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교회의 이단판단의 기준은 여러 가지이다. 정경, 외경, 전통, 종교회의 결정, 교황의 판단 등이다.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성경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이며, 신행의 최고의 규범이다. 바깥세계에서 인간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다. 성경은 이단 판별과 정죄의 기준이다. 이단들도 성경구절을 부지런히 인용한다.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과 일치한다고 한다. “성경대로 하는데, 왜 우리가 이단이냐” 하고 항변한다.
성경을 많이 인용 언급한다고 아무 주장이나 정통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 문자주의에 빠지면 시민사회를 해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출 22:18)는 지시에 따라 무당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가?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결과에 이른다.
본문 해석에는 언제나 선이해, 전제, 관점이 개입된다. 교회는 초기부터 상당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유대파 기독인과 헬라파 기독인 사이에 관습과 율법 이해의 차이가 존재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회 이해가 같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트교회 안에는 성경본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신학, 교리, 제도, 성례 등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전통이 있다.
기독교 안에는 어거스틴주의를 전수한 칼빈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를 재생시킨 아르미니우스주의가 공존한다. 두 유형의 구원론은 인간구원에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 가운데 어느 한 면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은 도르트총회(1618-1619)가 확인한 칼빈주의 5대 교리가 성경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을 지옥 갈 이단자로 여기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은 여러 가지 신학 주제들에 이견을 가지기도 한다. 교파, 교단들은 해석과 이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동일한 기독교 진리를 고백하고 있다.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경, 초대교회 공의회 신조들, 그리고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은 성경의 중추적인 교리들을 담고 있다.
정통신학과 교리를 떠받치는 두 기둥은 성경과 진리성이다. 하나님의 계시 진리와 그것에 기초한 인간의 합리적 이해이다. 이단 정죄의 기준인 성경은 인간의 합리적 해석을 요구한다.
성경과 독자의 눈 사이에는 2천년의 역사라는 프리즘이 있다. 인간은 자기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성경해석과 신학 작업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단판별에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해석 과정이 개입한다. 성경과 이성은 상호보완적으로 ‘성경적 기준’을 드러낸다. 그 결과가 교리 곧 성경적 진리이다. ‘성경적 진리’는 성경과 합리성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곳에 건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정통 교리는 성경에 대한 해석학적, 신학적 특성을 철저히 고려한 결과이다. 해석자의 심리, 문화, 사회적 여건, 역사적 정황, 사상적 전제가 다른 인문 분야보다 적게 미치는 영역이다. 전제 없는 본문 이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거나 교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은 오류이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항상 자기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정황과 관련을 갖고 영향을 받는다. 특별계시라는 신적인 영역 밖에는 인간이 무오(無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상상적 형이상학적 초역사적 또는 초인간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합리적으로 절대적이거나, 명제적으로 무오한 진리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이러한 까닭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해석학적 조건과 인간이해와 이성의 제한성을 이해할 것을 기대한다. 항상 배우고 겸허하게 진리의 확실성을 탐색하려는 노력을 요청한다.
이단자들은 지적 폭군들이다. 성경을 앞세우는 이단들의 우상성은 자파의 신념을 유일의 ‘성경적’ 견해로 여기며 절대화하는 경향이다. 건전타당성이 결여된 논리와 전제에 자기주장을 고정시키고, 거기서 유추된 상대적인 것을 진리로 확신한다. 왜곡, 편견, 실수를 비평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 성경본문을 자기의 선 이해에 밀어 넣거나 자기 전제에 맞추어 꿰맨다.
이단은 타성적으로 다루어오던 내용을 그릇된 방법과 형식 속에 집어넣어 판단한다. 자기들은 인간 인식의 한계와 관점의 다양성과 이해의 폭을 초월하는 듯한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 자기를 자연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모든 사고(思考)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릇된 전제와 해석의 결과를 말하면서도 “성경이 말하기를…” 또는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기독인은 성경을 해석하면서 부단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자기 비평적 태도를 유지한다. 논리성에 부합한 건전 타당한 본문 이해를 존중한다. 자기를 성령의 조명과 인도에 종속시킨다. 합리적 검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 그것에 따라 자기의 생각, 주장, 통찰을 기꺼이 교정한다.
정확한 이단판별 목적의 ‘한국교회신학자회의’(Council of Theologians)의 출범을 기대해 본다. 각 교단들이 파송한 12명 정도의 신학자들. 성경, 교리사, 신학, 논리, 인식론, 해석학의 전문가들로 구성한다.
신학자회의는 교회 안에 물의를 일으키는 ‘지적 폭군’같은 이단시비의 대상자들을 사랑으로 지도하고 그릇됨을 교정해 줄 수 있다. 단순 무지, 정치적 동기, 괘씸죄에 근거한 이단정죄를 배격할 수 있다. 정확도가 결여된 이단 판별과 이른바 ‘이단감별사들’에게 피해를 당한 형제들을 구출할 수 있다.
신학자회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제한이 없다고 말하는 개인과 단체를 이단이라고 판별할 수 있다.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5대 도리를 거부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를 배격하게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신앙의 순수성과 사회적 신인도(信認度)를 높일 수 있다. [마지막호 입니다.]
(사진: 최덕성 브니엘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