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똑똑했던 왕, 하나님께 직접 전무후무한 지혜를 선물 받았던 솔로몬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몰락은 대단한 군사적 침략이나 내부정적의 날카로운 칼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밤 그의 품에 안겨 속삭이던 이방 여인들의 감미로운 숨결이 바로 화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비극은 정치적 필요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이방 여인들을 하나둘씩 궁궐로 맞아들인 오만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지혜로 그 여인들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최정상에서 신의 음성을 듣던 왕의 귀는, 점차 여인들의 애교와 눈물 섞인 애원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지혜는 머리에 머물렀지만, 욕망은 너무나 쉽게 품에 안겼기 때문입니다.
천 명의 처첩이 궁궐을 채우자, 그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천 개의 우상이 예루살렘의 영적 공기를 흐려놓았습니다. 왕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은 거대한 군대가 아니라 천명의 첩들이었습니다. 적들의 거친 군마 앞에서는 방어막을 쳤던 이스라엘의 영웅들이, 여인들의 간드러진 목소리 앞에서는 무장해제 당했습니다.
솔로몬이 삼킨 것은 고기가 아니라 거룩함이었고, 그가 품은 것은 여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파멸이었습니다. 지혜의 왕은 결국 처첩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 맞은편에 우상의 산당을 짓는 영적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리더가 분별력을 잃고 치마폭 뒤의 사사로운 목소리를 시대의 흐름으로 착각하는 순간, 공동체의 기초는 뿌리째 썩어 들어갑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금빛 지붕 위로 석양이 붉게 물들 때, 왕궁의 깊은 내실에서는 은은한 이방신전의 향료 냄새가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복잡한 송사를 단칼에 해결하던 솔로몬 왕은 이제 늙고 지쳐 있었습니다. 찬란했던 청춘의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시돈, 모압, 암몬 등지에서 온 수많은 이방 공주들의 웃음소리였습니다. 왕궁은 더 이상 하나님의 법도가 선포되는 거룩한 궁정이 아니었습니다. 각국에서 온 여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모시기 위해 피운 향연기로 가득한 밀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왕이시여, 고향의 그모스 신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예루살렘 동쪽 산에 작은 제단 하나만 허락해 주세요. 제 눈물을 닦아주실 분은 왕뿐입니다."
암몬 여인의 눈물 가득한 애원에 솔로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습니다. 젊은 시절,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며 밤새 눈물로 일천번제를 드리던 왕의 귀는 이제 여인들의 서글픈 민원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여인들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앞산에 몰록과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짓도록 허락했습니다. 심지어 왕 자신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음이 흐려져, 그 여인들이 차려놓은 이방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묘연한 눈빛으로 우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백성들을 거룩한 길로 인도해야 할 목자가, 치마폭에 가려져 영적 눈먼 지도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다윗의 길을 따르겠다던 총명한 소년, 세상의 모든 지혜를 깨달았던 그 영웅이 겨우 여인들의 아양에 놀아나 나라의 영혼을 팔아넘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지만, 이미 처첩들의 목소리에 귀가 멀어버린 왕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하늘의 무서운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네가 내 언약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솔로몬의 눈과 귀를 막았던 여인들의 화려한 치마폭은,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천을 남과 북으로 처참하게 찢어발기는 가위가 되었습니다. 화려했던 통일 왕국의 황혼기, 솔로몬은 천 명의 여인에게 둘러싸여 풍요로운 소외를 겪으며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은 대대손손 피를 흘려야 하는 공동체의 분열과 비극이었습니다. 리더가 들어야 할 단 하나의 절대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곁에 있는 여인의 속삭임에 귀를 내어줄 때, 그 조직의 내일은 예루살렘의 핏빛 황혼처럼 저물어 갈 뿐입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