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의 50년 목회 '재조명' 필요성 제기

제22차 비평과 논단 신학포럼에서 제기돼

2016-04-22 12:17:55  인쇄하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에 대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조용기 목사가 한국교회사에 남긴 업적이 평가절하되고 있어 이에 대해 조용기 목사 50년 목회 사역을 바르게 재평가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있다 

▲ 비평과 논단 신학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조용기 목사 목회연구회)기독교개혁운동협의회가 주최하고 비평과논단이 주관한 제22차 비평과 논단 신학포럼이 21일 오후 2시 경기도 김포 복음주의총회 세미나실에서 교계신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발제자는 박수철 목사(기독교개혁운동협의회), 서영곤 박사(기독교리서치연구소장) 홍성표 목사(예명대학원대학교 교회사학 외래교수)가 연구발표를 하고 이후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날 포럼 주요 토론자들은 김창영 박사, 신창수 박사, 김재용 박사, 유흥옥 박사, 김경직 박사, 윤덕남 목사 강춘오 목사 한용관 목사 등이 참석했다 

첫 발제로 나선 박수철 목사(기독교개혁운동협의회)조용기 목사는 사랑의 목회자로서 오늘날과 같은 목회성장의 배경을 사랑 실천에 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 증거로 불광동 천막교회 시절에 술이 취해 똥통에 빠진 감나무골집 아저씨를 건져내어 씻겨주고, 최자실 목사는 그 집에 쌀을 가져다 밥을 해주고 돌봐 준 일, 중풍병자를 돌보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 등 병들고 가난한 자들 돌봤으며 서대문교회 시절에 어려운 학생들과 가정을 돌보기도 했다. 그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가 숙대 가정대학장 박미석학장이다. 라고 증언 했다 

여의도교회 시절, 조 목사는 교역자와 직원들의 모자란 생활비를 개인사비로 인당 평균 200 만원씩 50명에게 1억 정도를 지원했고 제자교회들에게 적게 5천만원에서 30억원까지 매년 수 회를 지원하는 등 매년 100억원 정도를 지원하는 등 그 밖에 수없는 도움들을 주었다. 또 선교지에 가면 봉투를 수십 개 준비했다가 선교사 사모들에게 주었다. 조 목사는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등 교파를 가리지 않고 어려운 목회자를 지원해왔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했다 

또 조용기 목사는 오직 선교의 일념으로 오늘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세계 600여 곳, 800여명 선교사가 조용기목사 선교철학에서 이루어졌고 그 가 세운 신학교가 미주 대륙은 물론이고 공산권과 아부 변방의 지역까지 세워져 있는등 조 목사는 선교신념으로 일관했다고 평가했다.

또 조용기 목사의 4차원 영성신학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집념의 결정체라고 평가 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영곤 박사(기독교리서치연구소장)교회 갱신 과제와 조용기 목사 리더십 재조명 필요성의 제안 중심으로제하의 발표에서 현재 조용기 목사 만큼의 영적 리더십 롤 모델이 없다고 전제하고 현재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계제로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하고 한국 교회의 생존과 재부흥을 위하여 우리 한국 교회 위에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과 강력한 영적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가장 부합하는 롤모델로서 조용기 원로목사가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생각한다. 조용기 목사의 영적 리더십과 성령운동 복구로 한국 교회 위상과 선교 복원력을 회복해야 한다. 조용기 목사의 영적 리더십을 재조명하여 배우고 그 DNA를 전수 해야할 것을 강조했다. 

서 박사는 조용기 목사 리더십의 원천을 영성(靈性)’ ‘강력한 소명(召命)’ ‘확고한 큰 비전(Vision)’ ‘희망의 리더’ ‘숭고한 야심(ambition)’ 이라고 평가하고 이러한 영적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한 남모르는 희생과 헌신, 그리고 아픔을 홀로 견뎌야 했음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말미에 현존하는 원로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라도 범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그 분의 50년 목회사역과 목회사상과 신학이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교회사에서 조 목사만큼 조국과 민족 그리고 한국 근대사회와 역사 발전의 여정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고단한 삶을 달래준 영향력 있었던 주의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홍성표 목사(기장, 예명대학원대학교 교회사학 외래교수)한국 교회사의 관점에서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을 평가하고 한국교회의 제1기 성령운동은 1907년의 길선주 목사(평양 장대현교회), 2기는 신유의 역사를 이룩한 김익두 목사, 3기의 성령운동은 (1930~ 1945)으로 이용도 목사, 4기 성령운동(1945~1960) 주역은 이성봉 목사라고 전제하고 제5(l960~)1960년대 이후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의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 상실과 물질적 빈곤, 사회문화적 정치 경제적 소외, 육체적 질병으로 신음하는 민중이 근대화와 산업화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구조악의 빈곤의 악순환에 있었을 때, 그들은 다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기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성령운동이 일어났다. 그 하나는 조용기 목사의 실존적 성령운동과 민중신학자들의 사회, 정치, 경제사적 성령운동이다 

조 목사의 실존적 성령운동은 민중의 실존과 생존의 요구에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영과 육, 물질의 전인적 삼박자 축복과 종말론적(Eschatology) 희망의 메시지를 통한 민중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집단적 부흥회식 실존적 성령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사회적 성령운동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메시지를 통한 민중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사회구조악을 제거하여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고 역사적 평가를 했다 

서박사는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을 종교 문화사적, 사회문화사적 , 토착화론 측면에서 기여한 측면을 평가하고 영산의 삼충 축복의 한계를 실존적 구원에만 머물고 사회적 구원을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타협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회정의 구현에 대한 복음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교회의 성장과 전도의 열정은 과히 전무한 전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편승한 성장에만 그치고 진정한 인간의 변화와 역사적 변혁을 실천하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점을 보완한다면 영산의 성령운동의 미래는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복음의 구원을 이룰 수 있고 이러한 복음의 통합은 한국 교회 미래에 대한 희망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윤광식 기자 (kidokilbo@daum.net)

 

이전글 | 조용기 목사의 ‘영성 리더십’ 제조명
다음글 | '안식교 이단아닌 복음주의 기독교"로 평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