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 손성지 박사, 시대 흐름을 본 서밋의 작품: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

반(反)복음적 시대흐름 바꾸기 위해 기획된 ‘서밋의 작품’

2020-08-26 20:23:05  인쇄하기


손성지.jpg

손성지 박사, (역사 신학 Ph.D. RTS 교회사 연구교수)

 (* 아래의 논문은 원문의 각 주가 생략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대 흐름을 본 서밋의 작품: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

A Summit’s Masterpiece to Having Insight into the Spirit of the Age: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according to Jonathan Edwards

 

손 성 지

      역사 신학 Ph.D. 

 

. 들어가는 말

 

본고의 목적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구속사가 그 시대의 반()복음적 흐름을 바꾸기 위해 기획된 서밋의 작품이었음을 개혁주의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함이다. 뉴잉글랜드 대부흥운동의 주역인 에드워즈의 구속사는 그의 명성과 다른 저작들에 비해 주목을 덜 받은 편이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그가 직접 경험한 부흥의 역사를 담은 놀라운 회심 이야기(1737)에 의해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뜨겁게 달궈진 부흥 논쟁에서 균형자 역할을 적극 수행한 것에 상당히 기인할 것이다. 한번 각인된 강렬한 이미지는 역사적 기억 속에 쉽게 고착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에드워즈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첫 인상은 역동적인 대부흥 시기와 관련이 깊다.

한편, 현대적 관점에서 에드워즈를 재해석한 페리 밀러(Perry Miller)구속사를 가리켜 근본주의자들을 위한 이야기 책에 불과하다고 한껏 폄하한 바 있다.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 섭리를 모르는 무신론자다운 발상이었다. 사실 영국에서 구속사가 출판되었을 때, 월간 리뷰(Monthly Review) 지에서도 차가운 비평을 퍼부은 바 있다. “장황하고 억지스럽고 지루하고 혼란스러운 한 편의 서사시에 불과하다며, 에드워즈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 도취된 몽상가로 취급했다.다양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사 섭리의 계획을 추적한 에드워즈를 불쌍하게 버림받은 광신주의자로 내몰았고, 구속사난센스로 치부하였다.이러한 차가운 시선은 계몽주의 지성에 사로잡힌 당시 영국의 문화적 풍토를 대변해준다. 이미 합리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 이신론 등이 결합된 반()칼빈주의적 사조가 영국 국교회에 상당히 침투해 있었기 때문에 주류 교회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 및 개혁주의 관점에서 볼 때, 구속사는 그 내용과 역사적 가치를 결코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에드워즈의 핵심 저작이다. 구속사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소천하기 직전까지 주목했던 중대한 신학적 관심사였을 뿐 아니라, 당시 현장의 대세로 떠오른 반()개혁주의적인 흐름으로부터 복음의 진리와 교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목회적 대안이자, 시대정신의 흐름을 반전시키려 했던 신학적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구속 사역이 하나님의 핵심 섭리 사역이며, “하나님의 모든 사역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역으로서, 다른 모든 사역은 그 부분으로 간주되거나 그 부속물로 간주되거나 그것에 이르는 어떤 과정으로 간주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즉 구속 사역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포괄하는 섭리 사역의 결정체였다.따라서 개혁주의 청교도의 신앙 유산을 보수하면서도 창의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에드워즈의 사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구속사에 대한 고찰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영적거인의 작품을 전도자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는 전도신학정립에도 작은 발판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 에드워즈의 말씀 묵상과 기록 습관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 민감성과 통찰력은 주로 말씀 묵상과 메모 습관에서 길러지고 발전되었다. 훗날 대각성’(The Great Awakening)으로 알려지는 뉴잉글랜드의 대부흥 시기에 활동한 목회자로서, 에드워즈는 약 29년간 바쁜 목회사역과 왕성한 저술활동을 병행하였다. 무엇보다 성경을 만물의 척도로 여기며, 항상 말씀 묵상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점에서 우리의 손에 보배를 맡겨 주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사람이 그 거룩한 책을 소유하고 있지만, 성경을 자기들의 마음속에 품고 그것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는 얼마나 적은가? 이 책은 얼마나 탁월한 책이고, 사람이 쓴 모든 책을 얼마나 크게 능가하는가?

 

십대 후반 소년이었을 때 작성한 결심문에서도 규칙적인 성경 연구에 대한 결심과 그의 영적성장이 성경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젊은 시절부터 기록한 독서 목록의 첫 번째 책이 성경이란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에드워즈의 제자인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는 자신의 스승이 성경 묵상과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을 회상한다. 그 스승은 성경과 주석을 읽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데 성령의 도우심을 적극적으로 간구하였다.

에드워즈는 성경에서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고, 성경을 읽을 때 종종 모든 단어가 내 마음을 만지는 것같았으며, “내 마음에 있는 것과 이런 달콤하고 강력한 말씀 사이에 흐르는 화음을 느꼈다. 문장마다 가득한 빛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신선하고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과도 같아서 말씀 묵상을 지속하기가 매우 벅찰 정도였다고 한다.에드워즈에게 성경은 곧 왕과 예언자들, 사도들과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이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언약의 말씀이었다.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태초부터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중대한 계획과 영광스러운 목적을 역사나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말씀 묵상은 구속사의 핵심 교리를 확립시켜 주는 본질적 토대였다.구속사는 성경의 계시가 곧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성취를 위해 주어진 것임을 탁월하게 입증한다.

에드워즈의 삶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이것은 특히 그가 남긴 방대한 메모와 저술들에서 확인된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따뜻한 날에는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기 위해 펜과 종이를 가지고 다녔다.심지어 말을 타고 산책하던 중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즉각 종잇조각에 기록한 뒤 겉옷에 핀을 꽂아 고정시키곤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메모지로 도배가 된 겉옷을 아내가 정리해주었다고 한다.또 날씨가 너무 추울 때면 외출 시 색깔이 다양한 천 조각들을 활용해 떠오른 발상들을 서로 정신적으로 연결시켰고, 집에 돌아와서 그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기록으로 남겼다.에드워즈의 기록들은 현재 예일 대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757년 한 편지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이 상당히 기록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읽고 묵상하고 대화하던 중 어느 중요한 시점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모든 중요한 통찰을 발전시켜 나갔다. 에드워즈에게 습관이 된 이 방법은, “이 길로 여행하면 할수록 더 많고 넓은 현장이 열린다는 걸 실제 경험하게 해주었다.이러한 말씀 묵상과 메모 습관은 에드워즈의 영적 분별력과 객관적 통찰력을 균형 있게 길러주는 주요 발판이었고, 결국 구속사와 같은 서밋의 작품을 탄생시킨 밑바탕이 되었다.

 

 

. 에드워즈 시대의 위협적 도전들

 

1. 계몽주의 사조에 의한 성경비평

조나단 에드워즈는 유럽 전역을 쓰나미처럼 강타한 계몽주의의 영적 배신현상에 크게 위협을 느꼈다.앞서 유럽의 ‘30년 전쟁같은 비극적인 종교전쟁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야말로 합리적 대안임을 공감하게 만들었고, 이는 계몽주의 시대를 꽃피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유럽의 지성인들은 교회가 지켜 온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탈피하고, 전통적인 권위에 얽매임 없는 열린 주체적 세계관, 자율적 인생관을 지향하는 데 열을 올렸다. 계몽주의를 표현하는 영어의 ‘Enlightenment’는 이성의 눈을 떠 밝게 보게 한다는 뜻의 용어라면, 독일어의 ‘Aufklärung’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사고나 세계관을 청산하고 사물을 새롭게 인식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이제 새로운 철학 사조는 종교적 광기를 거부하고 이성의 시대로 나아갈 참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철학, 정치, 사회, 과학, 신학,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이성적 요소들에 도전하며 지성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간다.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당시 유럽학계는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의 교리주의를 멀리하고, 대신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세속적 정서를 선택한 지성인들의 비공식적인 조직망이었다. 이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적과 종교의 차이를 초월해 상호간에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진리탐구에 대한 보편적 의식을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7세기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문화의 세속화는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일으킨 가장 강력한 도구들은 새롭게 정립된 근대 과학과 철학이었다. 이것은 기존의 사상과 틀을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역사적 방법론으로 나아갔다.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를 토대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성경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특히,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합리주의 사조를 강화시킨 스피노자(Spinoza, 1632-1677)는 수학적 인식이 불가능한 성경을 모순투성이라 확신하였다. 성경 속 이적의 믿음은 미신의 잔재이고, 이성적 지식의 결핍을 의미했다. 그에게 종교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영리한 자에게는 철학과 과학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했다.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을 부정했고, 특히, 구약은 단지 인간을 순종적으로 길들이기 위한 교훈서에 불과한 것이었다. 성경은 개인성을 말살시키고, 인간을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성경의 일부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은 역사비평 신학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부 개혁주의자,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스피노자는 조직적인 성경비평의 토대를 놓았다. 그는 모세가 오경의 저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는데, 이후의 자료비평은 스피노자의 전제 아래 출발한다. 또 일부 구약 예언서 단락들 간에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로써 기존의 예언서들에서 단락들을 선별해 취합했기 때문이라 추정했다. 예언서에 대한 스피노자의 이론 자체보다는 그의 비평적 태도가 역사비평 신학자들에게 그대로 흡수된다. 특히, 다니엘서를 다니엘이 단지 8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만 기록했다고 주장한 이래 다니엘서는 줄곧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가 네 번이나 기록되게 하실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사복음서에도 의혹을 제기하였다. 급기야, 예수의 부활 사건이 사도들이 지어낸 일화에 불과하다며 부활의 역사성마저 부인하기에 이른다. 이는 불트만이 부활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보다 250년이나 앞선 부정이었다.이러한 계몽주의 사조에 편승된 역사비평 신학은, 결국 성경을 비판하는 인본주의 학문으로 전락해버린다. 성경 비평주의는 교회를 더 세속화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진보적 지성인들에게 해방의 통로를 열어주었으며, 성경의 복음적 진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탄은 구원의 복음을 계시하는 유일한 원천인 성경에 대한 근본적 불신앙을 퍼트리는 데 당대의 탁월한 지성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영적서밋, 기능서밋, 문화서밋이 참으로 요청되는 시점이었다.

 

2. 자유의지를 강조한 아르미니우스주의

고언(Goen)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분명히 지배적인 분위기로 뉴잉글랜드에 유행했음을 입증한다.에드워즈는 구속사24번째 설교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해 경고한다. 그에 의하면, 영국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찰스 1세 때 국교회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대부분 칼빈주의자였던 국교회 신학자들이 거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로 전락하였다. 이 사상은 비국교도 사이에도 크게 만연하여 영국뿐 아니라 뉴잉글랜드에서도 크게 기승을 부린다.영국 국교회가 완화된 형태로 어느 정도 이단이 아닌 정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18세기에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넓게 퍼지게 된 것이다. 미국혁명 이전에 뉴잉글랜드에는 이신론자들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훨씬 많았다. 당시 뉴잉글랜드 상황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란 철저한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다양하게 벗어난 입장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명칭이었다. 특히, 에드워즈는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의 의지 개념이 전체 아르미니우스주의 체계를 꿰뚫는 핵심 개념으로 파악했다.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이신론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전환점으로 여기며 경계했다.에드워즈 역시 균형잡힌 부흥론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원리로 기울어지는 것은 곧 이신론자가 되는 지름길임을 일깨우며 자신들의 체계를 포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경고하였다.

1700년대 초반 이미 개혁주의 회중교회 진영에서 내부적인 신학적 변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보스턴의 찰스 촌시(Charles Chauncy, 1705-1787)처럼 소동을 일으킨 뉴잉글랜드 신학자들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간은……자기 의지의 자유로운 동의가 아니고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자유로운 동의는 이성과 설득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이것은 뉴잉글랜드 신학이 계몽주의 시대정신에 휘말려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변절사건이 1722년 예일 대학에서 일어난다. 당시 학장 티모시 커틀러(Timothy Cutler, 1684-1765)를 포함해 일곱 명의 교수들이 회중교회를 떠나 영국 국교회로 공개 전향해버린 사건이다. 당시 뉴잉글랜드 공동체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아르미니우스주의 구원관을 수용하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대각성 전야의 뉴잉글랜드 교회들은 옛 청교도 선조들이 탈출했던 영국 국교회처럼 신앙이 혼합되어 있었다. 신앙생활은 선한 일을 하라는 식의 도덕적 설교와 교인들의 자기만족으로 특징지어졌다. 복음적 신앙 회복을 위한 새로운 종교개혁이 요청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었다. 글루스터의 존 화이트(John White) 목사에 따르면, 어떤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중요한 신앙고백을 반대하고 거기서 이탈하여 아르미니우스주의 체계에 추파를 던지고 그것을 수용하며, 최대한 그것을 변증하고 전파하며 설교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1733-1734년 이슈화 된 로버트 브레크(Robert Breck, 1713-1784) 사태는 뉴잉글랜드 교회들을 두렵게 만든 아르미니우스주의로 인한 큰 소동의 또 다른 예였다.브레크는 스프링필드의 한 회중교회에서 안수 받은 젊은 목회자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개진했다.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불필요하므로 자연의 빛만 따르면 구원 받을 수 있고, 성경의 일부 구절들은 오염됐으며, 예정론은 인간의 책임성을 약화시킨다고 하였다.한편, 이후 불거진 대부흥 논쟁 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부흥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부흥 반대세력의 대표적 지도자 촌시는 논쟁 당시 이미 자유주의적이고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옛빛파’(Old Light)에 속했는데, 훗날 미국 유니테리언의 선구자가 된다.1750년 에드워즈의 노샘프턴 교회 목사직 사임으로 일단락된 성찬 논쟁의 배후에도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영향이 작용했다. 당시 목사 해임을 승인하는 교회운영위원회에 속한 네 다섯 사람원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는 소문이 있었고, 에드워즈를 반대하는 데 앞장 선 이들이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빠진 것으로 판단되었다.에드워즈는 고별설교에서도 이미 크게 확산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경계시키면서, 특히 젊은 세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마음을 잘 지킬 것을 강하게 권고하였다.에드워즈에게 있어, 뉴잉글랜드 차세대들의 신앙과 세계관에 침투한 아르미니우스주의 영향은 매우 심각한 실제적 위협이었다.

 

3. 계시와 섭리를 부정한 이신론

계몽주의 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은 이성적인 종교이신론(Deism)을 적극 환영했다. 이신론자들은 기존의 칼빈주의 기독교를 반대하고 조롱했다.이신론의 근원지 영국에서 존 톨란드(John Toland, 1670-1722)신비하지 않은 기독교(Christianity Not Mysterious, 1696)를 출판한다. 복음서에는 이성을 초월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며 철저한 합리주의를 주장했다. 매튜 틴들(Matthew Tindal, 1657-1733)이 쓴 창조만큼 오래된 기독교(Christianity as Old as the Creation, 1730)는 이신론자들의 바이블이었다.피터 안네트(Peter Annet, 1693-1769)는 무모하고 파괴적인 성서비평을 사용해 기독교를 공격했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이성의 시대(Age of Reason, 1794-1796)는 가장 공격적인 반()기독교적 이신론의 대명사가 되었다.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이신론자의 대가로 신의 존재와 단순한 도덕성에 그 본질이 있는 원시 자연종교를 지지했고,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에 근거한 모든 것을 거부하며 프랑스혁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매사추세츠의 목사 에벤에젤 게이(Ebenezer Gay, 1696-1787)와 조나단 메이휴(Jonathan Mayhew, 1720-1766)가 합리적인 초자연주의를 지향했었다면,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과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본질적인 이신론자들이었다.

영국 문화에 깊이 침투한 자연종교 지지자들은 계시가 없어도 도덕적 노력보편적 자연법칙을 통해 누구든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전통적으로 청교도들이 성경을 이성적 권위의 최종적인 근원으로 삼아왔다면, 급진적 계몽주의자들은 그 권위를 이신론적 저술들로 대치하였다.기독교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창조만큼 오래된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 계시 가운데 애매하거나 이성을 초월한 모든 것은 미신적이고 무가치하거나 해로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신론자들은 계시종교가 겉으로 보기에 비합리적인인 개념들을 신비의 범주로 포장했다고 조롱하며 이성종교를 추구했다.계몽주의 신학은 계시에 근거한 교리를 무시함으로써, 특히 원죄, 사탄, 지옥, 속죄 및 칭의 등 구원과 관계된 복음적 진리를 부정하게 된다.이신론자들은 한낱 자연종교의 부산물에 불과한 성경을, 참되고 필연적이며 충분한 진리의 수단으로 보는 태도를 폐기해야 한다고 보았다.그들은 정치, 사회, 법 등 유럽 기독교문명을 형성하는 데 근거가 된 성경의 종교적, 도덕적, 역사적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작업에 골몰했다.이신론자를 위시한 회의론자들은, 특히 성경의 사회적 권위를 저해하기 위해 성경 비평주의 결과물을 민첩하게 활용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의 이신론은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당시 주요 사상가들은 역사에서 신학을 분리시키고자 했다.이전 시대의 지성인들은 신적 행위를 역사적 사건들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여겼다.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세계에서도 역사는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원천이었고 하나님의 활동 현장이었다. ‘역사를 하나님이 주인공으로 일하시는 섭리의 질서로 이해한 것이다.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제창한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에 이어 갈릴레이와 뉴턴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하나님의 지적설계를 영혼 없는 기계운동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섭리의 개념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도록 눈을 열어주었다.즉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뉴턴의 세계관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뉴턴의 세계관은 곧 하나님이 자연법칙과 같은 제2원인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인격적 간섭이 불필요하게 보였다. 자연의 놀라운 조정 능력에 맡겨두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결국, 이신론의 하나님은 인격적, 역사적 섭리와 무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고립되고 만다. “역사의 자전적 능력을 인정하고 역사에서 신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시켜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구속사를 비롯해 에드워즈의 주요 저작들은 바로 이런 시대적 도전을 겨냥한 작품들이었다.

 

 

. 에드워즈의 구속사에 대한 이해

 

1. 신학적 비전으로서의 구속사

영혼에서 일어나는 구속 사역의 인격적 적용은 개혁주의 청교도의 전통적 주제였다.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는 그의 신학의 정수(Medulla theologica, 1623)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강조한 바 있다.구속 사역은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도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이자 가장 본질적 관심사였다.구원 활동(the work of salvation)과 구속 사역(the Work of Redemption)”은 동일한 개념이다.그런데 구속사의 초점은 구속 사역의 인격적 적용보다는 구속 사역의 거시적, 역사적 전개의 서술에 있다. 먼저, 이사야 518 단일 본문에 근거해 구속 사역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 세상 끝 날까지 수행하시는 활동이라는 교리를 세운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와 교회사를 크게 세 시기로 구별하여 30회에 걸친 연속설교를 통해 구속 사역을 역사적으로 실증(實證)해나간다. 이 작품은 창조로부터 시작해 이스라엘의 역사와 에드워즈 당대까지 다룬 뒤, 마지막 때 성취될 만물의 회복으로 마무리 된다.구속 사역은 그리스도의 모든 직분이 직접 향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인격들이 협력하며, 그것에 속한 다양한 모든 과정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기계에 달린 여러 개의 바퀴처럼 하나의 목적을 이루고, 하나의 결과를 일으키기 위한 오직 하나의 계획이다.에드워즈는 연속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노샘프턴의 부흥 역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역사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연결된 하나의 조각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인도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구속사적 파노라마를 관망할 수 있는 영적 고지로 이끌어 준 것이다. 성도들이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길 원했다.

17393월에 행한 첫 번째 구속사 설교에는 구속 사역의 다섯 가지 목적이 제시된다. 그 첫 번째 목적은 사탄과 모든 원수에 대한 승리에 있다. 사탄이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짓밟히는 일이 벌어졌다.”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3:15), “마귀의 일을 멸하려하셨기에 사탄의 모든 목적은 좌절될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다(요일3:8).두 번째는 택하심 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타락의 모든 파괴에서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구속 사역은 인간의 영혼을 회심시켜 죽음에서 생명으로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성화에 이르게 하고, 그것이 영광 속에서 완전히 회복되도록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 것처럼 모든 것을 회복시킨다.세 번째 목적은 하늘과 땅에서 택하심 받은 모든 피조물을 한 머리 아래에서 한 몸으로 연합시켜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계복음화를 위한 공동체를 이루려 함이다.네 번째로는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택하심 받은 모든 자들의 영광을 완성하고 완전케 하실 목적을 갖고 계신다.마지막으로,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높이 이루시기로 계획하셨다.이 다섯 가지 목적 실현을 위한 정해진 수단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었다.

구속사에는 에드워즈의 신학적 비전이 담겨 있다. ‘구속사라는 주제는 에드워즈 전체 신학을 관통하는 관점이자, 사상적 통합을 이루는 구심점이다. 구속 사역에 대한 묵상은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173178,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항한 보스턴 공개강좌의 제목은 구속 사역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이었다. 이때 자신의 성숙한 신학적 사유 속에 이미 구속 사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함을 보여주었다.구속 사역에 대한 강조는 목회 사역 초기부터 확립된 신학적 이정표였다. 신학묵상록전반에 걸쳐 구속 사역을 하나님의 가장 중대한 활동으로 보는 세부 주제들이 반복된다.한편, 1739년 구속사 연속설교 이후 휫필드의 방문과 더불어 일어난 부흥운동에 대해, 에드워즈는 구속 사역의 현재 진행형으로 해석하였다. 연속설교에서 선포한 광대한 신학적 비전이 자신의 현실 속에서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균형잡힌 부흥론에서도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역사로 인식한다.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서는 부흥운동을 둘러싼 논쟁의 균형자, 변증자로 적극 활약한다. 에드워즈는 대부흥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의 전조이자, 그리스도의 왕국을 실현시키는 구속사의 절정에 이르게 할 표지로 기대하였다.사실, 사후에 출판된 구속사는 말년에 논문으로 발전시키려 했던 대작의 원형이자 본질적 축소판이었다.그렇지만 구속사 연속설교 원본에 대한 탁월한 연구자 윌슨 킴나흐(Wilson Kimnach)는 연속설교 그 자체로 완비된 하나의 프로젝트였음을 주장한다.에드워즈가 1,000편 이상의 설교 원고들 위에 구속을 상징하는 표시를 수백 군데 해 둔 것은 말년에 집대성하고자 했던 구속사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분류 작업이었던 것이다.이는 에드워즈가 그토록 꿈꾸던 역사의 형식으로 표현될 완전히 새로운 신학의 체계가 실제로 진행 중이었음을 의미한다.하지만 때 이른 소천으로 인해 그 대작은 미완으로 남겨졌다.

 

2. 모형론과 언약에 기초한 구속사

에드워즈의 구속사는 모형론적 성경해석과 청교도의 언약사상에 바탕을 두었다.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다중적인 성경해석을 반대하고,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해석을 강조하였다.그런데 스위스 2세대 개혁자들은 문자적 해석을 견지하면서도, 구약성경의 모형론적 해석을 지지했다. 베자(Beza, 1519-1605)는 다윗을 그리스도의 형상과 그림자로 보았다.블링거(Bullinger, 1504-1575)는 다니엘서 2, 마태복음 24, 누가복음 21장 등의 묵시적 구절들이 자신의 시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한 것으로 여겼다. 계시록은 종말을 보여주는 드라마였다.뉴잉글랜드 신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제네바의 조직신학자 프랜시스 투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은 메시아에 대한 점진적 계시를 강조했다. 16-17세기 스위스 개혁신학자들은 중세교회의 풍유적 해석 대신 구약성경의 사건과 인물들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모형론적 해석을 취했다. 위대한 원형인 그리스도께서 모형의 약속들을 성취하셨다.이러한 모형론적 해석은 하나님의 구원 계시로서의 성경의 통일성을 크게 뒷받침했다.

에드워즈 역시 개혁주의 청교도 전통 아래 모형론적 해석을 적용하고 발전시켰다. 물론 특별히 신중함을 요구했다. “적절치 않은 상상력이 동원되어서는 안 되고, “신약성경을 통해 그 의미가 잘 드러난 경우가 아니라면 그 해석을 일반적으로 단정지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에드워즈는 모든 모형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또한 반대로 역사적 근거 없이 모든 것을 모형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사이에 균형을 잡으려 했다.다음은 에드워즈 모형론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기록된 거의 모든 것이 복음의 모형이다. 사람들은 모형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행동은 모형적인 행동이며, 도시들은 모형적인 도시들이다. 유대 나라와 다른 나라는 모형적인 나라다. 땅은 모형적인 땅이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모형이 되는 섭리며, 그들의 예배는 모형적인 예배며, 그들의 집은 모형적인 집이며, 재판관도 모형적인 재판관이며, 옷은 모형적인 옷이며, 진실로 세상은 모형적인 세상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에드워즈의 모형론은 무엇보다도 복음에 그 초점이 향한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복음으로 가득 차있는데, 단지 차이점은 구약이 가려진 복음이라면 신약은 드러난 복음이다.그리스도의 탁월하심”(The Excellency of Christ)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짜여 있음을 명확히 밝힌다.성경 저자들이 펜을 휘두른 모든 곳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이 드러났다.에드워즈 역시 그리스도와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모형론적 해석을 시도했다. 크게 그리스도의 모형을 세 가지 종류로 제시했는데, 희생제사로 대표되는 기관 모형과 출애굽 구원 사건으로 대표되는 섭리 모형그리고 다윗으로 대표되는 인물 모형이 바로 그 예들이다.또한 에드워즈에 의하면, 중생한 마음의 감각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원형으로 삼고 성경의 사례들을 활용하여 구속사적 모형론을 확장시켜 나간다.다시 말해, 자연 만물과 인간의 역사, 동시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에드워즈의 일관된 모형론적 해석은 분명 성경의 절대권위를 부정하는 시대 분위기에 역행하는 대담한 시도였다.

또한, 구속사는 본질적으로 성경과 더불어 청교도 언약사상에 구조적으로 뿌리내려 있다. 에드워즈의 칼빈주의 작정 교리는 언약신학에 기초한 것이었다. 구속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협의에 의한 구속언약에서 시작된다.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영원한 구속언약에 속해 있는 다양한 과정이며, “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그 언약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된다.인간에게 주어진 창세기 315은 도저히 깨뜨릴 수 없는 치료불능의 흑암이 들어온 이후에 선포된 은혜언약에 대한 첫 번째 계시이자, “복음의 빛이 처음으로 비친 여명이었다.그 당시 이신론이 성육신의 필요성에 의혹을 제기할 때, 에드워즈는 그리스도가 피조물의 특성을 입고 성육신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역설했다. 즉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담이 실패한 행위언약을 누군가 반드시 이행해야만 했다.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타락과 폐허의 무대인 동일한 세상이 또한 하나님의 구속의 무대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당연하고 필연적이며 절대적인 사건이었다.

한편, 에드워즈는 토마스 보스턴(Thomas Boston, 1676-1732)의 이중언약 체계를 공유하다가, 1733년 이후로 은혜언약이 구속언약과 구별되는 삼중언약 체계로 전환한다. 이것은 구속언약의 역사적 펼쳐짐에 대한 에드워즈의 증대되는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었다.구속 사역을 하나님의 모든 섭리 사역들의 본질적 방향이자 목적임을 확신했기에, 구속 사역의 성취를 실제 확인할 수 있는 역사가 그에게 매우 중요해졌다. 하지만 보스턴의 언약 개념에는 역사적 요소가 현저히 부재했다.구속사에 대한 초점은 에드워즈로 하여금 영원한 구속언약의 구체적인 역사적 성취, 곧 은혜언약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증거들을 수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구속사와 여러 저술들에는 하나님과 성경 인물들 사이에 역사적으로 성취된 언약들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증거들이 많이 나타난다. 은혜언약 없는 구속언약은 돌팔이 교리라는 보그(Bogue)의 지적은 언약의 역사성을 추적한 에드워즈의 강조점을 시사해준다.물론 보스턴이 영원한 구속언약의 이행”(administration)을 언급하긴 했지만 역사적인 언약들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따라서 상대적으로 역사적 요소가 부재한 보스턴의 언약 체계에서 에드워즈가 느낀 갈증은 구속언약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그의 증대되는 관심사를 반증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언약 이해의 관점 변화는 본질적으로 구속사의 섭리를 드러내려는 에드워즈의 목적과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3. 역사적 섭리를 입증하는 구속사

역사를 에드워즈 사상의 총체적 핵심으로 보는 학자들은 주로 현대적 관점에서 에드워즈를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에드워즈의 개혁주의 역사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목적을 전제한다. 거룩한 역사와 세속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어떻게 상호침투 하는지, 어떻게 역사가 성경적 진리를 입증하는지를 의도한다.구속사는 이 목적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다. 구속사는 역사를 성경적, 세계사적 전망에서 통시적으로 이해하는 분별력을 길러주기 위해 계획된 광범위한 역사 서술이다.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크게 세 시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독자가 추적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신구약 성경의 사건들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성경적으로 확립된 구속사의 패턴을 따라 교회사의 흐름을 서술하면서 성경 예언들과 일치하는 종말론을 지향한다.구속사는 특정 국가나 민족의 역사를 초월해 인류 전체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를 담아내려 한다.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역사적 섭리의 강줄기들이 최종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무한한 대양”(infinite ocean)이시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기 의지적인 경영”(arbitrary operation)은 개별 성도의 삶과 전체 구속사 과정 모두에 적용된다.세상의 왕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역사를 운행해 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곧 세상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신 그 분이 해 오셨고, 성령을 통해 계속 해 가실 것이었다.

에드워즈의 구속사를 자세히 고찰해보면 크게 네 가지 섭리의 흐름이 나타난다, 사탄의 끈질긴 방해, 교회의 궁극적 보존, 성령의 반복적 역사, 복음의 지속적 전파로 요약된다. 첫 번째 흐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진행되는 여정 가운데 사탄의 방해가 계속 된다. 인간의 타락, 네피림과 바벨탑 사건, 바로의 학대, 골리앗과 사울 왕의 위협, 반복된 우상숭배, 포로 생활, 사마리아인의 훼방, 제국들의 박해, 유대인의 핍박, 적그리스도로 묘사된 중세 교황과 이슬람 제국, 그리고 아리우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 소시니우스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 이신론 등 각종 이단들의 공격이 이에 해당한다. 에드워즈 역사관의 특징은 하나님 또는 사탄의 역사라고 보는 신학적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한다는 점이다.두 번째 흐름은, 성경과 교회사를 볼 때 수많은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는 말씀 성취에 근거한 확신으로교회의 불멸성”(the indefectibility of the church)을 역사적으로 입증해 보여준다.오히려 교회가 연약해 보일수록 남은 자”(a remnant)에 대해 지속되는 보존의 섭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순교자의 피는 성도들의 씨앗이었다.

구속사 섭리의 세 번째 특징으로, 구속사는 성경과 교회사의 흐름 가운데 교회의 대개혁과 복음 전파, 회심 및 영혼 구원 등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크게 부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의 왕국 실현과 종말에 이르기까지 비상한 성령의 역사가 계속될 이어질 것을 확신한다. 뉴잉글랜드의 부흥이 바로 그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을 통해 부흥운동의 과격파와 반대파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다. 또 부흥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저술된 기도합주회도 실현될 그리스도의 왕국을 기대하며 성령의 부어주심을 두고 전 세계적인 기도운동을 위한 에드워즈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작품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흐름은, 구속사가 지속적인 복음 전파 및 언약의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계시록에 대한 초기 메모부터 에드워즈는 복음의 확장을 구속 사역의 중심에 두었다. 최초로 계시된 복음(3:15)은 성경과 교회사를 관통해 종말에 이르러 완전히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이었다.부흥의 역사는 복음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였다. 뉴잉글랜드의 부흥은 구속사의 한 화려한 시기에 해당했다. 구속 사역은 종말에 이를수록 앞 시기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역사로 성취될 것이었다.이것은 에드워즈가 세계적인 기도운동과 선교운동에 그토록 마음을 쏟았던 이유를 뒷받침해준다.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와 통합된 에드워즈의 인식은 구속사신학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에도 적용되었다. 당시 펼쳐진 세계사의 드라마를 매우 민감하게 관찰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구속 사역의 성취 가운데 펼쳐지는 영적사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했다.한 예로, 당시 적그리스도로 인식된 가톨릭 진영의 쇠퇴를 암시하는 사건들을 자세히 추적했다.가톨릭 진영의 스페인군, 프랑스군 및 그 동맹국들과 영국 및 뉴잉글랜드 사이에 벌어지는 패권전쟁은 식민지 쟁탈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는 곧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지는 영적전쟁처럼 보였다.에드워즈는 복음의 확장을 시사해주는 정치적 징후들을 발견하여 긍정적인 면을 기록했다. 그는 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 어떤 명확한 선을 긋지 않았다. 전쟁이나 주지사 임명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과 휫필드의 순회전도, 세계적인 대각성운동, 인디언 선교 및 기도합주회, 심지어 딸 제루샤의 죽음까지도 모두 구속사적 섭리 속에 통합되어 있었다. 에드워즈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 전체한 위대한 구속 사역으로 환원될 수 있었다.단편적이고 다채로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통치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것은 이신론적 역사관에 의해 철저히 배제된 하나님의 섭리 교리에 더욱 더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개혁주의적 관점이었다.

 

 

. 나가는 말: 시대 흐름에 대응한 서밋의 작품

 

지금까지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가 복음적 개혁주의를 무너뜨리는 당대의 사상적 흐름 바꾸기 위해 의도된 작품임을 살펴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루터의 3대 논문,칼빈의 기독교강요(Institution of the Christian Religion)같은 저술들은 모두 각자의 시대 상황에서 복음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대응한 서밋의 작품들이었다. 에드워즈의 구속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복음적 교리들이 쇠퇴하는 요즘과 같은 때에 그런 흐름을 몰아내려는 담대한 시도를 함으로써, 인쇄기가 오로지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공개 비난하는 책들만 찍어내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노먼 피어링(Norman Fiering)은 당대의 위협적인 사상들과 씨름했던 에드워즈의 영적싸움을 이렇게 요약한다.

 

17세기 후반 도덕 철학자들은 기독교 전통의 핵심적인 부분을 세속적이고 자연주의적 개념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어떤 의미에서 당대의 윤리 철학을 완전히 소화해서 다시 기독교적 사고와 경험의 언어로 변환시킴으로써 진행되던 흐름을 역전시켰다……영국 계몽주의 사상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에드워즈의 목적은 당대 최고의 사상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구속사의 진면목은, 무엇보다 18세기 시대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관찰 속에서 역으로 드러났다. 에드워즈 당시 계몽주의에 편승한 역사비평 사조는 성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이신론과 같은 당대 유행하던 신학은 이성적 인간의 자유의지와 독립성을 강조하며, 성경의 계시성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섭리를 부정하였다. 구속사는 그 당시 개혁주의 교회들이 직면한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에드워즈의 민감한 반응이었다. 본래 더 체계적인 논문으로 기획되던 광대한 신학적 비전으로서, 평생의 신학적 이정표이자 사상적 구심점이었다. 에드워즈의 모형론적 성경해석과 언약 사상은 구속사 전개를 위한 신학적 틀을 제공했고, 성경의 통일성을 지지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구속사에 나타난 역사적 섭리의 일관된 흐름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합리주의를 초월하는 주권자 하나님의 자기의지적인 경영으로서의 신적 섭리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섭리의 확신은 당시 암울한 상황에 처한 교회에 큰 위로를 주었다. 구속사는 개혁주의의 파수꾼이 됨으로써, 뉴잉글랜드 대부흥운동의 촉매제로 작용하였고, 19세기 평신도와 대중설교자들에게 거의 필수적인 칼빈주의 신학의 입문서로 각광받으며,세계 선교의 위대한 세기를 여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끝으로, 에드워즈의 구속사21세기 세계복음화를 위해 부름 받은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에드워즈는 18세기 초중반에 소용돌이치던 역사적, 사상적 변화의 흐름 속에 무엇인가 잘못 되어가는 것을 감지하고 그 흐름을 바꾸는 데 시대적 소명을 느낀 개혁파 청교도의 남은 자였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회와 복음의 본질이 상실되어 가는 시대적 위기 속에 복음 전도자로 부름 받은 남은 자들이다. 유럽 교회는 크게 쇠퇴하였고, 미국 교회도 급격히 세속화 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물질주의와 교권주의의 덫에 걸려 풍랑 만난 배와 같이 끊임없는 분쟁과 분열에 휩싸이며 요동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종교다원주의에 편승한 종교연합운동이 가시화되고, 특히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다른 복음들이 현장에 소용돌이 치고 있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의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학에 이제 퀴어신학까지 가세하고 있다. 더욱이 이 시대의 종교적, 사상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유대인, 프리메이슨(Freemason), 뉴에이지(New Age) 운동과 같은 인본주의 세력들은, 성경의 네피림과 바벨탑 시대처럼 거대한 구조적 영적문제와 시대적 재앙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때에,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길 원하시는 서밋의 작품은 무엇일까. 에드워즈의 구속사와 같이, 그것은 분명 이 시대의 흐름을 멸망에서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오직 복음운동, 전도운동일 것이다. 현장을 살리는 전도신학의 정립이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신학적 천명, 소명, 사명(天命, 召命, 司命)임에 틀림없다.

참 고 문 헌

 

 

김동주.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용인: 킹덤북스, 2014.

 

김영재. 기독교 교회사. 수원: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2013.

 

류광수. 2018930. 산업선교. “세 가지 세리머니.”

 

류광수. 2018920. 70인 제자. “중직자의 언약의 여정.”

 

류광수. 2018920. 전략회의. “제목없음.”

 

류광수. 2018821. 70인 제자. “중직자의 실천 목록표.”

 

류광수. 2018821. 전도제자. “가지고 전할 것.”

 

류광수. 201898. 산업선교. “렘넌트 신학원.”

 

류광수. 201891. 핵심훈련. “언약의 확증.”

 

류광수. 201891. 산업선교. “중요성을 아는 자.”

 

류광수. 201891. 중남미(파나마)전도집회. 1“First Chance,” 3“Everlasting Chance.”

 

류광수. 2018825. 산업선교. “영적서밋 자격 가진 자.”

 

류광수. 2018818. 산업선교. “산업인이 받을 응답.”

 

류광수. 2018819. 핵심훈련. “렘넌트에게 내려야 할 각인, 뿌리, 체질.”

 

류광수. 2018815. 세계청년수련회. 1눈에 안 보이는 것들,” 2눈에 보이는 것들.”

 

류광수. 2018814. 여전도회연합회수련회. 2받을 응답(축복).”

 

류광수. 201886. PK수련회. 1“PK(MK)의 치유와 서밋,” 2“PK(MK)의 미션.”

 

류광수. 201887. 2기 서밋스쿨 특강. “서밋의 조건.”

 

류광수. 2018614. 렘넌트사역자교사세미나. 2렘넌트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기회.”

 

류광수. 2018129. 세계대학수련회. 현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Zone-Point.”

 

손성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시대와 구속사 함의.” 생명과말씀20 (2018): 42-71.

 

이상현. 조나단 에드워즈의 철학적 신학. 노영상 · 장경철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

 

Ames, William. 신학의 정수. 서원모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2.

 

Battles, Ford Lewis. “서론.” 1536년 초판 기독교강요, 21-44. 양낙흥 역. 파주: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Brown, Robert E. “성경.” 이상현 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180-202.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Edwards, Jonathan. 기도합주회. 정성욱 · 황혁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Edwards.구속사. 김귀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Edwards. 균형잡힌 부흥론.부흥론, 385-501. 양낙흥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Edwards.놀라운 회심 이야기,” 부흥론, 양낙흥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198.

 

Edwards.심판 날 다시 만날, 분쟁하는 목사와 교인들,” 조나단 에드워즈 대표설교선집, 백금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362-363.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점검. 조계광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7.

 

Eusden, John Dykstra. “서론.” 신학의 정수, 14-98. 서원모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2.

 

Goen, C. C. “편집자 서문.” 부흥론, 17-134. 양낙흥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Guelzo, Allen C. “의지의 자유.” 이상현 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226-250.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Knowles, David. “해제.” 하나님의 도성, 51-80. 조호연 · 김종흡 역. 파주: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Linnemann, Eta.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 송 다니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Lohse, Bernhard. 루터 연구 입문. 이형기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3.

 

Marsden, George M.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한동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McClymond, Michael J. & McDermott, Gerald R.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 임요한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Stout, Harry 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중적 세계관.” D. G. Hart, Sean Michael Lucas, & Stephen J. Nichols ,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 39-70. 장호익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Sweeney, Douglas A.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씀사역. 김철규 역. 서울: 복 있는 사람, 2014.

 

Thuesen, Peter J. “에드워즈의 지적 배경.” 이상현 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60-88.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Walker, Williston. 기독교회사. 송인설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4.

 

Wilson, John F. “역사.” 이상현 편,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 386- 409.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8.

 

Wilson, John F. “편집자 서문.” 구속사, 13-149. 김귀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Bogue, Karl W. Jonathan Edwards and the Covenant of Grace. Eugen, Oregon: Wipe & Stock, 2008.

 

Edwards, Jonathan. Apocalyptic Writings.Edited by Stephen J. Stei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5.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7.

 

Edwards. “A Faithful Narrative.” In The Great Awakening.Edited by C. C. Goe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4.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2.

 

Edwards.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Edited by John F. Wilso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9.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9.

 

Edwards. Freedom of the Will. Edited by Paul Ramsey.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7.

 

Edwards. Letters and Personal Writings. Edited by George S. Claghor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16.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8.

 

Edwards. “No. 362.” In The Miscellanies(Entry Nos. a-z, aa-zz, 1-500). Edited by Thomas A. Schafer.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13.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4.

 

Edwards. “No. 702.” In The Miscellanies(Entry Nos. 501-832). Edited by Ava Chamberlai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18.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0.

 

Edwards. “Some Thoughts Concerning the Revival.” In The Great Awakening. Edited by C. C. Goe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4.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2.

 

Edwards. The Blank Bible.Edited by Stephen J. Stein.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4.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6.

 

Edwards. “The Importance and Advantage of a Thorough Knowledge of Divine Truth(1739),” In The Sermons of Jonathan Edwards: A Reader. Edited by Wilson H. Kimnach, Kenneth P. Minkema & Douglas A. Sweene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9.

 

Edwards. “Types.” In Typological Writings. Edited by Wallace E. Anderson, Mason I. Lowance, JR, & David H. Watters.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11.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3.

 

Fiering, Norman. Jonathan Edwards’ Moral Thought and Its British Context.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1.

 

Frahm, Sara Ann. The Cross and The Compass: Freemasonry and Religious Tolerance in Mexico (Bloomington: Palibrio LLC, 2014), 9.

 

Gay, Peter. A Loss of Mastery: Puritan Historians in Colonial Ame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6.

 

Hall, David D. “Editors’ Introduction.” In Ecclesiastical Writings.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12, 1-90.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4.

 

Knijff, Cornelis van der & Vlastuin, Willem van. “Why Edwards Did Not Understand Thomas Boston: A Comparison of Their Views on the Covenants.” Jonathan Edwards Studiesvol. 5, no. 1 (2015): 44-57.

 

McDermott, Gerald R. Jonathan Edwards Confronts the Gods: Christian Theology, Enlightenment Religion, and Non-Christian Faith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iller, Perry. Jonathan Edwards. Lincol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2005.

 

Sweeney, Douglas A. “Editors’ Introduction.” In The Miscellanies(Entry Nos. 1153-1360).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23, 1-36.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4.

 

Thuesen, Peter J. “Editors’ Introduction.” In Catalogues of Books,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vol. 26.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8. 

이전글 | 고신, "뉴스앤조이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 언론"
다음글 | "신천지 이만희 , CCC 와해 시도했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