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43호 연좌제”

“국가는 ‘43호 연좌제’ 풀어주고 이들에게 보상해야”

2020-07-27 12:43:53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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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오늘은 67번째 맞는 ‘625 전쟁 정전협정일이다. 625 전쟁은 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상자와 실종 및 포로가 772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처참했다. 그러나 그토록 처참한 전쟁이 이 땅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잠시 정지된 정전상태요, 휴전상태다. 다만 정전상태가 67년 동안 지속해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동족상쟁의 전쟁은 엄청난 후유증과 억울함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 전쟁은 우리 모두에게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됐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과 억울함으로 저승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뿐더러 이승에서도 피맺힌 한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7만여명의 625전쟁 국군 포로와 그 후손들이다.

국군 포로들은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포로가 됐다. 국군포로들은 북한 정무원(현 내각) 결정 제43호에 의거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노역에 투입됐다. 그때부터 이들은 이름도 없이 ‘43로 불렸다. 그들은 아오지 탄광, 무산 탄광, 온성 탄광 등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조국고향가족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천륜과 인간 본성을 총칼로 짓밟았다. 북한은 국군 포로 중에서 조금이라도 반동의 기미가 보이면 사정없이 총살시켰고 그들의 시체가 쌓여 니탄(토탄)층을 형성할 정도라 해골의 늪이라고 불렸다. 심지어 북한은 판문점 818 도끼만행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발생하자 건장한 국군 포로와 장교 1만여명을 산골짜기에 몰살시켰다.

북한은 국군 포로들을 노예로 부려 먹기 위해 강제로 결혼을 시켰다. 그 결과 43호들의 후손이 탄광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들은 괴뢰군 새끼라는 반동분자의 낙인이 찍혀 ‘43호 연좌제의 삶을 살고 있다. 단지 아버지가 국군 포로였기 때문이었다.

손명화는 고 손동식 이등중사의 24녀 중 큰딸로 무산탄광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남달리 총명하고 공부도 잘했다. 해금 연주를 잘해 전국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군 포로 반동분자 괴뢰군 새끼라는 ‘43호 연좌제로 인해 꿈조차 꿀 수 없었다. 탄광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51세에 폐암에 걸려 산송장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8년간 폐암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고향과 부모님과 형제들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유해를 반드시 고향에 묻어달라고 하셨다.

손명화는 2006년 탈북해 아버지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손명화가 꿈꾸던 한국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43호 연좌제였다. 아버지의 유해도 혼자 옮겨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으나 외면당하기만 했다. 33년 국군으로 복무하면 국가유공자가 되나 56년간이나 복무한 고 손동식 이등중사는 국가유공자는커녕 유해조차 관심을 받지 못했다.

북한에서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43호 연좌제가 자유대한민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사선을 넘어 아버지의 조국을 찾아왔건만 또 하나의 연좌제의 사슬은 진정한 영웅들의 후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 67주년 되는 정전협정일 아침에 국가는 ‘43호 연좌제를 풀어주고 이들의 억울함을 보상해야 마땅하다고 외쳐본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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