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우리말성경 버전으로는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어떤 다툼이나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 진위 논쟁을 벌일 때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을 오해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첫째, 주장하는 의견이 팽팽할 때 '모두 옳다'거나 반대로 '모두 그르다'고 하는 자를 질타하는 경우로 오해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 본문의 뜻은 양비론(兩非論;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를 모두 그르다고 하는 견해나 입장)이나 양시론(兩是論;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를 모두 옳다고 하는 견해나 입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한 말씀이 아니다.
둘째, 어떤 결정을 할 때 기권하지 말고 옳으면 옳다고 의사표명을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의사표명을 하라는 식으로 오해한다.의사표현을 피하는 것은 “이에서 지나는 것”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 본문의 정확한 뜻이 아니다.
셋째, 속과 겉이 일치된 표현을 하라는 의미로 오해하는 경우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생각이나 마음을 겉으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속마음에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그와 다른 말을 할 때가 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감이 없어서일지 모른다. 그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이 본문은 자기 속에 있는 속마음과 일치시켜서 의사를 표현하라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옳다고 여기면 옳다고 표현하고, 마음속에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님을 분명하게 주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이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그릇된 행실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5장 37절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33절부터 36절까지 말씀을 연결해서 읽으면 이해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헛맹세를 많이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한 맹세를 쉽게 저버리거나 궤변을 써서 그들의 헛맹세를 변호하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의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일침을 가한 내용이 바로 이 말씀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늘, 땅, 예루살렘 그리고 자신의 머리 등을 두고 맹세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5:12)
우리도 가끔 자신의 진정성을 강력하게 피력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나 부모님 이름, 자신의 성을 두고 맹세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신앙적 갈등이나 대립을 겪을 때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구절을 사용해 상대방을 정죄하거나 악마화하거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무책임한 맹세와 비진실성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 무례한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대신 하늘, 땅,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책임은 면하고 효과는 증대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루살렘 역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며,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빌려 자기주장을 정당화 하는 경우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사실(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도 특별히 쓰지 말아야 한다.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또는 본인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 때론 헛맹세가 되거나 죄악일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사람 앞에서 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온전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말은 간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오직 사실만 말하면 되고 많은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말의 권위는 언제나 그 진실성에 있기 때문이다.
힘들여서 하는 말, 많은 말, 많은 이유와 변명과 설명과 설득이 있는 말은 도리어 힘이 없다. 주로 자신을 변명하고 세우기 위한 말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지만 사역을 위해 말을 할 때도 이런 말을 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말이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더 이상 화려하고 달콤한 수식어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가 말의 지혜와 능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감동)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다만 사실만 말하고 진실만 말하는 이 원칙에서 벗어났다면 우리는 그 말이 사탄에 의해 간섭된 말이 아닌가 의심해야 한다.
37절에서 주님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에서 지나치는(넘어서는) 말은 곧 악한 자(마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 이상의 말을 하고 진실치 못한 말을 할 때 가만히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사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말들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난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또한 그 곁에 사탄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사탄은 꼼짝 못한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사탄은 우리의 말에 (이기심과 교만에서 나온) 거짓말과 자랑, 지나침과 과장, 분냄과 독한 시기와 다툼을 집어넣는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발행인 윤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