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지식인과 기독교세계관 운동

글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2022-11-27 17:56:48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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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성경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해야 건강하다.”-본문 중에서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Thomas Piketty)와 공동 연구자들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부자와 지식인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재산과 지식수준 이 낮은 사람들이 진보적이었는데, 최근 환경문제를 비롯해서 지식인이 민감해질 수 있는 새로운 문제들이 많아지자 지식인들이 진보 쪽으로 옮겨가고, 그 반작용으로 지식수준과 재산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부자들과 함께 보수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식수준과 경제수준이 낮은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 되어서 2016년 선거에 80%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도 복음주의자들 상당수가 트럼프를 따라 백신이나 마스크를 꺼리므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죽게 하는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끝없는 거짓말, 여성편력, 탈세의혹, 국수주의 등 기독교적 모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도 복음주의자들 다수가 트럼프를 대대적으로 지지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이념적 편향성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기독교세계관이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2022년 초 미국 칼빈 대학의 '내이글 세계기독교 연구소'의 창립자 수석연구원인 카펜터(Joel Carpenter)교수는 <복음주의 지성인의 활동을 일깨움: 한 기독교학자의 회고라는 글을 썼다. 그동안 미국 복음주의 지식인들 상당수가 사명감을 가지고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활동을 열정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수행한 결과 이제는 미국 지성계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복음주의 교회의 일반 신도들에게는 거의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고 가슴 아파했다. 뼈아픈 사실이며,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노력이 지식인들의 잔치만으로 끝나고 교회와 평신 도들에게는 강 건너서 반짝이는 작은 반딧불 같아 절망감이 생긴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기독교세게관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만큼 의식이 깨인 기업인들이라도 있어서 '내이글 연구소' 같은 기관도 설립되었고 학술대회와 도서출판에 필요한 재정도 마련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그리스도인 지식인들이 위기감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활동하면 중병을 앓는 교회와 신도들이 기독교 세계관으로 소생하고 미국을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재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다. 아직까지는 피케티가 서구에서 관찰한 현상이 한국에서는 그렇게 뚜렷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빈번해지는 인적 교류로 한국도 서구사회의 그런 변화에서 차단될 수 없다. 특히 서구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향을 바꾼 지구온난화는 이미 우리 턱 앞에 다가와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과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있는 지식인이라면 지금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지성계의 변화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미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카펜터가 가슴 아파하는 현상이 한국 교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인식하려면 성경 외에도 세상에 대한 상식 이상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그 운동의 역사가 길고 목회자와 평신도 상당수가 관심을 보이는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다. 거기다가 교회 성장 경쟁에서 기복신앙이 많이 이용 되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수준 미달 신학교가 무자격 목회자를 양산하므로 반지성적 문화가 한국 교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 풍향계는 신학교 교수들이 차지하는 위상의 변화다. 과거 목회자와 교인들이 존중했던 신학교 교수들이 지금은 큰 교회와 정치꾼 목사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유명한 신학자들이 큰 교회 목회자로 청빙 받는 것을 부러워하는 상황이 되었다. 만약 이런 반지성적 문화가 한국 교회의 주류로 정착되면 지식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받은 젊은이들도 교회를 떠날 것이고 한국 사회의 복음화와 한국 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은 어렵게 될 것이다.

 

구원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성경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해야 건강하다. 온갖 이단들과 이념들이 난무하는 오늘날에는 더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바로 그런 것들의 미혹에서 벗어나 세상의 풍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계시의 독특성에 충실하자는 신앙운동이다. 자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모든 것이 사람의 결정에 따라서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운동이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진 전문지식에 근거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론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론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확산시켜야 하고 따라서 '운동'을 펼쳐야 한다. 특히 젊 은 세대에게도 반드시 알리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출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신앙과 삶 2022 vol.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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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손봉호

()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명예이사장이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외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동덕여대 총장과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기아대책 이사장을 역임했다. 도산인상, 국민훈장 모란장, 서울대 사회봉사상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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