자의 권세를 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애국은 곧 통치자에 대한 충성을 의미했습니다. 고대에 왕은 곧 법이었습니다. 왕의 권세와 힘은 막강 그 자체였습니다. 앗수르 왕의 어느 기념비에 새겨진 글입니다. “나는 귀족들의 껍데기를 벗겼고, 삼천 명의 포로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 나는 한 명의 포로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나는 그들의 코와 귀를 베어내기도 하였다. 수많은 병졸들의 눈을 도려내기도 하였으며 처녀들을 통째로 굽기도 하였다.”(조병호 박사의 유투브 강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는 법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이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성품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이라 함은 하나님의 법을 가진 것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Separated)입니다. 레위기 이후 3,470여 년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삽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시내산에 섰던 이스라엘 자손처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격은 누가 뭐래도 법에 있습니다. 결국 법을 세우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실제 역사를 통해 실험 사례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로 북한과 남한입니다. 북한과 남한이 분단되어 7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단적으로 남한의 1인당 GDP는 북한의 1인당 GDP30배가 됩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국가의 기초가 되는 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법이 중요한 것일까요? 이는 사람의 부패함 때문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17:9) 그래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법이 다스리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의 악함과 폭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Great Project’를 알리셨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Righteousness)와 공도(Justice)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하나님께 배우고 하나님을 닮아 살아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Great Project’를 이루어 가십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3)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자유는 도덕성 없이 누릴 수 없고, 도덕성은 신앙 없이 세워질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도덕성도, 한 개인의 도덕성도 하나님의 법 위에 세워져야 온전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이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법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5대제국의 왕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죽었고 그들의 통치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결코 골동품이 아닙니다. 시대를 뛰어넘고 살리는 하나님의 솔루션(Solution)입니다. 벽장의 한 구석에 치워 놓은 하나님의 법을 다시 끄집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산업을 든든히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2:14) 그 날을 바라봅니다 

1): Back Testing이란 이를 테면 손실에 대한 예측 모델을 만들고 이를 실제 손실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측 모델의 오류를 평가합니다. Back Testing의 개념을 성경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는 약속을 주셨고,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고 구유에 뉘었으니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약속의 성취를 Back Test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가 된 앗수르가 제국으로 성립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1350년 발리트 1세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앗수르 제국은 니므롯과 니느웨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바벨론 카시트 왕조와 히타이트, 이집트의 몰락을 계기로 제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정치가로 베르사유 재판소 배석판사를 지냈습니다. 1831년에 9개월 동안 미국을 관찰하고 난 후 1835년부터 1840년에 걸쳐 미국의 민주주의를 출간하였습니다.

 

[다음호: 예수님의 죽으심과 스와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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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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