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덮인 안데스산맥이 동편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서쪽으로는 해안 산맥이 펼쳐진 산티아고(Santiago)에서 의료복음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광활한 평지의 호숫가에 자리한 캐나다 중동부의 땅에 발을 디뎠다. 창문을 열자 마음의 창도 함께 열리는 듯했다.
그즈음, 한 달이 넘도록 어지럼과 균형 장애로 힘겨워하는 사랑하는 캐나다인 중년 성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이 먼저 달려갔다. 음식점에 들러 음식을 정성스레 봉지마다 담아 들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기력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품은 발걸음이었다.
잠시 후, 쇠약해진 모습의 그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그의 형편을 조용히 들었고, 함께 기도하며 위로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새 대화의 중심은 단순한 문병을 넘어 선교 현장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로 깊어지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십자가와 순종의 의미로 이어졌고, 성도님 부인의 시선이 조용히 내 이야기에 머물기 시작했다.
문득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리아 사건을 바라보며,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라의 침묵을 통해 '설명되지 않는 순종'과 '보이지 않는 믿음'에 대해 묵상했던 나의 글이 떠올랐다. 그 묵상을 차분히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모리아 산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아들 이삭을 내어보내야 했던 사라의 침묵 곁에 함께 서 있게 되었다. 그 부인은 마음의 울림을 감추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곁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아들을 자꾸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 깊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아, 주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또 다른 뜻이 있었구나.'
이것은 단순한 문병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바라보고, 그 깊은 은혜를 나누게 하시는 자리였다. 갇혀 있던 현실의 저편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 앞에서, 내 영혼도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집을 나서려는 순간, 그 부인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사라의 순종이 이제야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아요… 그 한글로 쓰인 글을 주시면 영어로 번역해서, 이 깨달음을 식구들과 친지들에게도 꼭 나누고 싶어요."
그 고백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깨달음은 마음에 머물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혼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순종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다시 보여주고 계셨다.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께 붙들린 종의 남은 길을 바라본다. 이해보다 먼저 순종으로, 내게 맡기신 복음의 길을 다시 모아 드린다./ 주재식 선교사(캐나다 세계순회의료복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