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대구, 경북 시민은 위대했다

위기속에 빛나는 대구.경북 시민의 애국 애족 정신

2020-03-15 21:02:26  인쇄하기


신종 코로나19 감염의 최대 피해지역 대구. 경북은 코로나19의 극심한 공포와 불안 두려움 가운데 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게 정부 방역 정책을 믿고 질서를 유지하며 대구 경북 시민의 품격을 지켰다.

          ▲ 대구시 전경 (캡처 연합뉴스)

중국 우한 폐렴이 극심할 당시 중국의 거의 모든 마트 들이 싹쓸이된 사재기 현상은 물론 같은 자국민 임에도 불구하고 우한 인을 버러지처럼 취급하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구, 경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확진자가 발생하면 인정과 포용력을 발휘했다.

       ▲ 중국 내 텅빈 마트 모습

시민들이 거리두기로 모든 상점, 음식점들이 개점 휴업 상태는 영업 중단이 이어지자 건물주들은 앞 다퉈 임대료를 낮추면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사실상 영업중단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한 숨은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 누구도 탓하지않고 묵묵히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시민은 스스로 인간 바리게이트가 되어 사실상 대구 경북 지역 봉쇄 효과를 만들어 냈다. 거의 모든 시민이 외출 자제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빠른 시간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있다. 그 결과 대구 경북의 파장은 급속히 감소하며 대한민국을 지켰다. 

대구,경북 시민은 언제나 국가적 위기 속에서 나보다는 우리를, 우리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 애족정신을 발휘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국채보상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반강제적인 차관을 제공하였으나, 대한제국은 차관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사실상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제공한 차관은 일제가 한국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고 1907(대한제국 융희 원년)에 이르러 1300만원에 달했다. 일제는 대한제국에게 차관을 제공하여 한국의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의 일환으로 1905(광무 9)에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를 조선에 보내,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대한제국의 은행들은 일본 은행에 종속되었고 차츰 대한제국의 경제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차관 제공도 이와 같은 의도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1,300만원이라는 빚을 진 한국은 이를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이에 1907년경 경상도 대구등지에서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나라 빚을 갚고 일제로 마수로부터 벗어나고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그 정신이 오늘도 빛나고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민족정기가 살아있는 대구.경북 시민들에게 격려와 코로나19 사태를 완전히 이겨줄 것을 응원한다. / 한국기독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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