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인께 속하면서 나의 소유는 주인과 별개일 수 없습니다. 십자군 용병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었던 칼이나 내가 마음대로 쓰기 원하는 돈 모두가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것으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456년까지 약 361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전쟁의 대상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국가들은 십자군 전쟁을 성전으로 간주하였으나, 비잔티움 제국이나 이슬람 국가들은 이를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와 문명의 충돌을 가져왔고 서양의 중세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십자군 전쟁에 출전하였던 병사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들을 군사로 모집하였습니다. 또한 군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는 돈으로 용병들을 고용했습니다. 이 용병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무기인 칼을 물 위로 치켜 들었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은 나는 예수님께 복종해야 하지만, 나의 칼은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 중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칼을 사용해야 하니 이런 방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세례를 받을 때 내가 들고 있는 칼은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일까요?
현대기술의 진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끊임 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 정보를 생산하는 속도 때문에 오히려 현기증이 납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마존 고객은 $283,000를 소비합니다. 600만 명이 온라인 쇼핑을 합니다. YouTube 사용자는 694,000개의 동영상을 스트리밍 합니다. Instagram 사용자는 65,000장의 사진을 공유합니다. 그야말로 정보량이 연간 대략 59%의 비율로 증가하는 Big Data의 시대입니다. 이런 흐름을 타고 Big Tech 기업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국내의 네이버, 카카오, 해외의 구글, 아마존, 메타와 같은 플랫폼 회사들을 Big Tech라고 지칭합니다. 이제는 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기업의 생존은 Digital Divide(정보격차)에 의해 좌우됩니다.
사람 사이에도 Digital Divide가 존재합니다. Digital 시대에 돈의 속도는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동일한 돈을 버는데 걸리는 시간 -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암호화 자산(Crypto Currency)의 경우 하루 변동이 100%를 넘는 경우도 발생 - 이 더 짧아집니다. 이제는 Digital Divide가 돈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Wealth Divide(부의 격차)를 만듭니다.
Digital Divide와 Wealth Divide의 실상은 무엇일까요? Digital Divide와 Wealth Divide는 물질 만능시대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는 인생의 유일하고 가장 높은 가치를 물질적인 행복을 얻는데 둡니다. 사람은 지적이나 영적인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해야 행복해집니다. 이 물질이 최고인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은 것이 바로 돈입니다. 구원은 떼어 놓은 당상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돈만 내 마음대로 사용하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자동차 매니아입니다. 여러분이 꿈꾸고 있는 생애의 자동차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그 자동차를 선물하였습니다. 선물에 대한 대가는 전혀 없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가 크겠습니까? 드디어 자동차 키를 받고 운전을 하기위해 차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좌석위에 작은 메모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 차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말그대로 최상급의 차입니다. 이 차의 주인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다만 한가지 알려드릴 사항은 이 차는 브레이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조심히 운전하기 바랍니다.”
최상급의 차를 브레이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해야 할까요? 당연히 포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필히 생명을 해하기 때문입니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최상급의 차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물질은 좋은 것이나 물질 만능주의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물질 만능주의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갉아 먹고 급기야 파괴합니다. 물질 만능주의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질식시킵니다. 나의 두 손에 가득 움켜 잡은 물질은 나의 눈을 멀게 합니다. 물질 만능주의를 추구하면 예수님이 아닌 다른 주인에게 무릎 꿇어야 합니다. 물질 만능주의의 치명적인 위험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위대한 축복을 놓치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런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머리, 가슴 그리고 돈 지갑의 회개입니다. 머리의 회개란 지적인 변화로 복음과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가슴의 회개란 사랑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 지갑의 회개입니다. 돈을 어떻게 모으고 쓰느냐가 회개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사람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지갑도 거듭나야 합니다.”
회개란 말로 이루어지나 돈 지갑의 회개는 피눈물이 납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양보해도 돈을 양보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다 예수님께 드려도 돈 하나만은 내가 틀켜 쥐려고 합니다. 아골 골짜기(수 7:26)에 복음들고 갈지라도 돈만은 안됩니다. 내게는 돈이 하나님보다도 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지갑이 회개 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때 하나님 대신 돈을 붙잡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낸 돈은 나의 일부요, 나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회개하면 동시에 나의 돈도 회개한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고 나의 돈도 그러해야 합니다.
바울은 탐심에 눈이 멀어 물질 중심으로 사는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부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올무가 되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돈 때문에 넘어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아간이 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아간의 욕심은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선지자 발람이 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발람은 돈을 받는 댓가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하였습니다. 들릴라가 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그녀는 삼손을 배반하고 그를 블레셋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솔로몬이 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그는 더 많은 말과 금을 소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가룟유다 역시 돈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그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물질 만능주의는 폭주하는 기차와 같습니다. 내가 거기에 올라타고 아무리 예수님께 순종을 외친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 기차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난 열렬한 물질 만능주의자일 뿐입니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믿음은 우선 죽음을 요구합니다. 내가 죽는 죽음의 사건이 있어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내가 죽는 사건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을 보일 방법은 없으나 내가 취한 기준은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죽는 것은 다른 가치를 붙잡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땅의 가치가 아닌 하늘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내가 죽어야 받을 수 있는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십니다.(잠 10:22)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겠지만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는 자는 푸른 잎사귀처럼 번성합니다.(잠 11:28) 겸손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허락하십니다.(잠 22:4)
내 인생의 경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 칭찬받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선한 일을 위하여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나는 주인께 속하면서 나의 소유는 주인과 별개일 수 없습니다. 십자군 용병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었던 칼이나 내가 마음대로 쓰기 원하는 돈 모두가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것으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청년의 때가 지나고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그런 시간이 오면(전 12:1) 알게 됩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였던들 그것으로 구원을 위한 몸 값(Ransom)을 치루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시 49:6~7) 그때 돈의 무익함도 드러납니다. 순종은 늦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칼이 동시에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시 49:16~17)
(다음호: 단 물과 쓴 물을 내는 샘)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