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열전(3)/ 인도의 전도자 ‘썬다 싱Sunder Singh’(1889~1929) "

2013-02-03 23:16:08  인쇄하기


위인을 인정하지 않은 세대는 위인을 배출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교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 앞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도전을 보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20세기에 ‘인도복음선교회’를 창설하고 줄곧 이 단체를 이끌었던 데오도르 윌리엄스(Dr. Theodore Williams, 1935~2009) 목사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10인의 개척 선교사의 이야기를 엮어 소책자 『십자가의 종』(Servants Of The Cross)을 펴냈으며, 이 책은 지금도 인도에서 청소년 신앙 교육 자료로 크게 호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선교사 10인의 삶을 우리말로 옮겨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썬다 싱은 눈 덮인 산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추위는 그의 얇은 옷을 꿰뚫었고 가시와 돌은 그의 맨발에 상처를 내었다. 흰 눈 위에는 핏자국이 남았다. 그는 상처를 싸매기 위해 앉았다. 그를 따라 걷는 사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썬다 싱은 대답했다. “놀라우신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행복합니다.”“왜 맨발로 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까?”“갈보리에서 발에 피 흘리신 그리스도에게 사람들이 주목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썬다 싱은 자신을 위해 고난 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를 알지 못한 ‘티베트’ 같은 나라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소년기
사두후 썬다 싱’으로 알려진 썬다 싱은 1889년 9월 3일에 푼얍, 람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시크(sikhs)교도 신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매우 독실했다. 어머니는 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신(god)에게 영적 양식과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 후 아침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머니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가 종교를 사랑하고 거룩한 ‘성인’(Sadhu)이 되기를 원했다. 어릴 적에 썬다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Bhagavad-Gita)를 읽기 시작했고 7세 때 암기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썬다는 다양한 경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그는 시크교의 『그란스』(Granth)와 힌두교의 고전인 『베다』(Vedas), 그리고 무슬림의 『코란』에 심취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남
썬다는 마을에 있는 미션스쿨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썬다는 성경을 찢었고 반기독교 학생 대표가 되었다. 결국 그는 미션스쿨을 떠나 국립학교에 들어갔고 기독교인들을 끊임없이 비웃었다. 가끔은 공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 돌과 진흙을 던지고 공개 석상에서 성경을 소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반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비참해졌다.
그렇게 큰 낙심에 빠져있던 썬다는 기도를 시작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에게 당신을 나타내주소서, 나에게 구원의 길을 나타내어 주시고 평안을 허락하여 주소서.”갑자기 그는 방안에서 빛을 보았고, 그 빛 속에서 그가 미워했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분은 못 자국이 난 손을 썬다에게 보이며 말했다.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너의 구세주니라.”그 순간 썬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참 평안을 맛보게 됐다. 그 이후로 그는 변화됐다. 그 누구도 그의 영광스런 체험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고난으로 부름 받음
이러한 체험을 한 썬다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아버지와 가족은 썬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부유한 그의 삼촌은 썬다를 그의 저택으로 데려가 많은 돈과 귀금속을 보여주며 “만약 네가 새로 가진 신앙을 포기 한다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말하며 개종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많은 돈과 보석이 썬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집에서 쫓겨났고 매일 나무 아래서 추운 밤을 지새웠다. 나중에 그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가족들과 생활하지 못했고 신분이 낮은 카스트 노예들과 함께 지내야만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썬다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노예 생활을 하던 그는 독약을 복용한 상태로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구원하셨다.

건강을 회복한 후, 썬다는 몇몇 선교사들이 머무르고 있는 루디아나 지역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성경을 연구했다. 그리고는 심라에 가서 침례를 받았다. 그의 나이 16세,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됐다. 그리고는 맨발로 신약성경을 손에 들고 나가 주를 전하기 시작했다. 썬다는 고백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는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여 그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나도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나를 희생시켜야만 한다”고 말하곤 했다.

성자로서 썬다 싱
썬다는 해마다 캐시미르, 아프가니스탄, 네팔 그리고 티베트의 언덕과 산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차례 심한 핍박을 받고 동굴로 피해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맹수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맨발로 걸었다. 돌과 얼음에 긁힌 썬다의 발은 늘 상처와 피투성이였다. 그가 히말라야 산을 넘어 작은 마을에 도착해 통나무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곧 무리들이 모여들었고, 썬다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몹시 화를 냈다. 그중 ‘크루페람’이란 자가 썬다에게 주먹을 날렸고 썬다는 땅에 나가 떨어졌다. 그의 뺨과 손은 돌에 의해 찢겼지만 그는 화 한번 내지 않았다. 썬다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했다. 나중에 크루페람은 그에게 큰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어느 날, 썬다는 강도의 소굴이 있는 숲 속을 지나가게 됐다. 갑자기 네 사람이 그에게 덤벼들었고 그중 한 명은 칼을 보이며 그의 생명을 위협했다. 썬다는 죽음이 왔음을 직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은 강도들을 놀라게 했고 강도들은 썬다를 신기해하며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썬다는 “나는 기독교인”이라 말하며 신약성서를 펴 강도들에게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강도들은 결국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자녀가 됐다.

티베트에서
썬다는 티베트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티베트 사람들은 미신과 마법, 귀신의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은 강압적인 종교지도자인 ‘라마스’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백성들은 불교 신자들이었고 기도문을 적은 깃발을 바람에 날리게 하는 것이 기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한번은 고산지대에서 바람막이 없이 강추위 속에 잠을 자기도 했고, 또 다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처벌을 받게 됐다. 그들은 썬다의 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깊은 우물에 그를 가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그 우물에 던져져 죽어있었다. 썩은 뼈와 살의 악취는 코를 찔렀고 떨어질 때 입은 상처로 그는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잠조차 잘 수 없이 어두운 우물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다 3일째 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때 우물 문이 열렸고 “이 밧줄을 잡고 올라오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는 곧 우물 밖으로 나왔고, 그를 구출한 낯선 사람은 우물 문을 닫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썬다는 그때 그를 구출했던 분이 하나님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큰 힘을 얻은 썬다는 계속 복음을 전파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네팔에서
네팔은 당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인도 북부의 나라였다. 네팔은 기독교가 금지된 나라였지만 그는 네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결국 체포되어 투옥됐다. 썬다는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발견한 간수는 그를 더러운 독방에 가뒀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긴 후 손발을 묶었다. 그리고 거머리를 모아 그의 몸에 던졌다. 거머리는 그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썬다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찬송을 불렀다. 관원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를 석방시켰다. 거머리가 그의 피를 많이 빨아먹어 매우 허약해졌지만 그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나의 구세주를 위하여 당하는 고통은 기쁨이다. 모든 시련과 영혼의 수고 안에서 나의 위로, 나의 소망, 영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직접 지셨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또한 영혼 구원을 위하여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세계를 도전케 함
그의 고난과 감옥에서의 경험은 여기저기 알려졌고 전 세계의 신자들은 인도의 사도인 썬다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독교인들의 믿음이 자랐고,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도록 도전을 심어주었다. 썬다의 선교 도전은 여러 사람을 감동케 만들었다. 그는 실론, 미얀마, 말라야, 중국과 일본에 전도여행을 다녔으며 서방세계와 영국, 미국, 호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도 방문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말했다. 한 번은 그의 모임에 참석한 어린 소녀가 “저분이 예수님입니까?” 하고 묻기도 했다.

남긴 말
1929일 4월 18일, 썬다는 그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오늘 티베트로 떠난다. 험한 여정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임무 완수를 위해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

여러 날이 지나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였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그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산에서 죽었는지, 티베트에서 순교자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태양, 볕 아래 인도의 사도 성자 썬다는 천국에서 귀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었을 것은 확실하다.(끝)
/윤봉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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