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시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God is First”로 사는 것은 영원(Eternity)를 위한 최고의 투자입니다.“ -본문 중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의 서문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로마인들이 천년제국이라는 로마를 일궈냈습니다. 더 자세하기 계산하면 로마제국의 역사는 약 1,200년 정도가 됩니다. BC 753년에 건국이 된 로마가 AD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대국으로 유지된 국가는 없었습니다. 헬라제국, 페르시아제국, 몽고제국, 청나라 등이 융성한 국가였으나 300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로마는 이와달리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서구문명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둘러싼 광대한 영토를 경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군사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재 정책입니다. 로마는 정복한 국가의 지도자나 귀족층의 자녀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로마로 옮겨와서 로마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가치, 언어, 문화, 행정 시스템을 배우며 로마의 일원으로 동화되었습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인재들이 본국의 지도자들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속국들은 자연스럽게 로마에 통합되었습니다.
둘째, 세금 정책입니다. 로마의 세금 정책은 “넓고 얕게 걷는다” 입니다. 정복지의 세금에 대하여도 유연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우선 그 지역에서 기존에 시행하고 있던 세금 제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는 데시마라는 속주세를 부과하였는데 대략 10%에 달하였습니다. 로마는 정복지에 강력한 로마군을 주둔시켜 안보를 보장하고, 속국은 그 댓가로 10%를 지급했으니 서로에게 Win-Win이 되었습니다.
셋째, 노예 정책입니다. 로마의 노예 정책은 경제와 사회 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는 다양한 분야에서 노예들을 대규모로 활용했습니다. 노예들은 농업, 건설, 광산, 가정, 국가의 기관 등에서 일했습니다. 노예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고 법적으로는 주인에게 종속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노예들은 로마의 시민으로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노예들은 허드렛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고 국가의 서비스를 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공무원을 “Public Servant”라고 합니다. 이는 국가의 공무를 담당한 노예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물론,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멸망의 길에 들면서 이와 같은 정책들은 빛을 바랬습니다. 1665년, 고드프레이(J. Godefray)는 로마 멸망의 요인을 과중한 세금, 중간 계층의 몰락, 경제적 취약성, 산업의 파탄 등에서 찾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도 로마의 인재 정책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눅 19:12~15)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 19:26~27)
이 비유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는 유월절 기간에 반란의 죄목으로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헤롯의 유아 대학살
AD 4년경에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려고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 황제로부터 왕위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도 아켈라오의 잔혹성을 알리기 위해 사절단을 로마에 보냈습니다, 아켈라오는 왕 대신 분봉왕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계속하여 탄압하고 살해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로원의 일원이 되거나 전쟁에서 공로를 세우면 큰 부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농지를 소유하고 많은 노예들을 거느렸습니다. 노예 중에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며 농장관리인의 직무를 위임받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로마의 노예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을 권면하십니다. 로마사회를 훤히 알고 있는 헬라인 누가가 이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였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 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눅 12:42~46)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복 있는 종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어떤 종이 복 있는 자인가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자입니다. 그 다음은 주인의 뜻을 헤아리는 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뜻을 진실하게 수행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직무입니다. 청지기는 “God is First”로 사는 자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종으로 “God is First”를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은 남여 종들을 때리며 먹고 취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God is First”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주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인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합니다.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중세의 정치학자인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부모가 죽은 것보다 자기 소유물을 빼앗긴 것을 더 잊지 못합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일꾼은 주인의 뜻을 아는 자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일꾼은 헬라어 '휘페레타스'로 노예를 의미합니다. 고대에서는 배에서 노를 젓는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 라고 불렀습니다. 일꾼은 주인의 소유입니다. “God is First”는 주종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주종 관계의 제일 덕목은 충성입니다 충성은 자유가 없고 주인에게 구속되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 지 40년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땅에는 이미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신들은 사람들에 의해 양산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신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God is Second”입니다. 주종 관계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우리는 자주 “God is First”와 “God is Second”의 중간에 섭니다. 마음이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니“God is First”로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0~21)
재물을 관리하는 종이 칭찬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서 “God is First”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이 작은 일입니다. 그 종이 받는 보상이 있습니다. 주인의 많은 것을 맡게 됩니다. 주인의 모든 것을 맡게 됩니다. 이 땅에서 ‘God is First”로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Coming Age를 위한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이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God is First”로 사는 것은 영원(Eternity)를 위한 최고의 투자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0~13)
(다음 호: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글 김태구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