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왜곡하는 14가지 오류

하워드 A. 스나이더(Howard A. Snyder) 교수

2021-05-05 21:33:27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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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A.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미국의 저명한 선교 신학자이다.  그가 지적한 복음을 왜곡하는 14가지 오류 유형 내용을 일부만 편집한 것이다.

 

1. 복음을 주로 로마서를 통해서만 설명하는 오류

바울을 포함하여 성경 저자들은 우리에게 성경 전체를 공부하고 성경을 그 전체의 관점에서 해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로마서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로 보는 완고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은 고통을 당한다 (나의 글 “Misplacing Romans (로마서 잘못 읽기)”를 참고하라).

 

2. “개인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류

성경은 사적이고 이기적인 의미에서의 개인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많은 방법과 많은 비유를 통하여 모든 것의 화해를 가르친다 (1, 1). 그리고 심판 역시 가르친다.

 

3. 하늘만 목적으로 삼는 오류

사람들은 하늘에 가는 것을 구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과 초대교회 신조들은 하늘로 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 전체의 궁극적 구원에 초점을 두지, 우주적으로 땅과 하늘이 영원히 분리될 것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4. 성직자와 평신도를 분리시키는 오류

이 방법은 교회에 불법의 비밀이 침범해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표징 중 하나이다. 사탄은 단지 우리에게 아주 소수만 (그리고 주로 특별한 종류의 남성들만) “사역으로 부르셨다고 납득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교회의 유효한 능력을 90%나 감소시켜버린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라는 편견은 교회 안의 다른 어떤 편견보다 교회를 약화시킨다. 이 편견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성경적 교리와 성령의 은사들과 모든 성도들을 디아코니아(사역과 봉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소명을 지속적으로 파괴한다.

 

5. 경제와 정치 문제는 복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

경제와 정치를 복음에서 분리시키고, 그것들을 제자도와 상관 없는 문제로 만드는 것은 비성경적 이원론이다. 복음은 경제적, 정치적 실체이며, 따라서 교회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와 정치가 복음의 빛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아주 포괄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6. 공동체를 경시하는 오류

신약성경 저자들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그리스도의 몸, 즉 우리가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또 서로에게 참여하는 공동체를 중시하였다. 공동체가 성경적 코이노니아로서의 나눔에 덜 진실할수록, 교리적 논쟁이 더 중시되고, 교회는 공동체가 아닌 다른 것에 강조점을 둔다. 이것이 내가 왕의 공동체 (Community of the King)및 다른 책들에서 공동체를 주제로 많이 다루는 이유이다.

 

7. 구약을 무시하는 오류

두 가지 가장 일반적인 실수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관점을 무시하는 것과, 신약이 구약의 모든 중요한 진리들에 영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는 잘못된 통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 예로, “약속된 땅천국이나 어떤 내적인 영적 체험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주 성경의 역사적 맥락이나 성경 자체의 의미와 전혀 동떨어진 영적인 사실들을 억지로 구약 속에서 찾으려 하게 된다.

 

8. 공의(justice)를 개인적 의(personal righteousness)로 제한하는 오류

시가서, 예언서, 율법서, 지혜서로서 구약 성경은 끊임없이 공의와 개인적인 의를 동일한 종합적 실재의 양면으로 다룬다. 정의와 개인적인 의가 얼마나 자주 짝을 이루는지, 그리고 그 둘이 성경에서 얼마나 상호교환적으로 사용되는지 살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자주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와 개인적인 의를 분리시켰다. 예를 들어, 의가 개인적 도덕성을 의미한다면, 정의는 하나님께서 대속이나 심판을 통해 직접 다루시는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비성경적이다.

 

9. 중보기도를 경시하는 오류

나는 성경에서 모세, 다윗, 선지자들, ,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와 모범 및 서신서들에서 기도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나와 교회가 일반적으로 중보기도라는 중요한 사역을 경시해왔음을 확신하게 된다. 기도의 신비와 성령을 통한 하나님 백성들의 지속적인 중보기도는, 우리 자신이 당면한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나라와 백성과 종교들 간의 관계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자주 그렇게 해왔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10. 제자는 되지 말고 신자만 되라고 강조하는 오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이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 나라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게 하신다. 신약은 신자들이라는 말을 아주 드물게 사용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형제들또는 그들같은 말 대신에 신자들로 번역함으로써 성경적 용어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의 수가 아닌 제자들의 수, 그리고 제자를 만드는 사역이다.

 

11. 천국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체하게 만들라는 오류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주권, 사랑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태복음에서의 하늘 나라하나님 나라를 달리 표현한 것임을 알았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와 분리될 수도 없는 교회와의 신비한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이고, 천상적이면서 지상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고, 순간적면서 점진적이고, 내적이면서 외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12. 신앙을 단지 삶의 일부분으로 축소 또는 삶과 구분하는 오류

우리는 일상적 삶과 신앙적 삶과 구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은 우리의 삶 전체에서 작은 일부분이 되도록 축소시킨다. 그리고 그 작은 일부분마저도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감당하라. 성경은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큰 것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복음에 따르면, 신앙은 궁극적 실재가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우리의 전 존재로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항상 그러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사랑은 믿음으로 가능케 되어서, 소망 즉 하나님께서 창조 전체를 온전히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확신에 의해 힘을 얻는다.

 

13. 창세기 9장을 무시하는 오류

언약혹은 계약신학을 다루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신학들은 거의 언제나 (3:15절을 잠깐 언급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부터 다룬다. 하지만, 성경에서 명백한 첫 번째 언약은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세상과의 언약”(9:13)을 맺으시는 데서 발견된다. 분명히 반복되고 강조되는 점은, 이 언약은 모든 사람들 및 모든 살아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과의 언약이라는 것이다. 만약 구원에 대한 이해가 창세기 3장에서 12장으로 바로 뛰어넘어버린다면, 우리는 창조 질서에 대한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놓치게 될 것이고, 성경 속에 있는 다른 모든 가르침도 왜곡하게 될 것이다.

 

14. 제자도를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돌봄과 상관없는 것이 되게 하는 오류

우리가 창조 질서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무시하거나 왜곡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성경이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축소시키게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손해이다. 우리는 교회를 메마르게 만들고,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지나치게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게 되고, 선교의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제자도와 창조의 돌봄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교회는 인내와 겸손 속에서 견고한 진을 파할 정도로” (고후10:4) 강해질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복음을 왜곡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초점을 옮겨 복음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게 되면 문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뒤튼다, 왜곡한다, 구부린다, 침식한다, 중화한다, 약하게 한다, 취소한다, 꺾어버린다 등 어떤 동사를 사용하든, 문제는 지속될 것이고, 주의 깊게 성경에 기초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제자도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신약성경 속에서 제자들이 복음 왜곡의 문제와 분투했음을 본다. 그러나,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할 때까지”(11:9) 하나님의 성령은 여전히 능력 있게 그리고 신기하게 일하시고, 여전히 약속을 성취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모든 진리” (16:13)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한편, 하워드 A.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하워드 스나이더 교수는 노트르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목회하다 브라질에서 1968-1975년 선교사로 사역했고, 1996년부터 10년간 애즈베리신학교 세계선교대학원에서 선교학 교수로 가르쳤으며, 2007-2012년 토론토 틴데일 신학대학원에서 웨슬리 연구학부 특별석좌교수로 재직했다교회의 본질과 사명 그리고 선교 전략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하였다. 노트르담 대학교의 교수였던 존 하워드 요더 박사의 지도하에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의 교회 갱신 패턴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천국의 선언,그리스도의 공동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생명의말씀사),성령의 표적(나단) 등이 있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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