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항상 2%가 부족하기에 우리는 늘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야하고 기도하며 성령인도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 우리의 성화는 천국에 입성했을 때에 완전해진다. 기독교는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지만 윤리와 도덕적 종교는 아니다. 사랑의 공동신앙체이다.
어느덧 목회를 50년 정도 한 것 같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노회에서 총회에서 한기총에서 여러 목사님들과 많은 분들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다.
그런데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한국교회는 절대로 용서를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일단 누가 잘못하면 그것으로 끝장을 내려고 한다. 평생 성경을 읽고 신학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떠하셨는가?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쳐 쓰셨고, 수가성의 남편을 여섯이나 둔 여인도 제자로 삼았고,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도 단죄를 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용서 하셨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에게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하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저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셨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교리적으로 나와 맞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하고,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전국에 방송까지 하면서 교회나 목회자의 치부를 드러내고 도무지 고쳐서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다 이단감별사라는 이들은 마치 자신이 의로운 선지자나 된 것인 양 상대를 난도질 해버린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오직 예수로만 구원받음을 고백하고 사도신경으로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단 시비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이단감별사 중에는 나름대로 주님의 일을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매스컴 등을 이용하여 마치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이 그런 것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제공하여 한국교회의 전도를 막아 왔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이며, 그들 역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자기가 사용하던 물건이 고장 나면 고쳐 쓰려고 한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 아니신가? 우리가 고장 났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고쳐서 새롭게 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무슨 문제만 일어나면 한국교회 전체가 그런 것처럼 신문, 방송에 떠들어대서 불신자들이 다 알도록 해 교회전도를 막고 자신들이 마치 이 시대의 의로운 선지자 같이 행동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마9:3-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