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다 가고 있다. 지난 6월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주관으로 6·25 전쟁 70주년 호국 보훈 행사가 있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봉환된 한국군 전사자 147위 유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이날 행사 주제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영웅들에게 경례(Salute to the Heroes)’였다. 정부는 이 영웅들에 대해 6·25 행사 최초로 조포 21발을 발사해 국가 원수급 예우를 했다.
그러나 이날의 호국보훈 행사는 또 다른 ‘진정한 영웅’들을 잊고 있었다. 바로 6ㆍ25 전쟁 시 북한의 포로가 돼 살아서든, 유해로든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이다. 6·25전쟁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ㆍ중국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국군 규모를 8만2천318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1954년까지 진행된 포로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은 8천343명에 불과하다. 최소 7만여명의 국군이 포로로 남았거나 실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군과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거듭 제기했지만 북한은 그때마다 “다른 인원들은 전향했다. 국군포로는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94년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소위가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조 소위의 탈북은 북한 주장이 거짓임을 온몸으로 증거했다. 돌아온 국군포로나 탈북자의 증언 및 각종 자료 등에 따르면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노예처럼 살았고 또 살고 있다. 이들은 불발탄을 해체하다 죽고, 광산 유독가스에 숨 막혀 죽었다. 손가락이 잘렸는데도 곡괭이를 들어야 했다.
지난 25년 동안 탈북해 귀환한 국군포로는 80명이다. 귀환 국군포로 숫자는 1994~1999년 8명에 불과했지만 2000년 한 해에 9명으로 늘었다. 2001년과 2002년엔 각각 6명이었다. 2004년엔 14명에 달했지만 2005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0년 1명을 끝으로 국군포로가 탈북 귀환했다는 소식은 없다.
2010년 이후로는 국군포로들의 연령이 90세 안팎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돼 자력으로 귀환할 여력이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생존자는 지난해 9월 기준 24명이다. 국군 포로를 돕는 인권단체인 ‘물망초(날 잊지 말아라)’의 박선영 이사장은 “이제 230명 정도만 생존하신 걸로 추정한다”고 했다. 정말 시간이 없다. 국가는 북한에 정당하게 제의해서 생존한 영웅들을 최대한 빨리 귀환시켜야 한다. 또 유해 발굴작업도 추진해서 돌아가신 영웅들의 유해를 신속히 봉환해야 마땅하다.
전 세계 경찰국가로 세계 분쟁에 관여하는 미국은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지에 남겨 놓지 않는다. 유해라도 반드시 데리고 온다. 지난주 봉환된 147위의 국군유해도 북한이 아니고 미국으로부터 봉환됐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수차례 진행됐던 남북고위급 및 정상회담에서도 국군포로에 대해 북측에 제의하지도 못했다. 국가를 지키려다 적지에 남은 국군 포로들은 70년째 남쪽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정부가 구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이들 7만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지금 잊혀 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 앞에 모두 죄인이다. 6월이 다 가는 월요일 아침을 열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7만여명의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신 ‘진정한 영웅’들의 절규를 대신해 외쳐본다. “날 잊지 말아라. 내 맘에 맺힌 조국이여!”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