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칼럼] 6.25전쟁과 김준곤 목사

부친과 아내 북한 공산당에 학살됐지만 ,,, 용서

2020-06-23 23:28:14  인쇄하기


북한 고난 행군시절 북한동포돕기 앞장서

생전, 분단된 조국이 완전 복음화된 민족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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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김준곤 목사 어록

 

6.25전쟁은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 한국대학생선교회 설립자)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잔인한 시기였다.

김준곤 목사는 19506.25가 터지자 경기도 파주 금촌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다가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아내 인정진 사모와 네 살 된 어린 딸과 함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로 내려갔다. 그러나 피난처가 될 것으로 알았던 고향은 이미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들은 빨갱이로 변신하여 민청이니 여맹원이 되어 빨간 수건으로 머리띠를 하고는 죽창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은 머슴을 두고 농토를 갖고 산 지주였다는 이유로 김준곤 목사의 부친과 주일학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김준곤 목사의 사모를 학살했다.

1950103일 밤이었다. 그 섬의 인구는 18,000여 명인데 그날 밤 그 산에서 60여 명이 죽었고, 대략 2,000여 명이 학살당했다. 김준곤 목사는 공산좌익들에게 폭행을 당해 거반 죽게 된 상황에서 목포경찰서 지도서 김곤근 서장의 지휘와 11명의 경찰과 해병대 1개 소대의 상륙작전으로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19501017일 오후 1시 살육과 광란의 폭풍은 잠잠해졌다. 

김준곤 목사는 당시에 부친과 아내를 학살한 공산좌익들에게 자신도 거반 죽게 된 상황에서도 보복은 안 하겠습니다. 또 내 마음속에 평화를 주시고 주님을 찬송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가족을 죽인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들어가면서 중보기도를 했다. 그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지서에 잡혀온 120여 명의 공산좌익들과 400여 명의 유가족들 앞에서 그들을 용서하는 대선언을 하였다.

 

썰물 밀물에 몰려다니는 고기떼처럼 이 비극이 이쪽에서 죽고 저쪽에서 죽고 이 치하에서 살았더라면 누구라고 부역을 안 하고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여러분이 유가족이라고 살아남았으면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쳐보시오. 다시는 보복이 없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때 상황을 김곤근 선생(1924~2005)은 증언하기를 "사람을 죽인 120여 명 모두를 계엄사령부로 올려 보내면 모두 사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중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륙 이틀 후 김준곤 목사님이 젖먹이를 데리고 지도서로 찾아와 그들을 양떼들이라고 부르면서 용서해 주자고 부탁을 했어요." 결국 주동자급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답게 살라고 훈계를 하고 놓아줬다고 한다. 훗날 파악한 바에 따르면 120여 명 중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장로까지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김준곤 목사의 6.25의 고난과 진정한 용서는 성령의 역사임을 보여 준다. 또한 원수까지 사랑한 믿음의 역사는 민족 복음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비전을 품게 했다. 

그리고 김일성 부자의 사악한 통치는 반대하면서도 굶주림에 처한 북한 동포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위대한 결단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되었다.

김준곤 목사는 무엇보다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앞장 섰다. 1990년 중반, 북한동포가 기근으로 300만 명이 아사(餓死)를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선한다.”며 북한 동포 돕기에 발 벗고 나섰다. 벳새다 광야에서 굶주림에 처한 무리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6:37)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자고 호소하면서 북한옥수수보내기, 사랑의 옷 보내기, 젖염소 보내기운동 등에 참여하셨다. 한마디로 신앙의 힘으로 녹여낸 용서의 힘이 있었기 때문 때문이다.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수난과 개인의 고난이 겹쳐 있고,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민족을 꿈꿨던 분이다.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격문을 걸고 민족의 심장 같고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조국이 지구상 유일한 완전 복음화된 민족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소원했다.

이를 위해 대학생 선교와 함께 국회조찬기도회(19662), 국가조찬기도회(196638), 전군신자화운동(1969), 춘천성시화운동(1972), 엑스플로 ’74대회(1974.8.13~18, 여의도광장), ’80 세계복음화대성회(1980년 여의도광장) 등 줄기차게 민족 복음화의 산을 오르기 위해 진액을 쏟으셨다.

 

이제 김준곤 목사는 우리 남은자 들에게 민족복음화로 하나된 조국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실천할 때이다. /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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