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월18일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사망한 날(1546.2.18.)이다. 올해는 1517년 마틴 루터의 95개조 논제로 비롯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보름스 제국 회의에서 자신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마르틴 루터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인 마틴루터는 비텐베르크 성채교회당 문에 '95개조 논제'를 발표하여 교황에 맞섰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종교개혁은 악마의 화신으로 변한 교회를 개혁 할 수 있는 첩경이 기독교의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중세 인문주의 분위기 속에서 지각있는 성직자들이 교회의 근본적 개혁에 뛰어들었다. 기존 세력과의 의견충돌과 투쟁이라는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종교개혁을 태동 시켰다.
중세교회의 타락성 첫째는 성직자들의 타락이다. 성직자들과 수도사들 사이에 동성애가 빈번했다. 중세문학의 귀족부인의 정부(情夫)는 언제나 사제였을 정도였다. 16세기 중용적 종교개혁자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사제와 여 신도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였다. 사제들과 수녀들 사이에 불륜이 성행하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교회당과 수도원 지하에는 것난아이들의 시체가 즐비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둘째는 교황의 탐욕이다. 교횡은 양떼를 돌보기 보다 황금을 모았고, 자기의 친족들이 부를 얻도록 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가난한 교인들이 낸 헌금은 교회당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일에 탕진했다. 고위 성직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기 보다 대적자들을 죽이는 일에 열성이었다.
교황들은 전쟁을 즐겼고 정복원정을 전개했다. 최고의 예술가들을 로마로 끌어들여 장려한 건축물을 세우고 예술품으로 치장했다. 사치와 향락에 탐닉하고 성적인 방종에 빠졌다.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추기경들에게 막대한 금품을 주고 교황직을 매입했다. 재위기간 돈을 벌기위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셋째, 영적 타락이다. 믿음으로 구원얻는 것이아니라 면죄부를 팔아서 구원을 얻도록 했으며 교황은 이를 이용해 십자군 원정 비용을 충당했다. 이런 영적분위기 속에 평신도들도 영적으로 타락해 갔다. 부정부패와 성적으로 타락한 죄의식이 없는 사제들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으며, 평신도들은 성자의 유품을 수집해 신성시하고 이를 숭배하는 풍조도 생겨났다.
교회가 도덕상을 상실하자 양식있는 성직자들이 신앙문제에 대한 자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이 에라스무스, 마르틴 루터, 울리히 쯔빙글리 이다. 이들은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 권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각을 가졌다.
교황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했다. 종교개혁은 이렇게 태동되었다.
마틴 루터는 비록 떠났지만 그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무엇이라 말할까? 중세교회의 타락상과 오늘날 교회의 타락상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목회자 역시 목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