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현장을 가다(5): 김인숙 전도사의 무속인 전도②

산신암 임철순 보살, 30년 무속생활 청산후 무속인 전도자 되다.

2023-03-08 21:59:14  인쇄하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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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암 앞에서 무속전도캠프팀 

20201, 김인숙 전도사가 속한 예원교회(정은주 목사)  ‘무속전문교회 지역캠프팀이 의정부에서 무속전도캠프를 펼쳤다. 21조로 나눠진 팀들이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흩어져 지역 무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현장을 누볐다, 이 때 캠프팀(송정자 권사, 이연배 권사)이 산신암 임철순 보살을 처음 만났다. 임 보살은 교회에서 나온 무속인 캠프팀에 대해 무척 궁금해 하며 다시 만나자고 해 210일 김인숙 전도사가 임 보살을 만났다.

 

임 보살의 파란만장했던 삶 끝에 만난 그리스도

임 보살은 충청남도 부여 외갓집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당시 세분의 외할머님께서 계셨다.

첫째 외할머님은 무당이었고, 둘째 외할머님은 불심이 강하였으며 셋째 외할머님은 맹인이셨고 또한 무당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임 보살의 친정어머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성도였다. 임 보살은 어린 시절 둘째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 입학 할 무렵 친가로 가게 되었다 

임 보살은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 교회를 잠시 다녔으나 잠을 잘 때마다 셋째 외할머님이 사시던 집 근처 우물가에 있었던 세 개의 부처가 보이기 시작하며 시달리기 시작했다.

임 보살의 10대 시절은 친할머니에 의해 서울에 있는 친척집의 수양딸로 보내졌는데 이 과정에서 임 보살은 모진 고생을 하게 되었다 

임 보살이 21살이 되던 해 친구들과 호기심에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점집에 가게 되었는데 무당이 친정아버지의 과거를 맞추는 것이 신기했고 흥미로웠으며 무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무렵 임 보살은 처음 이성친구와의 만남이 있었는데 그 남자친구 역시 불교가문 이였다. 그런데 남자친구 부모의 반대로 교재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부모님께 겁을 주려 자살을 시도했던 남자친구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어 임 보살은 큰 상처와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 보살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술과 담배로 그리움을 달래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 아픔을 잊기 위해 임 보살은 28세가 되던 해 친한 친구의 소개로 충청도 논산으로 시집을 갔는데 시어머님과 남편은 세상없는 원수로 매일이 싸움과 불화가 끊이질 않았으며 시어머님 역시 반 무당으로 기가 남달랐다.

임 보살은 슬하에 11녀를 두었고 힘든 자녀양육, 부부간의 갈등으로 험한 싸움이 계속 되었다. 남편은 싸울 때 마다 칼을 들고 생명을 위협했고 매일이 지옥 같은 결혼생활 이였다. 이런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 지친 임 보살은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총 7차례에 걸쳐 큰 굿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 무당패들은 임 보살이 신을 받아야 가정이 편안해 진다며 내림굿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시어머님은 이 사실을 임 보살에게 숨기고 눌림굿을 해버렸다. 그 후 임 보살은 아무 차도도 없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심한 각혈증세와 전신이 아프기 시작하였고 병원 검사 결과 아무런 병명이 나오지 않았으며 더욱 고통에 시달리며 급기야는 걸음조차 걸을 수 없는 지경에 달았다. 

이 시달림 속에 더는 살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임 보살은 아이들을 두고 혼자 몸으로 친구들이 살고 있는 서울 불광동에 거처를 마련했다.

몸이 살짝 나아졌다고 느낀 임 보살은 친구들을 만나 거의 매일 술에 의지하며 살던 중 어느 날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 중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귀신이 보이고 점사(점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사를 상대방에게 말해 주었더니 임 보살이 했던 말들이 다 맞다며 신기해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렇게 집을 나온 지 10개월이 지날 무렵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현실적으로 생활비와 아이들의 양육비가 걱정되었던 임 보살은 취업을 위해 동네 언니를 따라갔는데 그곳이 무속집 이였다 

무당이 임 보살을 보는 순간 이 일(무속)을 하게 되면 10개월 안에 아이들도 데려오고 금전적으로도 안정될 것이라며 무당이 될 것을 권유했다.

그 무렵 남편은 알 수 없는 신병으로 자다가 죽었고 남겨진 아이들을 데려오게 되었다.

그길로 임 보살은 그 무속인의 말을 듣고 32살에 무속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따로 신당을 차려 무속 생활을 하던 임 보살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생계유지가 어려워 아르바이트와 힘든 일을 계속하게 되었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무속 생활에 한계를 느껴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목사님을 만나 법당을 엎어버렸다. 간신히 아르바이트 일자리로 얻은 식당일도 임 보살 때문에 재수 없어서 식당이 어려운 거라는 주인의 말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임 보살은 빚 청산과 생계유지를 위해 관악구 도봉구에 새로운 법당을 차렸는데 의외로 많은 돈을 벌어 이제 좀 생활이 나아지겠구나하던 찰나 함께 일하던 보살들의 시기와 질투로 그나마 잘 되던 법당을 때려 쳤는데 벌점은 없었다. 문제와 사건이 계속되었고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파산하고 온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다.

임 보살은 전라도 산에서 절 짓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신 기도를 쉬지 않은 결과 다시 양주로 옮겨 12년 동안 무속생활을 하던 중 재건축으로 의정부로 법당을 옮겼다.

하지만 임 보살은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면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20201월 무속인 캠프팀을 만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다.

무속전도캠프팀이 연결 해준대로 210일 김인숙 전도사는 임 보살을 만났다. 당시 그녀의 나이 65세 였다.

김 전도사는 임 보살이 겪어야 했던 불행과 저주의 원인이 무엇이며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참된 소망을 갖고 새로운 인생,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되신 예수그리스도, 구원의 길을 제시 했을 때 임 보살은 본인이 죄인임을 인정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을 하면서 엄청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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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임 보살

너무나 불행했으며 미래에 불안함과 살아갈 이유가 없어 늘 자살을 생각했던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빨리 교회 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212일 법당철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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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철거 사진

216일 예원교회 첫 예배에 참석하였고 은혜를 받은 임 보살은 그 후 교회 생활에 적응하면서 4주 새가족 훈련을 받았고 1년 후에 집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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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족훈련후 교회화 된 임철순 집사

이제 임철순 집사는 무속캠프 현장에 증인으로 함께 무속인 전도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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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교회 무속전도팀

임 집사는 산신암 법당철거 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라고 고백한다. / 글 김인숙 전도사(예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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