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패튼은 1824년 스코틀랜드 덤프리즈 근처에서 태어나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골방에서 기도하던 신앙인이었고, 어린 존은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도시 빈민들을 대상으로 10년간 헌신적인 전도 사역을 펼쳤다. 공장 노동자들과 불량배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며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더 깊은 부르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코틀랜드 개혁장로교회로부터 남태평양 지역에 선교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뉴헤브리디스 제도(현 바누아투)는 식인 풍습이 남아 있던 위험한 지역이었고, 많은 동료들이 그를 말리며 경고했다. 패튼은 빈민 사역을 계속할지, 선교지로 떠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주님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면 나는 미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운 아내 무덤 옆에 묻혔을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죽음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고백이며, 그의 선교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패튼은 1858년 봄 목사 안수를 받고, 아내 메리와 함께 뉴헤브리디스로 떠나 타나 섬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선교지로 떠나기 전, 한 노인이 “식인종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다”고 걱정하자, 패튼은 이렇게 답했다.
“딕슨 씨, 당신은 곧 묘지에 묻히게 되고 벌레에게 먹힐 것입니다. 저는 주 예수님을 섬기다 죽을 수만 있다면, 식인종에게 먹히든 벌레에게 먹히든 상관없습니다.” 이 말은 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과 헌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그의 인생의 전환점에서 신앙적 결단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그는 문화 충격, 풍토병, 가족의 죽음 등 극심한 고난을 겪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으로 사역을 이어갔다.
존 패튼은 바누아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그의 사역은 단순한 복음 전파를 넘어, 생명을 건 헌신의 연속이었죠.
1861년, 패튼과 동료 선교사들이 식인종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뉴헤브리디스 제도에서 악성 홍역이 퍼지며 원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패튼과 동료 선교사들은 약품과 음식, 물을 나르며 주민들을 돕고, 저녁에는 선교센터에 모여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그 시각, 식인종들이 선교센터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지인들이 가져온 질병이라 믿고 선교사들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한 초년생 선교사가 공격을 받아 쓰러졌고, 패튼 선교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보고 계시다!”라고 외치며 맞섰다. 놀랍게도 식인종들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도망쳤고, 패튼은 이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간증했다.
이 사건은 패튼이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던 순간으로, 그의 자서전에서도 깊은 감동을 주는 장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존 패튼 선교사 부부가 뉴헤브리디스 제도의 한 섬에서 사역하던 중, 어느 날 밤 원주민들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캠프를 포위했다. 피할 방법이 없던 패튼 부부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고, 밤새 기도한 후 주변이 조용해졌다. 1년 후, 원주민 추장이 예수님을 영접한 뒤 패튼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날 밤, 선교사님과 함께 있던 빛나는 옷을 입고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은 누구였습니까?” 패튼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자신들을 보호하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사역 중 가장 신비롭고 감동적인 간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존 패튼은 단순히 복음을 전한 선교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끈 개척자였니다. 그의 사역은 뉴헤브리디스 제도(현 바누아투)의 문화, 신앙, 공동체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상 숭배에서 기독교 신앙으로의 전환
패튼은 애니와 섬에서 사역하며 거의 모든 주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그는 애니와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예배와 교육을 통해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
∎ 공동체 질서와 법률 제정
패튼은 청교도적 가치에 기반한 엄격한 공동체 규범과 법률을 도입했다.
이는 개종한 추장의 지지를 받아 섬 전체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질병 대응과 인도적 지원
홍역 등 전염병이 퍼졌을 때, 패튼은 약품과 식량을 나누며 주민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헌신은 원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폭력과 복수의 문화에서 평화로
원주민 사회는 내분과 살인이 일상적이었지만, 복음의 영향으로 폭력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평화로운 공동체로 변화했다.
존 패튼의 사역은 단순한 종교적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공동체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패튼은 바누아투에서 선교사로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말년에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선교 후원과 간증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1907년 1월 28일, 스코틀랜드에서 83세의 나이로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
패튼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끝까지 순종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패튼의 삶은 단순한 선교사의 기록을 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