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스며있는 페미니즘
현숙경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목 차>-------------------------------------------------------
I. 들어가면서
II.
1.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취지 및 배경
2. 건강가정기본법이 수호하는 가족제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3. 건강가정기본법에 반대하는 여성학계의 주장
4.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통한 가부장제
해체 시도
III.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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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면서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각각 2020년 9월과 2020년 11월에 건강가정기본법률안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남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제시된 발의의 필요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건강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 두 번째,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예방”하며 세 번째,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가족”의 정의규정, “태아의 건강보장” 표현(제8조 제2항), 그리고 가족해체 예방 규정(제9조)이 삭제되었다. 이 법안이 “가정”의 건강성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법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위의 개정의 목적과 삭제된 규정은 얼핏 보기에도 보편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위의 개정안 발의 목적의 내용이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 처음 제정 당시 여성학계가 반대하는 이유의 논지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2003년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남의원은 “가족해체 방지 및 건강가정 육성 지원을 위한 공청회”의 토론자로 건강가정기본법 제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인물 중 한 명으로서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남의원을 비롯한 당시 여성주의 활동가들은 국회의원의 권한으로 그 때와 동일한 여성 중심적 관점으로 기본법 전면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들의 집요한 노력의 저변에는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족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있는데 이는 급진 페미니즘 사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논고는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및 개정을 둘러싸고 있는 급진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내용은 1)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취지 및 배경, 2) 건강가정기본법이 수호하는 가족제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사상 분석, 3) 건강가정기본법에 반대하는 여성학계의 주장, 그리고 4)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통한 페미니스트들의 가정 해체 시도이다.
II.
1.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취지 및 배경
건강가정기본법의 법제화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혼으로 인한 결혼 해체의 급증과 출산율의 급락, 가족갈등 악화, 가정폭력 증가, IMF 경제위기와 맞물려 신용불량 가계 부채의 증가로 인한 가족해체, 급속한 노령화로 인한 부양부담의 증가 등 많은 가족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무자녀 가정이 증가하고 독신가구 혹은 만혼이 증가하며 여성 취업의 증가로 인한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 등 가족의 환경이 급변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대응의 필요성의 일환으로 가정 관련 법이 제정되었다(이재경, 2004; 송혜림 외, 2005; 정민자, 2003; 차선자, 2004). 대한가정학회를 비롯한 여러 가정학회 및 시민단체가 2003년 8월 공동 발표한 「건강가정육성기본법 제정의 취지와 필요성」이란 제목의 건강가정육성기본법 제정촉구 성명서에 가족위기에 대한 우려가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한국의 가정은 총체적인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이혼율 증가, 자녀 및 노부모 유기, 출산율 감소 등 가족해체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가정폭력의 만연, 미혼모 및 청소년의 일탈 증가, 신용불량자 증가와 가정경제의 파탄 등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가정의 기능약화와 이로 인한 사회문제 증가는 더 이상 좌시될 수 없으며,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마련과 가정의 건강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법 제정이 절실히 요청된다(대한가정학회, 2003).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단위로 제정된 최초의 종합적인 기본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다보니 이 법안의 제정 과정은 범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의 개념과 방향성에 대한 이념 차이로 가정학계와 여성학계 및 사회복지학계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김혜경, 2005). 우선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정학계의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한 “건강가정육성기본법(안)”이 2003년 7월 21일 보건복지부 안으로 발의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 법안으로 사회복지학계와 여성학계가 주도적으로 제안한 “가족지원기본법(안)”이 2003년 8월 22일 김홍신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이 두 법안은 보건복지상임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어 심사를 거친 후 두 법안 중 “건강가정육성법(안)”이 선택되었고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명칭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2004년 2월 9일 제정 공포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여성학계는 페미니즘 이념에 기반한 가정관련 법안인 “평등가족기본법안”을 여성부의 후원으로 2003년 6월 발의한 바도 있다. 이 법안은 남성의 가부장적 의식과 여성의 평등욕구의 충돌문제와 취업여성의 역할분담 등 여성중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법안 내용의 방향과 취지가 건강가정기본법의 제정 취지 및 내용과 매우 상이하였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또한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이후 추진 담당부서의 이관 과정에도 갈등이 있었다. 2001년 여성부가 새롭게 신설되었으나 2005년 여성가족부로 이름이 바뀌어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던 건강가정기본법과 모부자복지법 및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 받아 통합적인 가족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미 “건강가정기본법”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여성부가 가족정책을 떠맡게 되자 당시 여성부 및 여성학계의 불만은 매우 컸다. 문현아는 여성가족부로의 이름 변경에 대해 “혹시 ‘여성+가족’이 ‘남성+사회’에 대한 대칭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의 질문을 던지며 여성을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묶어두는 것에 맞서 싸워온 상황에서 이 두 개념과 명칭의 통합을 매우 거북하게 생각한다면서 “오히려 여성‘사회’부, 여성‘노동’부가 더 적절하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2005:19).
2. 건강가정기본법이 수호하는 가족제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성명서의 제목인 「여성주의적 관점이 결여된 가족관련 기본법 제정을 반대한다」(2003.11.27.)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페미니스트들은 건강가정기본법의 규정과 방향이 페미니즘적 관점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건강가정기본법 반대에 대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논거를 자세히 살펴보면 건강가정기본법에 명시된 가족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으며 가족의 정의규정의 근간이 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03).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가족중심주의,” “가족이기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이성애중심 가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인 가정에 대한 중요성 및 가정 회복의 필요성 인식을 폄하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이고 있으며 현재 발의된 개정안에는 “건강가정” 용어 및 “가족”이라는 정의규정 자체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원인은 무엇인가.
페미니즘 관점에서 가족 제도란 여성들이 타파해야 할 가부장제의 근원지이다. 즉, 가족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 및 착취하고 남성권력을 강화시키는 장소이다. 혼인과 출산, 그리고 자녀양육이라는 조합을 통해 가부장제는 유지 및 강화되며 여성은 그 가족이라는 제도 내에서 도구와 매개로서 전락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논리에 의하면 이러한 가부장제는 타파되어야 하며 여성들은 가부장제를 지탱해주는 가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정을 유지시키는 혼인, 출산, 모성애, 자녀양육 등 여성을 옭아매는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하여 남성들과 같은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부장제 타파의 움직임은 60년대 미국에 등장한 급진 페미니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 서구의 급진 페미니즘과 가부장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경제비판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페미니즘은 자본주의가 남녀의 성별분리를 고착화하는 가족 제도를 강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었으며 이와 함께 여성은 사적 영역에 배치되어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였고 남성은 생계 부양자가 되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한다. 이로써 경제는 남성이 주도권을 갖게 되고 재산관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가정에서의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고 독점되었다(엥겔스, 2012: 282).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가부장제라 명명하며 60년대부터 이에 대항하는 여성운동을 활발히 펼치며 가정에서의 해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2)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정립한 서구의 대표 페미니스트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정립하여 여성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대표 페미니스트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인물로 가부장제 이론 정립의 뿌리 역할을 한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voire, 1908-1986)를 들 수 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및 사회주의자였던 보부아르는 여성주의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제 2의 성』(The Second Sex)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One is not born, but rather becomes a woman)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2019: 상 392). 그녀에 의하면 여성은 타고난 정체성이 없으며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이 사회에 성은 오로지 하나, 남성밖에 없으며 여성은 부수적인 존재, “타자,” 혹은 책 제목에서 명명하듯이 “제 2의 성”(2019: 상 281)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은 진정 여성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며 그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해방과 자유는 가부장제의 근원인 결혼의 굴레에서의 해방이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서의 해방이며, 직장으로의 탈출이며 궁극적으로 성의 해방이다(2019: 하 521). 가부장제에서의 여성의 억압을 비판하며 이로부터의 해방을 외친 그녀의 주장은 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급진 페미니즘의 초석이 되었다.
가부장제를 통한 여성의 억압에 대한 보부아르의 주장에 불씨를 지핀 미국의 초기 급진여성 운동가가 있는데 바로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이다. 진보적 활동가 겸 기자로 생활하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가정주부로 살면서 삶의 회의를 느끼던 프리단은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중산층 가정주부들의 좌절과 불만을 대변하는 책인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1963)에서 그녀는 “가정은 안락한 포로수용소”(1963: 2)라고 명명하며 여성들에게 가정에서의 탈출을 촉구했으며 그녀도 이혼을 통해 가정에서의 해방을 몸소 실천했다. 그녀의 출판은 급진 여성주의 운동을 확산시켰으며 이혼 후 미국 최대의 여성단체인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혹은 NOW)를 포함한 굵직한 여성단체들을 창립해 낙태권, 출산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의 남녀평등 운동을 펼치면서 여성의 교육, 취업뿐 아니라 여성을 위한 법률과 제도를 개선하는데 앞장섰다. 그녀의 반가족(anti-family) 운동은 7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면서 많은 여성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대표적인 급진 여성주의 이론가로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이 있다.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1969)에서 밀렛은 여성억압의 뿌리는 가부장제의 성 및 성별 체계에 깊이 박혀있다고 주장하며 가부장제 개념을 확고히 다졌다. 또한 생물학적인 성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여성 관계는 권력과 지배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며 사적인 영역이었던 성을 정치적 영역으로 공론화 시켰다. 그녀는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에 의한 남성 지배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가부장제 하에서 구성된 성적 지위, 역할 및 기질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Millett, 1969).
네 번째 대표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성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Sex)의 저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엥겔스의 계급제도와 프로이드 성 담론을 재해석하면서 “성 계급제도”가 다른 경제적 분열보다도 더 깊이 존재한다면서 "혁명이 기본적인 사회 조직, 즉 권력의 심리를 항상 밀수할 수 있는 혈통인 생물학적 가족을 뿌리뽑지 않는 한, 착취의 촌충은 결코 전멸하지 않을 것"(Firestone, 1970: 12)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노골적으로 가족의 해체를 외쳤다. 또한 임신은 결국 여성은 생물학적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갇히게 하는 장치로서 여성에게 억압과 지옥과 같은 삶을 준다고 믿은 그녀는 “임신은 야만적이다”(Firestone, 1970: 198)라고 비판하며 남성들과 동등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의 압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이러한 혁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녀가 추구한 최종 목표는 “성별 차이 자체를 없애는 것”(Firestone, 1970: 11)이다.
60년대 급진적인 여성해방운동은 가정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 운동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1960대에는 1000 커플 중 2.2 커플이 이혼을 했으나 1969년 무책 이혼법의 통과를 기점으로 이혼이 급증하여 1980년대 1000 커플 당 5 커플이 이혼하였는데 이는 60년대에 비해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이다(Ortiz-Ospina, 2020). 또한 혼인율은 1970년대 1000명 중 10.6명대에서 2018년 6.5명으로 감소했고(Curtin and Sutton, 2020, 4) 출산율은 1957년 3.7명대에서 80년대에 1.84명대로 하락했으며(Hamilton, Brady E., 2020, 20) 비혼과 동거의 증가(Gurrentz, 2018)와 함께 미혼모가 급증(Mclanahan and Jencks, 2015)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또한 미혼모의 증가는 사회문제로 직결되었는데 연구 결과 미혼모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이 청소년 살인의 72%, 강간의 60%, 십대 출산의 70%, 자살의 70%, 고등학교 중퇴의 70%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며(Fix, 2017), 이 이외에도 미혼모의 자녀들은 낮은 자존감, 무단결석, 갱단 가입, 약물 남용, 노숙자(출가 아동의 90%는 아버지가 없음), 40배 더 높은 성적 학대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Schlafly, 2016: 26).
결국 급진 페미니즘으로 인해 가족=가부장제라는 공식, 즉 가족은 여성의 억압과 착취의 근원지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가족에 대한 개념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또한 가정에서의 해방, 성의 해방, 출산으로부터의 해방, 직장으로의 탈출을 통한 가부장제 타파의 외침은 결국 수많은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했으며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했다. 가부장제 타파를 위해 가정의 해체를 외치던 70년대의 초기 여성운동가들의 급진적인 행태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가족=가부장제의 공식은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되었고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혼인, 출산, 모성애, 자녀양육을 여성억압의 주요 요소로 간주하며 전통적인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기존의 가족계획정책에서 ‘가족’이 중심에 서고 주체로서의 여성은 국가의 도구적이고 의무적인 존재에 가려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여성은 여전히 가족 내의 존재, ‘결혼해야 하는 존재’로만 조망되고 있다”는 문현아(2005: 24)의 불만 섞인 주장은 가족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왜곡된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가정 내의 문제를 가족 구성원 중심이 아닌 여성중심적인 관점(남녀의 결과적인 평등, 가부장제에 반하는 가족의 형태 환영 등)으로만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는데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여성학계의 비판 및 현 개정안에서의 여성주의적 관점 관철 시도 역시 페미니즘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건강가정기본법에 반대하는 여성학계의 주장
서구의 급진 페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 여성학계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가족정책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하고 있으며 건강가정기본법은 결국 가부장제를 강화시키는 법안으로서 가정을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건강가정”은 결국 가부장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변화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개념인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을 둘러싼 여성주의적 비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 위기 담론”을 조장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가정학계는 저출산과 이혼율의 급증으로 상징되는 가족의 급격한 변화를 심각한 “가족의 위기”로 진단했다(정민자 2003). 이러한 가족 해체 현상은 가정의 사회문제 여과장치로서의 기능 상실을 의미하며 가족윤리와 문화계승 약화로 인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의 약화를 의미한다. 한편,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가족의 위기”란 급변하는 사회현상으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여성주의적 관점이 결여된 가족관련 기본법 제정을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성명서에서 가족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보면 가족의 위기는 남성중심의 가족주의에 대한 위기이며,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가족 가치관의 변화로 여성이 돌봄 노동을 더 이상 담당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기능이 약화된 것이므로, 가족기능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한국여성단체연합, 2003).
즉, 그들이 말하는 가족의 위기는 남성중심적 가족의 와해인데 이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가부장제를 타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즉.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로 인한 가족 내에서의 역할의 변화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와해를 가져오고, 이로써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현 상황을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로 여기며 이걸 기회삼아 새로운 가족개념을 모색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저출산과 이혼으로 인한 전형적인 가족 내의 변화를 가부장제 해체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대한 사회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윤홍식, 266).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04년에 “가족위기? 가족변화? 가족개념의 발상전환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통해서 가부장적 제도를 타파하는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구했다. 토론회의 논지는 현재의 가족은 위기가 아닌 변화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며 변화하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가족개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재경, 2004). 이재경도 동일하게 가족의 위기를 가부장제 강화와 연결시키면서 “저출산에 대한 ‘위기 담론’ 자체가 여성들의 변화에 대한 가부장적 저항”(2004, 237)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생계 부양자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노동시장구조, 문화적 상징적 여건, 가부장적 가족을 지지하는 호주제, 성별영역분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각종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가족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2004, 241).
현재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가정의 해체현상을 위기, 혹은 “문제”로 여기지 않는 여성주의적 관점은 최근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의 제1조(목적)에 명확히 드러난다.
<표 1>
현 행 |
개 정 안 |
건강가정기본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건강한 가정생활의 영위와 가족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한국민의 권리, 의무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가정문제의 적절한 해결방안을 강구하며가족구성원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강화함으로써 건강가정 구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가족정책기본법 제1조(목적) --------가족에 대한 국민의 권리, 의무 및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정하고 가족정책에 관한 기본사항을 정함으로써 가족구성원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 |
현행법은 이혼과 가정해체와 같은 “가정문제의 적절한 해결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가족의 유지 및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반면에 개정안에서는 현행법의 가정문제 및 해결방안 모색과 관련된 내용을 전면 삭제하고 단순히 “가족구성원의 복지증진”을 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분명 가정의 와해 현상을 “해체” 혹은 “위기”로 간주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며 그렇기에 이를 위한 해결책 모색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개정안의 제1조(목적)의 전면 개정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의 목적과 방향성의 근본적인 재설정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를 기반으로 한 세부 조항들 역시 가정의 와해현상과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개정 및 삭제되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표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정안에서는 혼인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을 명시하는 조항(제8조 1항)과 “태아의 건강보장”(제8조 2항)이 완전 삭제되었는데 저출산 및 이혼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현상을 위기로 여기지 않는 여성주의적인 발상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 제8조에서는 “혼인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 및 “책임”을 국민, 국가 및 지방자체단체가 함께 인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반면에 개정안에서는 이 조항을 전면 삭제하였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혼인과 출산은 가부장제를 견고히 하는 제도로서 국가가 국민에게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강요성 짙은 요구는 국가가 가부장제를 이용하여 여성을 관리 및 억압하려는 의도로 이해하기 때문에 삭제했다고 볼 수 있다.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책임의식인 것인데 이를 국가에 의해 부당하게 지워진 의무라고 여기는 태도 자체가 매우 이기적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과 의무는 간과하며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주의적 사고는 제5조 3항에 명확히 드러나는데 국가에 대한 개인의 책임은 외면한 채 “출산과 육아”를 “사회적 책임”으로만 돌리며 이에 대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는 요구사항만 포함시켰다. 국가가 건강하고 안정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줌과 동시에 개인이 국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자 노력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제9조 1항(<표 2>)의 “가족해체 예방” 조항이 전면 삭제되었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족해체를 전혀 사회적 문제로 인지하고 있지 않는 여성주의적 사고가 녹아들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가족의 해체란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변화인 것인데 가부장제를 실현하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제적으로 공권력을 행세하여 강요할 수 없다고 여기기에 삭제했다고 볼 수 있다(김인숙, 2007: 262). 같은 맥락에서 현행법 제31조의 “이혼예방 및 이혼가정지원” 표현이 개정안에서는 “이혼 전·후 가족 지원”으로 개정됐는데 이 부분 역시 가정문제의 큰 요소인 이혼에 대한 예방으로 인한 가정 회복의 필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주의적 관점에 근거한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표 2>
현 행 |
개 정 안 |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혼인과 출산) ①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②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모ㆍ부성권 보호 및 태아의 건강보장 등 적절한 출산ㆍ육아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
가족정책기본법 <삭 제> |
제9조(가족해체 예방) ①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도와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
<삭 제> |
(2) 건강가정과 비건강가정을 이분화시킴으로써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
페미니스트들은 또한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는 결국 건강가정과 비건강가정을 이분화시킴으로써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조은희, 2004; 남윤인순, 2003; 송다영, 2003; 김인숙, 2003a).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이혼과 출산율의 하락 등과 같은 가족의 위기 상황의 대안으로 사용한 점을 고려했을 때 건강가정은 결국 혼인과 출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서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규정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가족 해체”라고 명시함으로써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의 형태에서 벗어난 가정을 건강하지 못한 가정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비판한다(이재경, 2004: 345).
또한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출산율 하락과 이혼율의 증가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대한 위기로 드러나는 현상인 것이며,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의 가족의 정의규정을 무색하게 하는 현 사회적 상황이 발생하는 원인은 가족제도 자체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출산율 하락과 이혼율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는 가부장제 기반 가족제도를 “건강가정”이라는 명목으로 더욱 강화시킨다고 비판한다(이재경, 2004).
그러나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 “건강가정”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차별을 조장하는 어느 특정한 가정의 형태로서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그 동안 이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기능적 변화에 대해 가족 구성원이 보다 더 안정적이고 행복한, 즉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목적 하에 사용된 개념이다. 건강가정을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건강가정”에 대한 오해와 비판에 대응하며 건강가정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설파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언론을 통해서 “건강한 가정은 가부장 가정이 아니라고”(한겨레 2003.11.13.) 반박하며 “법 그 어디에도 정상가족 운운하며 특정한 가족을 명시한 바 없다”(서울신문 2004.5.25.)고 주장함으로써 건강가정의 개념에 대한 오해와 악의적인 왜곡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또한 송혜림도 비슷한 맥락 속에서 건강가정육성기본법 추진 당시 “건강가정에 대한 개념규정은 건강가정을 하나의 형태가 아닌 관점에 따라 정리”되었음을 명시하였고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는 가정의 건강성, 혹은 건강한 가정생활의 영위라는 용어와 동일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특정한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005, 181). 여기에서 명시되었듯이 건강한 가정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의 이분법적 발상에 근거한 “건강가정담론”에 대한 논의는 본래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않은 왜곡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건강가정”에 대한 편협한 주장 역시 가족제도 자체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이해하는 가족은 결국 전통적인, 성 불평등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족제도 내의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건강한 가정을 영위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모순적인 것이다(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3항).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이 타파하고자 하는 가족제도와 “건강”이라는 개념은 양립 불가능하며 이는 더더욱 가부장제에 포함되지 않는 비전형적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촉발할 뿐인 것이다.
4.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통한 가부장제 해체 시도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바라는 가부장제 해체를 위한 전략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남인순 의원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목적을 살펴보면 첫 번째,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예방하고, 두 번째,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목적은 가부장제를 타파하고자 하는 여성주의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위 목적을 바탕으로 개정안에 드러난 가부장제 타파 전략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 해 볼 수 있다.
(1) 가정 내의 성별 불평등 요소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가부장제를 타파하고자 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가족은 성별 분리를 고착화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부장제 타파의 일차적인 목표는 가정 내의 성차에 근거한 업무의 분담을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정안은 가정 내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만 접근하여 여성중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가정의 문제란 가정 내 역할분담에서의 불평등 문제, 여성의 양육 부담 과중,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의 문제 등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들로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발의된 개정안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고려한 것이 아닌 매우 여성편향적인 시각만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이기주의적 접근은 남 의원과 정의원의 개정안 제2조(기본이념)(<표 3>)에 잘 나타나있다.
<표 3>
현 행 |
개 정 안 |
제2조(기본이념) 가정은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통합을 위하여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발전되어야 한다. |
제2조(기본이념) 누구든지 가족의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며, 가족구성원이 서로 존중하고 부양·양육·가사노동 등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
현행법에서는 가정을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및 “사회통합”을 위해 존재하는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반면 개정안에서는 “차별받지 말아야 할” 공동체의 형태로서 접근하고 있으며 가족구성원 모두를 고려한 것이 아닌 여성 입장에서 “부양·양육·가사노동 등”에 남성의 참여를 요구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평등한” 형태의 공동체로서 그 존재의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제4조 2항의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를 “모든 국민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로 개정하려는 시도 이면에 역시 가정을 국가의 안정에 필수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닌 성별 불평등을 유발할 수 있는 근원지로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개정안은 가정의 건강성 혹은 복지증진이 목표가 아닌 성별 불평등 해소가 주된 목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제29조의 “건전한 가정의례” 표현을 “양성평등한 가족의례”로 개정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가족 구성원 전체를 고려한 것이 아닌 여성을 기준으로 한 완전한 양성평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여성계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가족 구성원 전원을 고려한 가정의 회복이 아닌 양성평등 실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또한 성별 불평등 문제와 관련하여 개정안에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라는 표현의 반복적 등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그들이 말하는 평등이란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 및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적인 평등이며 여성의 모성을 무시한 양육과 집안 업무의 평등한 분업이다. “성별 분업이 구조화된 ‘가부장적 결혼’을 포기할 때” 평등이 실현가능하다는 이재경의 주장이 내포하듯이 결국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하는 평등은 성별 차이를 무시한 절대적이고 결과적인 평등이며 이는 결국 성별에 의한 집안 업무의 분업이 완전히 해체될 때 가능한 것이다(2004, 237). 물론 어느 정도 가정 일을 분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성별 차이와 이로 인한 성별 역할의 차이를 무시한 절대적인 분업은 타고난 성별의 거부이며 여성의 모성애의 거부이며, 여성성의 거부이며, 궁극적으로 가정의 거부인 것이다.
(2)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적극 포용함으로써 가부장제를 타파하고자 한다.
여성계는 또한 가부장제에 기초하지 않은 생활공동체를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적극 포용하고자 한다(김인숙, 2003b). 가부장제에 기초하지 않는 공동체란 혼인+출산+양육의 조합 중 한 개 이상이 깨진 형태의 공동체라고도 볼 수 있다. 동거 커플, 재혼커플, 한부모 가족, 이미 자식이 있는 남녀의 재혼으로 이루어진 가족, 출산하지 않는 부부, 동성 커플, 비혼 가구, 비혼 출산 가구 등 혼인, 출산, 그리고 양육의 세 가지 조합 중 한 개 이상이 깨진 공동체 형태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제21조 9항 4호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한부모가족, 노인단독가정, 장애인가정, 미혼모가정, 공동생활가정, 자활공동체 등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가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가정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이미 마련이 되어 있다. 즉, 현행법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 대한 지원과 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형태의 가족까지를 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양성의 인정 및 존중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도덕적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가치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가정은 결국 사회에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질서, 도덕과 윤리를 유지하고 전승함으로써 사회의 안전망을 구축해 주고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 해주는 가장 기본 단위이다. 또한 가정은 사회의 유지를 위한 기본 요소를 넘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안정감과 소속감, 삶의 존재감, 자아 정체성을 심어주는 필수불가결한 공동체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형성함에 있어서 도덕적 규범을 간과한다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가정이 와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도덕적 규범은 가부장제를 유지 및 강화시키는 요소일 뿐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제 타파의 과정에서 도덕의 와해는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런 맥락 속에서 도덕성의 상실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명확히 나타나는데, 동거 커플, 동성 커플, 비혼 출산 가구 등 보편적 도덕규범에 어긋나는 공동체까지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하려고 한다. 이런 여성주의적 발상은 이번 개정안의 “가족” 개념규정 전면 삭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정에 대한 사회의 보호를 위해 제정된 기본법에서의 “가족”의 개념규정 삭제는 단순한 삭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기본질서와 도덕규범을 와해시키는 극단적인 변화의지의 표명이며 전통적 가정의 테두리를 와해시키고자하는 급진 여성주의 이념 실현의 표현인 것이다.
III. 나가면서
여성학계는 건강가정기본법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가정의 근본을 뿌리째 엎어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 평등을 내세우며 사회의 안정과 질서의 근간인 가정을 변질시키고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가능케 하는 도덕과 윤리적 규범을 와해시키고자 한다. 물론 사회가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필요한 부분은 조정해 나가되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사회의 보편 질서와 규범은 지켜야 할 것이다.
전통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수정 및 보완되어온 시대의 흐름을 초월하는 가치이며 지속적으로 전수되어야 할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전통을 기본적으로 유지함과 함께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가정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공동체는 수천 년간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사회 안정의 기본 단위로서 다음 세대에 전통적 가치와 이념을 전승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을 유지시켜 다음 세대에 전승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서로 부족한 개인들이 혼인과 혈연으로 엮여 만들어진 가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질서 안에서 우리는 사랑과 책임감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서로의 합의점을 찾으며 유지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공동체 내에서의 문제점을 무조건 계급적인 문제로, 혹은 성차별적인 문제로 접근해서 그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미명 하에 기본 질서의 근원을 파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기존 가족의 틀까지 와해시키면서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대한 법적 보호와 지원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가정기본법”은 법명에도 나타나듯이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법이지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한 법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가족정책기본법”이라는 명칭으로 법안개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페미니즘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개정시도를 보면 결코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개정안이라고 볼 수 없다. 사회가 무질서와 혼돈으로 치닫고 있는 이 때에 가정의 건강성과 중요성은 더욱 더 강조되어야 한다. 배려와 사랑, 헌신과 책임으로 안정감을 제공하고 보호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정이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며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방안으로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결코 편향적인 이념실현의 장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http://churchnlaw.or.kr/html/sub02-06.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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