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10일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교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당시 반대 목소리를 내던 선교사와 일부 목사들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갔다.
▲ 신사참배 광경
그후 1945년 해방 전까지 매주 예배를 드린 교회는 거의 신사참배를 한 교회이다. 목사들은 일본식 군복을 입고, 교인들 모두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고, 천황을 향해 동방요배를 드렸다. 출애굽기와 같은 일제가 보기에 선동적인 본문은 모두 빼고 복음서만 설교했고 예배 후에는 모든 교인들이 신사로 가서 참배하는 것이 주일 예배였다.
신사참배는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다. 당시 신사참배 반대로 50명이 순교했고 2천 명 이상이 수감되었다. 1945년 8월 17일 모든 신사참배 반대자가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해방 후 출옥한 목사들은 일제에 굴복한 목사들을 향해 백번 양보하여 2개월만이라도 자숙하라고 요청했으나 그들은 끝내 거부하며 이렇게 변명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신사참배 반대해서 감옥에서 고생했지만 우리는 일본 등쌀 견디면서 교회 지키느라 고생했다."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면 우상에게 절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던 이 논리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내분과 갈등사태는 교회를 사수한다는 목회자의 욕심이 빚은 참사가 대부분이다. 은퇴목사와 후임 목사간의 갈등 역시 돈 문제이다. 목회의 성공이 교회 외형크기로 판단되고, 교회의 권위는 돈과 권력이 대신 차지한 지 오래이다. 교회 옆에 절이 세워지는 것보다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교인이 이동하면 그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 까지 서슴지 않는 등 교회 이기주의가 판친다.
매년 장로교 총회 때마다 불거지는 금권선거, 대형교회의 갈등 모두가 권력과 돈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 사이 최근 10여 년 간 대형교회당 수 십 여개가 직 간접적으로 이단들에게 넘어갔다. 이 역시 교회외형주의가 빚은 결과이다.
신사참배 80주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단 한가지 이다, 바로 우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교회당(교세) 우상주의, 교회이기주의, 권력지상주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 윤광식(kidok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