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의 리더가 도덕적 수치심을 잃고 잘못된 관계의 치마폭에 안길 때, 그 조직의 양심은 가장 먼저 단두대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했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비극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은 유력한 통치자였지만,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빼앗아 아내로 삼는 천인공노할 도덕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왜곡된 결합의 중심에는 권력욕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왕의 곁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한 여인, 헤로디아가 있었습니다.
헤로디아의 치마폭에 갇힌 헤롯 안티파스는 공동체의 영적·도덕적 안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던 선지자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이 부정한 결혼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옳지 않다"는 요한의 날카로운 지적은 헤롯의 찔리는 양심을 자극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고, 그의 말을 들을 때면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달게 들을 만큼 최소한의 도덕적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브레이크를 사정없이 짓밟은 것은 배후에서 서슬 퍼런 독기를 품고 있던 헤로디아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치부를 들춰낸 요한을 증오하여 원수로 여겼고, 어떻게든 그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리더의 귀를 막고 공동체의 양심을 마비시키기 위해 그녀가 설계한 덫은 잔인하고도 매혹적이었습니다.
헤롯의 생일잔치 날, 고관대작들이 가득 모인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관능적이고 화려한 춤을 추었습니다. 술과 분위기, 그리고 여인의 치마폭이 만들어낸 감각적인 유혹에 완전히 취해버린 헤롯 왕은 이성을 잃고 호기로운 맹세를 남발했습니다.
"네가 무엇이든 내게 구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헤로디아는 딸의 배후에서 사악한 꾀를 내어 부추겼습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달라고 하거라."
딸을 앞세워 왕의 귀에 흘려보낸 이 독한 요구에 헤롯은 심히 근심했습니다. 요한을 죽이는 것이 민심을 잃고 공동체를 영적 위기로 몰아넣는 일임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잔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해버린 왕은, 여인의 독한 부추김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체면과 치마폭의 요구를 선택했고, 의로운 선지자의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은반지 위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선지자의 머리가 배달되던 날, 갈릴리 공동체의 공의와 양심은 통째로 도살당했습니다.
리더가 한 여인의 원한과 부추김에 놀아나 백성들이 존경하던 영적 지도자의 목을 베어버린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민심은 완전히 헤롯 왕가를 떠났고, 백성들의 마음에는 깊은 불신과 영적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이후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내가 목 벤 요한이 살아났다"며 극심한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정신적 파산을 겪었습니다.
헤로디아의 탐욕에 휘둘려 양심의 소리를 베어버린 헤롯 왕가의 끝은 비참했습니다.
훗날 헤로디아의 끝없는 권력욕에 등 떠밀려 로마 황제에게 더 큰 왕권을 요구하러 갔던 헤롯은, 도리어 부당한 권력 남용죄로 처벌받아 모든 영광을 빼앗기고 먼 이국땅으로 추방당해 쓸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리더가 공의로운 책망의 귀는 막아버린 채, 밀실에서 들려오는 악한 부추김과 감각적인 유혹에 눈이 멀 때, 그가 이끄는 공동체는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함께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세례 요한의 핏빛 쟁반은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