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례 이대로 좋은가(①) ‘한국교회 마지막 미션과 사명은 장례문화를 개혁하는 일’

글 임정수 목사(주생명교회 담임)

2024-06-01 18:17:43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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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초상이 나면 울긋불긋한 꽃상여가 나갈 때에 선소리꾼이 앞서 가며

손에 종을 들고 종을 치며 구슬픈 소리로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딸랑”,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딸랑”.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 딸랑나는 어린 시절에 이런 애절하고도 비통한 곡소리와 종소리, 그리고 구성진 상엿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도 초상이 자주 나는지 이런 광경을 눈으로 목격하며 선소리꾼의 구성진 소리를 듣는 날은 그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장례문화가 간소화 되고, 발전되어 왔으나 한국기독교는 전통적인 한국 장례문화에 익숙해 비판 없이 세상 장례문화를 거의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독교 장례의 형식을 띄어도 그 안에는 여전히 유교, 불교, 샤머니즘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말은 기독교식인데 실제는 비 성경적 요소들이 너무나 많으며, 기독교의 정체성이 없는 용어와 용품 그리고 행습이 지켜져 왔다.

심지어 무속신앙과 유교, 불교 등의 혼합된 모습의 장례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훌쩍 보낸 우리는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이 일어나야 할 때다. 기독교인의 죽음은 결코 패배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완성이며 천국의 개선문이기에 죽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마라톤 선수가 42.195Km의 기나긴 구간을 뛸 때

오르막길, 내리막길, 큰길, 좁은 길을 구비 구비 돌아 골인 지점에 들어설 때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열심히 달려 왔노라고 물을 뿌려주고 수건을 흔들며 환호를 보내는 것처럼 우리는 격려와 축복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 140여 년 동안 교회는 이 땅에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큰 업적을 많이 이루어 왔다. 5.000년 동안 우상 숭배한 결과 가난과 질병, 무지로 가득했던 이 땅에 학교를 세워 무지를 타파하고, 병원을 세워 질병을 치료해주며, 복음을 전해 가난의 올무에서 벗어나 윤택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내적으로는 교회당을 세워 흑암 세력을 꺾고 기도원 운동, 수양관 운동 등으로 교회부흥을 이루었으며 기독교 교도소까지 건립하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성령운동, 찬양 운동, 말씀 큐티, 제자훈련, 세계 선교는 세계 최고가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의 마지막 미션과 사명은 장례문화를 개혁하는 일일 것이다.

즉 기독교의 장례문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일단 장례라는 용어부터 바꾸어야 한다.

성경적으로 볼 때 장례라는 단어는 천국 환송 예식이라 함이 적절할 것이다.

한국 최초 여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에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박사는 "내가 죽어 '천국 환송'을 할 때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행진곡 풍의 찬송을 불러 달라" 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말과 언어 그리고 문자는 그 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말의 의미는 그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게 된다.

시대에 따라 유행어가 나오고 또 그에 걸맞은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단,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장례와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다.

그렇다보니 무속적인 용품들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당연히 장례 문화도 샤머니즘적인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평생을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 목사님들이나 중직자로 충성스럽게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분들마저도 하늘나라 가실 때는 꽁꽁 묶는 우상숭배의 장례로 인생 마무리를 해왔다.

천국으로 가는 분을 죄인처럼 꽁꽁 묶어서 보내드렸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고전6:19)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사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지막이 매우 중요하다거룩한 그리스도인에게 수의(壽衣)를 입히거나 죄인처럼 몸을 꽁꽁 묶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비 성경적인 용어와 용품을 사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적어도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몸으로 영광 돌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12:1)

이제 마지막으로 성경적 근거와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우상숭배의 사상을 폐기하고 무효화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計劃(계획)()하시며, 民族(민족)들의 思想(사상)無效(무효)하게 하시도다”(33:10)라고 말씀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샤머니즘적인 장례문화를 폐해야 하고, 유교와 불교적인 의미가 깊이 배어 있는 기존의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한 혼합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전통과 사상들을 폐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의 아덴 전도에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激忿)했다고 했다. 바울 속에 있는 영()이 격분한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가 哲學(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注意(주의)하라이것은 사람의 傳統(전통)과 세상의 初等學問(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2:8)

복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철학, 학문, 전통을 좇아서 거기에 사로 잡혀서는 안 된다복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 복음은 묶인 것을 푸는 것이다.

예수님은 얼굴이 수건에 싸이고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 죽은 나사로에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11:44)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주님 재림 때까지 안식하며, 잠을 자는 것이다.

죄인은 수갑으로 양손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지만 안식하며 잠을 자는 사람을 묶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인(5:1)이 되었기 때문에 몸의 어느 부분 하나라도 묶어서는 안 된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수의(壽衣)가 아닌 세마포와 예복을 입혀야 한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細麻布(세마포) 옷을 입도록 許諾(허락)하셨으니 細麻布(세마포) 옷은 聖徒(성도)들의 옳은 行實(행실)이로다 하더라.”(19:8)

또 내가 보매 거룩한 ()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準備(준비)한 것이 新婦(신부)男便(남편)을 위하여 丹粧(단장)한 것 같더라.”(21:2)

이처럼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마포 옷을 입었다그리고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그에 맞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종교개혁 500주년, 선교140년을 지낸 우리 한국 교회와 교계에 소리 없는 조용한 장례(천국환송)문화의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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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파수꾼, 임정수 목사

이 글은 한국 기독교 장례 문화 연구원 원장이시며 투 헤븐 선교회 대표이신 김헌수 목사님의 기독교 장례의 새 패러다임 성경적 천국 환송책을 참고하여 쓴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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