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경국요희(傾國妖姬) ⑥] 아들의 눈을 가리고 왕의 씨를 말린 유다의 독버섯

아하스야와 아달랴

2026-10-30 11:46:14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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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파멸을 부르는 가장 잔혹한 형태의 치마폭 정치는, 리더가 가장 신뢰하는 혈육이자 조언자의 가면을 쓰고 배후에서 조직을 조종할 때 완성됩니다. 남유다 왕국의 제6대 왕 아하스야의 시대를 덮쳤던 비극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올랐을 때 겨우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미숙했던 젊은 왕의 곁에서 어머니이자 태후였던 아달랴는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사악한 탐욕을 숨긴 채, 아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가려버린 절대적인 비선 실세였습니다.

아달랴는 북이스라엘을 피로 물들였던 악명 높은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유다의 왕가로 시집올 때 어머니의 잔혹한 통치 방식과 바알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몸에 지니고 들어왔습니다. 청년 왕 아하스야가 보좌에 앉자, 아달랴는 매일 왕의 귀에 하나님의 율법 대신 우상숭배의 타락과 정적을 숙청하는 악한 꾀를 속삭였습니다.

성경은 이 시절을 향해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고 서글프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더가 공의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배후에 있는 어머니의 악한 부추김을 절대적인 조언으로 신봉할 때, 국가 공동체는 영적·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아달랴의 치마폭에 싸여 눈먼 통치를 이어가던 아하스야는, 결국 북이스라엘의 왕가와 손을 잡고 우상숭배의 길을 걷다가 예후의 혁명 세력에게 허망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즉위한 지 고작 1년 만에 벌어진 국가적 비극이었습니다.

왕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유다 왕국은 거대한 리더십의 공백과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성적인 태후라면 가문을 추스르고 백성들을 안정시켜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달랴의 눈에는 슬픔 대신 섬뜩한 권력욕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이 슬프지도 않은 듯, 그 즉시 왕궁의 군대를 동원해 다윗 왕가의 모든 씨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자신의 친손자들, 즉 아하스야의 어린 아들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입니다. 할머니의 손에 의해 왕위 계승자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던 날, 예루살렘 성읍은 통곡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잔혹한 피의 숙청을 통해 아달랴는 스스로 왕좌에 올랐고, 하나님이 다윗 가문과 맺은 거룩한 언약의 대를 끊어버리려는 영적 대반역을 감행했습니다. 리더를 조종하던 비선 실세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통째로 삼켜버린 암흑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탐욕으로 쌓아 올린 치마폭의 정치는 결코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학살의 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아하스야의 어린 아들 '요아스'가 고모 여호세바의 손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어 성전 깊은 곳에서 6년 동안 숨어 자랐습니다.

그리고 제7년째 되던 해, 영적 분별력을 지키고 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목숨을 걸고 군대 지휘관들을 모아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7세 소년 요아스 왕에게 왕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쥐여주며 "왕만세!"를 외치던 날, 성전 마당은 백성들의 환호성과 눈물로 가득 찼습니다.

왕궁에서 이 소리를 듣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외치던 아달랴는 백성들의 손에 끌려 나가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한 여인의 잔혹한 탐욕에 휘둘려 아들은 눈먼 지도자로 살다 죽었고, 온 나라는 6년이라는 혹독한 암흑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리더가 가장 가까운 혈육이라는 이유로, 배후에서 귓속말하는 비선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할 때, 가문은 파멸하고 공동체는 핏빛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유다 역사상 가장 가혹했던 독버섯, 아달랴의 통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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