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저자, 게오르규
누구나 한번 스치듯 보았거나 들었을 25시!
우리 주변 일상에서 보고 듣는 25시는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지만 전혀 정반대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25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게오르규의 신 조차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25시’
▴게오르규 저
'25시'는 루마니아의 소설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Gheorghiu, C. V.1916~1992)가 1949년에 발표한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다. 그의 처녀작이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선량한 농부 모리츠를 통해 나치스와 볼셰비키의 학정과 현대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으로서 작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25시'는 '하루 스물네 시간 다음의 시간'이라는 뜻으로, 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다.
이 암울한 소설 제목이 왜 '25시'일까. 소설에는 무슨 이유로 제목을 '25시'로 지었는지 암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25시는 인류의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야. 설사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시간인 거지. 최후의 시간도 아닌,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이지.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25시야."
저서에서 25시는 나를 잃은 시간이다. 그 속에는 인간의 존재감이 없다. 그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끌려 다니는 노예가 있을 뿐이다. 거기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힘은, 문명일 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는 그 힘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로 돌린다.
25시는 인간성이 말살된 극한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여명의 동쪽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일생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면서 서구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게오르규의 인간존중 사상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이야말로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가르쳤던 그의 아버지는 20년이 훨씬 넘은 낡은 사제복을 걸친 프롤레타리아 성직자였다.
작가 게오르규는 다섯 번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을 하고 ‘한국 찬가’라는 작품까지 남겼다.
∎류광수 목사의 ‘25시’: 하나님의 초월적 응답 시간표
▲RUTCTV. 화면캡쳐
다락방전도운동을 이끄는 류광수 목사의 ‘25시’는 인간의 활동영역 시간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을 의미한다.
류광수 목사의 ‘25시’는 24시간 다음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다.
류광수 목사의 ‘24시’는 성도가 언약을 잡고 24시간 성경말씀과 하나님께 기도로 소통하며 집중하는 개념이다. 신자의 역할은 여기까지 이고 기도응답 언약성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적 응답 시간표에 따라 성취된다. 이것이 ‘25시’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사도와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라고 성령세례와 세계복음화의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다.
이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120명이 마음을 같이하여 예수님의 성령세례 약속을 믿고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행1;14) 이것이 류광수 목사의 ‘24시’이다. 성도가 24시간 언약의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24시’이다.
‘25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시간이다. 마가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바로 ‘25시’응답이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1-4)
성경은 우리 크리스챤들이 어둔 시대의 빛이 되고 구원의 나팔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5시’ 절망의 늪에서 소망을 잊은 자들에게 ‘25시’ 하나님의 응답을 보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25시' 전도자들이 되길 기대한다/ 윤광식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