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에 새벽별처럼 등장한 ‘위대한 이단자들’은 교회 조직체인 대회, 총회, 공의회가 오류를 저지르고, 실수하고, 범죄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교회는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 벌을 주기도 했다. 정통신앙인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목사직을 정직, 면직시켜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하지 못하게도 했다.”-본문 중에서-
이단 판별과 정죄 활동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진 과업이다. 복음변증과 진리보호 목적의 엄중한 직무이다. 양떼를 노략질하는 이리들을 막고, 교회가 구원의 방주다운 역할을 하게 하는 책무이다.
교회의 이단정죄와 판단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다. 동방교회는 서방교회를, 서방교회는 동방교회를 1054년에 이단으로 단죄했다. 서방교회는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진정한 의미의 교회로 인정하지 않고 이단시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세는 프로테스탄트교회보다 훨씬 우월하다. 이단 여부를 신도 수, 교세, 설립 우선순위, 힘의 논리로 접근하면 로마가톨릭교회가 정통이고, 프로테스탄트는 이단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과 행위의 최고 최종 표준이다. 성경과 진리성에 기초한 이단판별과 정죄만이 권위를 지닌다.
모범적인 기독인은 교회라는 조직체의 결정에 순종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결정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교회의 결정을 절대시하지 않는다. 교회의 결정이 항상 옳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교회(대회, 노회, 총회, 공의회 포함)가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있고 또 범해 왔음을 지적한다, 교회 조직체의 결정이 항상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며, 기독인의 신앙과 교회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이라고 한다.
“사도시대 이후 모든 총회(Synod)와 공의회(Council)는, 보편공의회이든 지역공의회든지 간에, 과오를 범할 수 있으며, 여러 번 과오를 범했다. 그러므로 교회회의의 결정을 신앙과 생활의 법칙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제31조 제4항)
독교 역사에 새벽별처럼 등장한 ‘위대한 이단자들’은 교회 조직체인 대회, 총회, 공의회가 오류를 저지르고, 실수하고, 범죄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교회는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 벌을 주기도 했다. 정통신앙인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목사직을 정직, 면직시켜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하지 못하게도 했다.
네덜란드개혁교회는 교회가 지르는 실수와 관련하여 교회헌장에 ‘자유’ 조항을 도입했다. 헌장 제31조는 교회가 성경이 가르침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무엇을 결정하고 시행을 요구 또는 강요할 때 교인은 그 결정과 굴레에 예속될 필요가 없음을 명시한다.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이 성경에 ‘명백하게’ 불일치하는 경우, 기독인은 그 결정에 복종할 필요가 없고,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개혁교회 해방파’ 또는 ‘자유파’(liberated)는 예장 고신의 자매교회이다.
교회헌장 재31조에 근거하여 194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로 출발했다. 통칭 “31조파”라고 일컬어진다.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 원칙’을 제시하면서 교회의 결정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표방한다.
다음과 같다.
“양심의 주재자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거나 탈선되는 사람이나 집단의 명령과 교리를 받지 않도록 하셨다. 누구든지 신앙에 관계되는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자의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아무도 침해하지 못한다”(정치원리 제1조).
“양심의 자유가 개인에게 있음과 같이, 어느 기독교회 또는 교회협회 또는 교파든지 교인의 입회 규칙과 세례교인과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와 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할 자유권이 있다”(정치원리 제2조).
이 땅에 있는 교회라는 조직체는 완전하지 않다. 허물, 실수, 오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조직체는 진리와 구원의 복음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순수한 말씀 곧 복음진리와 거룩한 성례를 지키는 울타리이다.
예수의 사도들은 이단을 꾸짖고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사도들은 개인자격이 아니라 교회 권위와 교회 지도자의 자격으로 이를 말한다. 사도들과 감독들은 교회라고 일컫는 예수신앙고백공동체의 대변자들이다. 교회의 이단판별과 정죄 활동은 사도적 직무의 일부이다.
기독인 개인이나 사설 단체의 이단판별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신학적 미숙함, 사적인 감정, 정치적 동기, 편견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의 사소한 잘못, 실수, 무지 등 한두 가지만을 부각시키는 축소주의, 환원주의(Reductionism) 오류에 취약하다.
개인의 미숙한 이단 판별은 신앙고백공동체의 갈등을 조장하고 파당을 부추길 수 있다. 교회라는 조직체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혼란으로 이끌고 믿음의 형제를 억울하게 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信認度)를 저하시킬 수 있다.
교회연합단체는 교회가 아니다. 보편교회와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단판별, 이단정죄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진 기본 과제이다.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기독교 단체가 모조리 이단정죄의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한 교회가 권위를 가진다. 교회의 판단과 결정은 그것이 성경과 진리성에 부합할 경우에만 호소력을 지닌다.
이단 판별의 주체는 교회 곧 신앙고백공동체이다. 교회는 외형적 조직체의 결정이 항상 옳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단 건을 포함한 교회의 결정이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하게” 불일치할 경우, 기독인은 그것에 속박 받지 않아도 무방하다. 교회의 결정보다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한국교회는 교파주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내 교회’의 유력한 신도들이 힘없는 ‘네 교회’로 가면 당장 ‘네 교회’에 대한 이단시비가 제기된다. 교파주의 체제는 매우 신중하고 정확한 이단판별과 정죄를 요구한다. 성경과 진리성에 근거한 교회의 진지한 이단판별과 정죄 활동이 요청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