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넌트 경제학(22)] ‘시간도 연보다’

시간이라는 가장 고귀한 예물, ‘날연보(日捐補)’의 유산

2026-01-03 11:05:56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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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자본으로 환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조차 효율과 예산으로 측정되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 부흥의 불꽃이 가장 뜨거웠던 12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은 돈보다 훨씬 귀한 것을 제단에 올렸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애 중 일부인 시간을 바친 날연보(日捐補)’입니다.

부족함 속에서 피어난 시간의 십일조

1900년대 초, 복음을 받아들인 조선의 성도들은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예배당을 짓고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손에 쥔 물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한 그들에게 가난은 장애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단했습니다. “돈은 없으나, 주님이 주신 내 생명의 시간만큼은 온전히 바치겠다.”

사경회 현장에서 성도들은 종이에 숫자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5, 10, 혹은 한 달. 그 시간만큼은 생업을 멈추고 오직 전도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만 존재하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헌신, ‘날연보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의 양식을 지고 떠난 전도 길

날연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은 전도를 위해 작정한 날이 되면, 먹을 양식을 자루에 담아 짊어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교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믿지 않는 이웃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1910백만인구령운동당시, 이렇게 모인 날연보는 무려 10만 일()이 넘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이 쉬지 않고 274년 동안 전도해야 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름 없는 평신도들이 바친 시간의 예물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거대한 숲을 이룬 뿌리가 된 것입니다.

2026, 우리가 회복해야 할 날연보의 정신

현대 교회에서 시간은 물질보다 더 귀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이웃을 향한 전도의 시간을 가장 먼저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날연보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

진정한 헌신은 삶의 공유입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은 마음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지만, 시간을 드리는 것은 존재 자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2026년의 날연보는 전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외로운 이웃의 곁을 지켜주는 시간, 병든 자와 곤경에 빠진 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 아이들과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 디지털 공간에서 복음의 가치를 전하는 시간이 모두 이 시대의 날연보입니다.

당신의 시간을 예물로 드립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한 번 지나가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가장 희귀한 자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갑보다 우리의 시계(시간)를 보길 원하십니다.

120년 전 선조들이 바친 그 뜨거웠던 날연보의 정신을 회복합시다. 나의 편안한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사용할 때,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간도 예물입니다.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헌금입니다./ 글 윤광식 장로(경영학 석사, 경영학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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