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례 이대로 좋은가(③) 작지만 복음 있는 천국환송 예식

글 임정수 목사(주생명교회 담임)

2024-06-16 01:03:13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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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된 코로나19사태로 개인의 일상도, 문화와 전통도 차츰 바뀌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례문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보여주기 식 장례였고, 상주(喪主)위주의 비지니스 장례였다.

그래서 조문객 명수로 허세를 부렸고, 근조화환 개수로 허세를 부려왔다. 심지어 상주가 유명인의 이름을 도용하여 근조화환을 진열해 놓기도 하였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혼주(婚主)가 아니라 신랑. 신부이듯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상주가 아니라 고인(하늘시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잔치(?)문화는 주인공은 없고 가족이 주인공 노릇한다. 결혼식에는 혼주가 주인공이 되고 있고, 장례식에는 고인이 아닌 상주가 주인공이 되고 있다.

우리 문화가 유교문화라 그런지 내용보다는 형식이, 실속보다는 허례허식이 더 많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여파로 장례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 형 장례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대표적인 것이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 빈소 장례

둘째, 접객실이 작고 조문객이 적은 작은 장례

셋째, 30명 내외의 가족들만 참여하는 가족장

넷째, 빈소를 하루만 차리는 하루장(1일장)”

다섯째, 편리함을 맛본 비대면 모바일 장례

 

이제 우리는 코로나를 계기로 선진 장례를 적극 반영해서 작지만 알찬 장례로 바꿔갈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불교에는 불교문화가 있고, 유교에는 유교문화가 있는데 오늘 기독교에는 기독교장례문화가 없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일찍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장례문화를 복음문화로 바꿔야 한다.

문화의 주체는 사람이다. 복음문화의 주체는 복음가진 사람들이다.

우선 장례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교용어. 유교용어. 샤머니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왔다. 유일성의 복음에 불교의 옷을 입히고, 유교의 옷을 입히고, 샤머니즘의 옷을 입혀왔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 복음문화가 정립되려면 먼저 말과 언어, 용어가 바뀌어야 한다.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팔자가 바뀐다. 먼저 말이 바뀜으로 어둡고 침침하며 슬픈 문화에서 밝고 소망적인 문화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의 언어가 될 때에 점진적으로 우상의 장례문화가 복음의 장례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제는 유교식의 형식보다는 의미 있고 복음의 내용 있는 장례로, 그리고 허례허식의 거품을 다 빼내고 실속 있고 복음적인 장례로 바뀌어야 한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 빈소 장례의 일일(一日)장으로,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를 적극 반영하는 장례로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허례허식으로 부풀려있는 결혼식 문화도 가족중심의 작은 결혼식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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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파수꾼, 임 정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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